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유료시사회, 왜 반칙인가

새 날 2016. 7. 20.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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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이상했다. 영화 '나우 유 씨 미2'는 분명히 13일 개봉인 것으로 확인했는데, 실 예매율 기준인 박스오피스에는 이미 한 주 전부터 해당 영화가 1위 자리에 올라와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지난 주말에는 '부산행'을 보았다는 글들이 인터넷 커뮤니티 여기저기에 쇄도하고 있었다. 내가 알기로는 20일이 개봉일인 것 같은데, 이를 벌써부터 관람했다는 사람들이 도처에 넘쳐났던 것이다.


마침내 아직 개봉하지도 않은 '부산행'이 비슷한 방식으로 1위를 차지하고 있던 '나우 유 씨 미2'를 2위로 끌어내리더니 당당히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꿰찼다. 도대체 이게 무슨 영문인가. 개봉조차 않은 영화가 1주 전부터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2주 연속이나 꿰차고 있는 이러한 기이한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 봐야 할까? 나중에 확인해 보니 '나우 유 씨 미2'의 경우 개봉 예정일인 13일보다 앞서 주말, 그러니까 9일과 10일, 아울러 20일 개봉 예정일이던 '부산행' 또한 15일에서 17일 사이에 유료 시사회를 열어 관객들을 대거 끌어모아 이뤄낸 쾌거(?)였다.



유료 시사회의 반응은 뜨겁다 못해 놀라울 정도다. '나우 유 씨 미2'의 경우 유료시사회를 개최한 9일과 10일 양일간 400여 개의 스크린을 확보하여 19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였으며, 마찬가지로 지난 주말 유료시사회를 단행한 ‘부산행’의 경우 사흘간 좌석 점유율이 무려 90.9%에 달했다. 이의 여파로 '부산행'은 개봉 전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55만8928명이라는 가히 적지 않은 수의 관객을 끌어 모았다. 


그렇다면 ‘유료시사회’란 무얼까? 앞에 '유료'자가 붙지 않는 일반 ‘시사회’는 관객의 반응을 미리 알아보고 마케팅 전략을 세우기 위해 개봉 전 소수의 관객을 초빙하여 영화를 보여주는 일종의 이벤트다. 하지만 여기에 ‘유료’라는 조건이 붙은 '유료시사회'는 그 성격이 판이하다. 사실상 말이 시사회일 뿐, 관객들이 관람료를 지불하고 영화를 관람한다는 측면에서 보통의 상영과 전혀 다를 바 없다. 다만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앞서서 볼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면 장점으로 꼽힌다. 



해당 현상은 우리 영화 시장 판도에 왜곡을 불러올 개연성이 매우 높다. 꼼수적 개봉이라는 원성이 자자한 건 다름아닌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어차피 좌석수와 스크린 수는 한정 되어 있는 상황인데, 일부 배급사와 영화사들이 유료시사회라는 명분으로 변칙상영을 일삼으며 스크린수를 대거 늘리다 보니 그의 반대급부로 기타 작은 영화들이 설 자리를 잃게 되는 것이다. 이는 영화라는 문화 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선택권을 악의적으로 빼앗는 결과에 다름아니다. 


그러니까 개봉된 다양한 국적의 수많은 장르 및 종류의 영화들 중 소비자가 보고 싶은 영화를 선택하여 쉽게 볼 수 있는 여건이 되어야 할 텐데, 가뜩이나 거대자본의 횡포로 인해 우리 영화 시장의 모습은 흡사 기울어진 운동장의 전형인 데다가 그 때문에 다양성 측면에 있어서도 한없이 부족한 여건이거늘, 이제는 어느덧 변칙상영 현상마저 이에 더해지고 있으니 관객의 권리는 날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안타까운 형국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변칙상영의 여파는 여타의 영화들을 아예 사라지게 하거나 변방으로 내모는 효과를 톡톡히 발휘한다. 정작 보고 싶은 영화들은 스크린을 아예 확보하지 못하거나 운이 좋아 확보했다 하더라도 하루 상영 횟수가 한 회나 두 회, 그것도 도저히 관람할 엄두가 나지 않는 시간대에 배정되는 바람에 관람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전혀 못 된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비단 어제 오늘만의 얘기가 아니다. 



앞서 언급한 유료시사회를 개최한 두 영화는 표면상 시사회임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13일 정식 개봉한 영화 ’트릭’(390개)이나 ‘데몰리션’(196개)보다 더 많은 수의 스크린을 확보하며 훨씬 많은 관객을 끌어 모았다. 이런 상황에서 이를 반칙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더구나 관객들은 본능적으로 자꾸만 신상(새로 개봉하는 영화)에 눈길이 쏠릴 수밖에 없는데?


그러니까 꼼수 마케팅의 일환이자 얄팍한 잇속이 기저에 깔려 있을 법한 작금의 유료시사회라는 변칙상영 형태는 결과적으로 소비자의 영화 선택권을 빼앗고, 작품성 높은 작은 영화들의 설 자리마저 원천적으로 앗으며 대기업을 기반으로 한 특정 세력의 영화에 대한 쏠림 현상을 더욱 가속화시켜 우리 영화계를 스스로 좀먹고 있는 셈이다. 


이번 주 개봉하는 영화들을 검색하던 난 관람을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일단 '부산행'은 영화의 흥행이나 작품성 따위를 떠나 변칙상영을 통해 보고 싶던 다른 영화들을 밀어낸 몹쓸 주체인데다가, 10개가 넘는 종류로 상영관을 매우 세분화한 채 스크린 독점 현상마저 빚고 있어 왠지 쳐다보기조차 싫어졌고, 그와 반대로 기대작으로 생각돼 진짜로 보고 싶은 영화들은 죄다 주변 상영관에서는 아예 상영조차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유료시사회로 한바탕 휘저으며 온통 흙탕물 뒤범벅으로 만들어 놓더니 조금 정신을 차릴 만하니까, 즉 정식으로 개봉한 이후에는, 또 다시 그들만의 리그 일색인 세상으로 바꿔놓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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