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우리는 왜 '미투 캠페인'에 동참 못하나

새 날 2017. 11. 6.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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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태그 기능을 이용한 성폭력 피해 고발 열풍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나도 그렇다’라는 의미의 'Me Too'에 해시태그를 달아(#MeToo) 자신이 겪었던 성범죄를 SNS상에서 고백함으로써 그의 심각성을 알리는 이른바 ‘미투 캠페인’이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인 하비 웨인스타인의 성추문 사건 이후 영화배우 알리사 밀라노가 지난 10월 15일 최초로 이를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반응은 생각보다 뜨겁다. 이를 제안한 지 불과 하루만에 5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리트윗에 응하며 지지 의사를 표명해 왔고, 8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MeToo 해시태그를 달아 자신의 성폭력 피해를 폭로하고 나선 것이다. 아울러 미국의 올림픽 체조 금메달리스트 맥케일라 마루니와 리스 위더스푼, 안젤리나 졸리, 귀네스 팰트로로 이어지는 유명 연예인, 그리고 영국 성공회 성직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여성들이 성폭력 피해 경험을 털어놓으며 사회 전반으로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의 열풍은 미국과 유럽을 휩쓸고, 어느덧 인도에 닿아 안착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 '미투 캠페인'은 적어도 한국에서만큼은 조용하기 이를 데 없다. 3년 전 한반도를 뜨겁게 달구었던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떠올리면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는 루게릭병 환자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기부금을 모으기 위해 미국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퍼진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명 정치인과 경제인 그리고 연예인 다수가 이에 참여하면서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그렇다면 미투 캠페인은 왜 유독 우리만 호응이 적은 걸까? 도대체 왜?


한국은 자타 공인 세계 최고 수준의 통신 인프라와 IT 환경을 갖춘 곳이다. 덕분에 그 어떤 국가보다 주요 이슈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가 높으며 기술 숙련도 또한 뛰어나기에 국가라는 물리적 장벽을 뛰어넘어 SNS상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투 캠페인'에 동참하지 않고 있는 현실은 무언가 엇박자와 같은 느낌이 아닐 수 없다. 


ⓒ뉴스1


하지만 우리 주변을 아주 조금만 둘러보더라도 왜 이러한 결과가 빚어지고 있는지 금방 수긍하게 된다. 성폭력은 다른 범죄에 비해 상대적으로 피해자에게 치명적으로 다가온다. 범죄 사실이 알려질 경우 오히려 피해자에게 낙인이 찍히고, 궁지로 몰아넣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개인보다는 집단을 우선시하는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는데다가, 겉으로 드러내놓기보다는 주로 음습한 곳에서 성을 소비하거나 지향하는 문화가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으며, 때문에 성과 관련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이를 숨기려 들거나 축소하고, 심지어 피해자를 회유하려는 남성 위주의 왜곡된 시선이 사회 전반에 팽배한 실정이다. 피해자 보호 장치가 미흡하고, 유독 성범죄에 관대한 법적 제도적 미비점도 한 몫 거든다.  



해외에서는 뜨거운 열풍이 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미투 캠페인'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이러한 사회 분위기로 인한 2차 피해를 우려해서다. 최근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한샘 여직원 성폭력 사건만 하더라도 우리의 왜곡된 시선의 일단을 잘 보여준다. 해당 사건이 불거진 건 지난 1월의 일이었으며, 3월에 무혐의 불기소 처분으로 종결됐다. 그렇다면 피해자는 왜 해당 사건을 뒤늦게 이슈화하려 한 걸까? 그 이유는 자신을 향한 주변 사람들의 삐딱한 시선과 그로 인한 고통 때문이란다. 결국 피해자를 향해 꽃뱀이라며 손가락질하거나 낙인을 찍는 또 다른 폭력 행사가 오늘날의 결과를 빚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현재까지 밝혀진 사실로는, 피해자가 몸담고 있는 조직으로부터 회유 시도가 있었으며, 가해자나 목격자들로부터 협박을 당하는 등 2차 피해까지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성폭력에 의한 직접적인 피해, 이윽고 협박과 낙인, 더불어 비난까지, 안타깝게도 이는 우리 사회에서 성범죄 피해자들이 공통적으로 걸어온 길이다. 남성과 집단 본위의 사회 분위기 아래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이 딛고 서 있어야 할 땅은 이렇듯 한없이 비좁기만 하다. 우리가 미투 캠페인에 동참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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