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아프니까 비로소 보이는 것

새 날 2016. 7. 12.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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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을 앓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금요일 일과를 모두 마치고 난 뒤 몸의 균형이 무너졌다는 점일 테다. 주말을 고스란히 반납하고, 그 후유증은 화요일인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난 처음에 이를 물리적으로 조금 쉬어주라는 단순한 신호로 받아들였다. '그래, 이참에 좀 쉬어보자.' 그렇게 마음 먹고 금요일과 토요일을 보냈다. 그러나 차도는 없었다. 


결국 일요일이 되어서야 병원을 찾게 됐다. 주사 한 방을 맞고 처방약을 한 움큼 입 안에 털어넣은 뒤에야 조금 진정이 되는 느낌이다. 물론 머리는 여전히 지끈거리고 정신은 마치 유체이탈을 한듯 몸과 적어도 1미터 쯤 거리를 둔 채 따로 놀고 있었지만 말이다. 주말 내내 방바닥과 씨름을 해야 했다. 하도 누워있느라 허리 등 삭신이 쑤실 정도였으나, 그래도 머리가 아파오며 지구 전체가 빙글빙글 도는 느낌보다는 차라리 누워있는 쪽이 훨씬 이득이었다. 


낮인지 밤인지, 도통 시간대를 가늠할 수 없는 혼돈 속에서 머리앓이와 배앓이는 지속됐다. 신기하게도 머릿속에서는 오만 잡념들이 스쳐갔다. 평소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과거의 사실들이 굴비 엮이듯 줄줄이 떠오르다 이내 사라지곤 했다. 군대에서 있었던 일이며, 코흘리개 시절의 기억까지, 그 영역은 한계가 없었다. 더욱 신기한 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나와 같이 꿈속을 헤매던 이가 한 사람 더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내였다. 


그러니까 지난 주 금요일 오후로 시간을 되돌려보자. 머리에서 열이 난다며 오늘날 병세의 전조 증상을 가장 먼저 호소했던 이는 다름아닌 아내다. 아내의 호소에 나 역시 비슷한 증상이 있다며 맞장구를 치긴 했으나 당시 폭염특보가 발효돼 급작스레 오른 기온 때문에 발생한 현상일 것이라며 별 대수롭지 않게 이 상황을 넘겼다. 하지만 그날 퇴근 후 집에 도착하니 아내는 벌써 몸져누워 버린 상태였다.



당황스럽던 난 아내의 체온을 낮추기 위해 물수건을 이마에 얹는 등 부산을 떨다가 그녀와 함께 스르르 잠이 들고 만다. 이후로 나 역시 아내와 똑같은 처지가 돼 버렸다. 아무리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해도 몸살마저 함께 겪는 영광을 누리게 하다니, 정말 우리 부부의 인연은 보통 수준을 넘는 게 거의 확실한 것 같다. 두 사람이 나란히 누워서 보는 세상은 또 달랐다. 


돌이켜 보니 강제로라도 휴식이 필요한 시점이긴 한 것 같다. 몸살은 일종의 그를 알리는 신호이자 마지막 경고였던 셈이다. 물론 우리가 앓던 병세는 단순한 몸살이 아니긴 했지만 말이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최근 우리는 너무 정신 없이 살았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시작되는 일정은 잠자리에 들 때까지 개인적인 짬을 내기가 거의 힘들 정도로 빡빡하기만 했다. 나와 아내 모두 부러 그러한 환경 속으로 몸을 내던졌다. 일종의 도전이었다.


불과 한 달 전부터 생긴 변화다. 시간이 지나면 몸이 이에 절로 맞춰지리라 생각했다. 피곤하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올 만큼 하루하루가 눈코 뜰 새 없이 지나갔다. 혹독하다는 표현이 걸맞을 정도로 일주일이 짧았다. 주말이라도 온전하게 쉴 수 있으면 다행이었건만, 시기적으로나 여건상 그렇지가 못 했다. 피로가 누적되는 건 지극히 당연했다. 스트레스를 연구한 라자루스에 따르면 스트레스에는 경계, 저항, 소진이라는 단계가 있는데, 어느덧 병리현상으로 이어지는 저항 단계에까지 도달한 게 아닌가 싶다. 몸이 고장이 나는 바람에 반강제적으로라도 쉴 수 있게 된 건 그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그나마 다행이다. 


아프니까 비로소 보이는 게 한 가지 있다. 일상의 소중함 따위 같은 뻔한 소리를 하려는 게 아니다. 안타깝지만, 절대로 아파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아내와 동시에 아픈 건 정말 최악의 시나리오다. 지구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가정에서 우리와 비슷한 환경과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절대로 아파서는 안 된다. 이건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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