생각의 편린들

본질 벗어난 유아인 정찬우 논란

새 날 2017. 10. 31.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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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배우 김주혁을 추모하는 마음은 아마도 모두가 한결 같은 모양이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비롯, SNS 등에는 그의 죽음을 믿기 어려워하거나 안타까워하는 등 애도 반응 일색이다. 모르긴 몰라도 연예인들의 심경은 우리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을 테다. 김주혁의 동료들은 SNS를 통해 일제히 추모의 글과 흔적을 이곳 저곳에 남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배우 유아인과 개그맨 정찬우가 각기 우리 정서에 맞지 않는 표현 양식과 부적절한 댓글로 인해 난데 없는 곤욕을 치러야 했다. 유아인의 경우 자신의 SNS 계정에 "애도는 우리의 몫, 부디 RIP"라는 영문장의 축약형을 썼다가 고인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로 비칠 수 있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여기서의 'RIP'는 영문장 'Rest In Peace'의 줄임말이다. 



그러니까 이를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를 '삼고명'으로 축약하여 나타낸 결과와 같겠다. 우리 정서로는 적어도 고인을 추모할 때만큼은 축약형을 사용하지 않는 게 상식일 테니, 누군가에게는 눈에 거슬렸음이 틀림없다. 정찬우의 경우는 가수 선미가 김주혁을 추모하는 글을 꽃 사진과 함께 SNS에 올렸는데, 해당 글에 "꽃 예쁘네"라는 댓글을 달았다가 비난을 자초하고 말았다. 



추모 분위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는 비난이 쇄도하자 결국 댓글을 삭제하고 자신의 SNS에 “제 부주의로 인해 많은 분께 실망을 남겨드려 죄송하다. 죄송하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빈다”며 사과의 뜻을 전해왔다. 


이런 현상을 두고 일부 네티즌들은 다시 한 번 영국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퍼거슨 감독이 남긴 유명한 어록 "SNS는 인생의 낭비다"를 떠올리면서 연예인들의 실수 아닌 실수를 탓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들의 행위가 지금처럼 대중들의 일방적인 뭇매를 맞아야 할 만큼 잘못된 건 결코 아니라는 주장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온다.


우리 정서로는 고인을 추모할 때 이를 축약하여 표현하는 행위를 절대로 용납할 수 없겠으나, 해외에서는 'RIP'류식 표현이 흔히 사용된다고 한다. 즉, 우리말로 '삼고명'은 거부감이 강하게 드는 표현인 데다가 심지어 비아냥거리는 듯한 뉘앙스마저 풍겨오나, 영어권에서는 'RIP'가 딱히 문제의 소지가 없다는 의미이다. 



정찬우 역시 숙연해야 할 추모 공간에서 활용하기에는 다소 격이 맞지 않는 표현을 묘사하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하여 일방적으로 비난을 들으며 사과를 해야 할 만큼 그가 실제로 잘못한 것일까를 헤아려보면, 조금 과도한 측면이 엿보인다. 즉, 두 연예인의 행위를 두고 굳이 문제점을 지적하고 비난하고자 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거니 싶다가도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나는 그보다 오히려 다른 각도로 이번 사안을 바라보고 싶다. 유아인의 'RIP' 표현이 문제로 불거진 뒤 얼마 후 이슈가 된 정찬우 사건을 바라보면서 'RIP'류의 표현이 연예인 등 사회 일각에서는 이미 일상화된 게 아닐까 싶어 조금 염려스러웠다. 나는 일부 네티즌들이 그토록 못마땅해 하던 정찬우가 단 댓글보다는 외려 그의 원글인 선미의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Rest In Peace"가 더 눈에 거슬리던 참이다. 



배우 김주혁이 외국인이었으면 혹시 모를까 유아인이 표현한 'RIP'도 그렇거니와 선미까지 나서서 굳이 그러한 방식으로 표현해야 했을까 싶다. 우리나라가 아닌 해외 연예인이 숨진 뒤 그들을 추모하기 위해 'Rest In Peace' 내지 'RIP'를 표현했다면 과연 누가 뭐라 하겠는가? 우리나라 연예인을 추모하는데 왜 굳이 이런 식의 표현을 남발하고 있는 건지 난 잘 모르겠다. 그것도 인기 연예인들 저마다 너 나 할 것 없이 동시에 말이다. 누구 말마따나 이 또한 허세는 아닐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우리식 표현만으로도 예를 갖추는 일은 충분하다. 알다시피 인기 절정의 연예인들이 사회에 미치는 파급 효과는 상당하다. 어린이들이 이를 따라하고, 나처럼 몰랐던 사람들마저 이런 식의 표현을 알게 되면서 자꾸만 남발하다 보면, 생물처럼 변화를 거스를 수 없는 언어는 결국 그에 걸맞게 변모해가는 게 인지상정이거늘, 시간이 조금 더 흘러 가까운 미래에 우리 주변에서 누군가를 추모하고자 할 때마다 고유의 표현 양식을 몰아내고 'RIP'류의 표현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면 무척 개탄스럽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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