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촛불, 분열인가 다양성인가

새 날 2017. 10. 30.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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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정치 색깔과 이해 관계를 띤 집단 및 개개인이 오로지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단일대오를 형성했던, 이른바 '촛불'로 상징되는 정치 혁명은 박근혜의 탄핵에 이은 구속 수사와 19대 대통령선거를 통한 문재인 대통령의 탄생으로 일단락 짓게 된다. 그 촛불이 어느덧 1주년을 맞이했다. 지난 28일 이를 기념하기 위해  1년 동안 촛불 집회를 이끌어온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이 촛불 혁명의 진원지이자 물리적 토대가 되어주었던 광화문광장에서 기념 집회를 개최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년 전 집회와는 그 분위기가 판이했다. 일부 세력이 촛불 집회를 이끌어온 기존 조직의 행태를 꼬집으며 이의 참여를 거부, 여의도에서 '촛불 파티'라는 이름으로 별도의 집회를 개최했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민노총 등이 주도하는 기존 세력이 문재인 정부를 비판할 요량으로 청와대 행진을 계획한 사실을 꼬집으며 이를 문제 삼고 나섰으나, 이는 핑계에 불과할 뿐 비단 해당 사안이 아니더라도 결국 각기 다른 정치 세력이 각자의 길로 접어들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그 속내는 단순치가 않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현재 다양한 의견과 주장이 개진되고 있다. 무엇보다 분열과 갈등을 우려하는 시선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목표를 달성하기 전까지만 해도 단일대오를 형성하던 촛불이건만, 정권 교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자마자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던 과거의 악습을 반복하기라도 하는 양 또 다시 분열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주장은 갈등과 분열이 아닌 다양성이라는 측면으로 이번 사안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의견이다. 광장의 촛불이 지향했던 건 특정 정치적 색채가 아닌, 보편타당한 상식을 앞세운 정상적인 국가를 세우는 일이었기에 그를 향해 가는 길은 다양한 양태일 수밖에 없으니 이번 촛불 집회가 두 갈래로 나뉜 현상을 갈등이나 분열이 아닌,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 가운데 하나인 다양성의 측면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두 가지 가운데 과연 어느 쪽의 시선이 옳은가의 여부는 결국 시간이 조금 더 지나야 판가름날 것 같다. 그런데 사실상 촛불의 갈등과 분열 조짐은 진작부터 싹터왔다. 이른바 진보 언론으로 분류돼온 언론사 '한경오(한겨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가 지난 19대 대통령선거 즈음 일부 네티즌들에 의해 적폐로 지목, 호되게 비난 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발단은 문재인 대통령 부인 호칭에서 비롯됐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은 과거 고 노무현 대통령이 반대 진영에 의해 정치 보복을 당할 당시 이른바 진보 언론이 되레 더욱 집요하게 공격, 결국 비극으로 마침표를 찍게 했던 사례를 상기시키고 있었다. 이들은 '한경오'를 적폐 언론으로 지목하고, 민노총 등을 수구좌파라 지칭하며, 함께해야 할 세력이 아닌 배척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고 있었다. 일종의 학습효과인 셈이다. 


이번 촛불 1주년 공식 집회를 거부, 여의도에서 '촛불 파티'를 개최하고 나선 건 그의 연장선으로 읽힌다. 물론 기존 정치세력이 시대에 걸맞은 변화를 꾀하기보다는 자꾸만 구태를 반복하고, 과거에 안주하려는 모습은 흡사 수구세력이라고 일컬어지는 대한민국 보수의 그것을 빼닮은 측면이 없다고는 볼 수 없다. 때문에 '촛불 파티'로 기존 정치 세력 앞에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그들을 다양성의 측면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크게 틀리지는 않은 것 같다.



다만, 다양성이라는 표현에 걸맞기 위해서는 반드시 충족해야 하는 조건이 몇 가지 있는데, 현재의 그들로부터 이를 확인 가능한지의 여부는 의문투성이가 아닐 수 없다. 다양성이라 함은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상대를 '수구좌파' '꿘' 등 타파하거나 극복해야 할, 오롯이 극혐의 대상으로 표현하며, 평소 반대 진영을 향해 퍼붓던 묘사 이상으로 상대를 비아냥거리거나 깎아내리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다양성이라는 표현이 가당키나 한가? 


그동안 진보 진영을 망쳐왔다던 과거의 잇단 분열도 실은 극히 사소한 것으로부터 비롯된 경향이 크다. 이렇듯 세상 모든 갈등은 아주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배척하며 자신들만 옳다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과연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 가운데 하나인 다양성이 제대로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촛불 1주년, 과연 분열의 시작일까, 아니면 다양성의 한 양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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