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신상 파헤치는 '패치' 시리즈, 씁쓸한 이유

새 날 2016. 7. 6.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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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일반인들의 신상을 털어 이를 공개하고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는, 이른바 '패치' 시리즈가 SNS 상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강남패치'와 '한남패치'에 이어 어느덧 지하철의 임신부석에 앉은 남성의 사진을 공개하는 '오메가패치' 까지 등장했다는 소식입니다. 뒤에 붙는 '패치'는 연예인의 사생활 등을 추적하여 특종 보도했던 매체 '디스패치'를 패러디한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패치'시리즈에는 누군가의 신상을 폭로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셈입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말에 개설된 해당 페이지는 벌써 4000명이 넘는 사람들을 팔로워로 모은 상태이며, 200명 가까운 남성의 얼굴 사진이 게시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를 주도한 이들은 자신들이 몰래 찍은 남성의 사진을 공개하는 행위를 진정한 "남녀 평등의 시작"이라며 정당화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그러니까 대중교통 배려석을 교통 약자에게 양보하지 않은 남성의 얼굴을 폭로하고 저격하거나 신상을 박제하는 게 이들에게 있어 남녀 평등 사회로 가는 첩경이라는 주장입니다. 


ⓒ서울신문


물론 일반 승객이 볼 때 확연히 구분 가능하도록 분홍색으로 디자인하고 꾸준히 홍보해 온 임신부석에 평소 임신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 그것도 남성이 앉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할 만한 일입니다. 때문에 저 역시 우리의 얕은 시민의식을 늘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던 참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그들의 표현처럼 애시당초 임신부석을 비워두었더라면 누군가의 표적이 되어 사진에 찍힌 채 '오메가패치' 따위의 이상한 공간에 자신의 신상이 오르내릴 일은 없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오죽하면 이랬겠나 하는, 동정어린 시선과 함께 측은지심을 갖게 하기도 합니다. 평소 우리의 야박한 마음 씀씀이가 이러한 결과를 빚었을 것이라 짐작되기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현재 시범 운영되고 있는 부산지하철의 여성전용칸 역시 비슷한 맥락입니다. 우리의 이기적인 행위가 사실상 여성전용칸 운영의 빌미를 제공한 셈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성전용칸을 두고서도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건 바로 우리 사회의 의식 수준이 아직은 여러모로 미흡하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임신부석은 애초 교통약자를 위해 승객들이 솔선수범하여 배려해달라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자리일 뿐, 법적으로 이를 강제하거나 규제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대중교통 시설의 노약자 배려석에 멀쩡한 사람이 앉아 있다고 해도 다소 뻔뻔한(?) 그의 행동에 대해 손가락질을 하거나 도덕적인 비난을 가할 순 있을지언정 그를 강제로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것과 같은 경우 아닐까 싶습니다. 



혹여 법적으로 강제 되는 사안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리에 앉은 사람을 몰래 찍어 무단으로 사진을 공개하고, 또한 그들에 대해 노골적으로 외모를 비하하거나 신상을 터는 행위는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지금처럼 경쟁적으로 이뤄지는 신상 공개와 모독 내지 명예훼손은 자칫 전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 개연성마저 높이는 행위입니다. 이러한 결과를 과연 남녀 평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현재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차별을 받고 있으며, 작금의 남녀 혐오 전쟁의 원인을 일부 남성들이 제공해 온 건 명백한 사실입니다만, 그렇다고 하여 이런 방식으로 대응하는 건 범죄 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혐오에 혐오로 대응하는 건 결코 남녀 평등이라고 볼 수 없으며, 좀처럼 배려를 모르는 이기적인 마음과 인색한 마음 씀씀이에 대해 이를 불법으로 맞대응하는 행위로는 우리의 얕은 시민의식을 결코 올곧게 변화시킬 수가 없습니다. 


혐오는 혐오를,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잉태합니다. 남녀 갈등을 더욱 부추기기만 할 뿐입니다. 당장 '오메가패치 우먼'이라는 여성을 표적으로 한 일부 남성들의 또 다른 패치 시리즈가 등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남혐 여혐 현상이 사회 구석구석 깊숙이 침투해 들어오며 점차 끝모를 지점까지 치닫고 있는 느낌이라 우려스럽기 짝이없습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씁쓸하게 와닿는 건 이러한 결과가 임신부석 등 교통 약자와 사회적 약자를 위해 마련된 제도의 애초 순수한 취지를 되레 훼손시키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점 때문입니다. 


배려란 강제가 아닌 마음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발현되어야 하는 성질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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