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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주민 대표의 '종놈' 갑질이 씁쓸한 이유

새 날 2016. 5. 29.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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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파트의 주민 대표가 관리소장에게 폭언과 욕설을 퍼부은 사건이 새삼 화제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주민 대표의 주도로 해당 아파트 지하주차장의 전등을 LED로 교체하는 공사가 진행되던 와중인데, 이 과정에서 특정 업체가 선정되었고 일부 주민들이 업체 선정이 투명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이에 반발, 관리소장까지 동조하게 된 것이다. 결국 계약서를 제시하라는 등 관리소장이 절차상의 하자를 언급하며 공사를 막아섰고, 이는 폭언 사태를 빚은 단초가 됐다. 주민대표와 마찰을 빚은 관리소장은 현재 두 달째 월급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아파트란 공간 역시 사람이 사는 곳이기에 대립과 갈등을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렇듯 당사자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힌 사건은 사실상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이나 피상적인 내용만으로 옳고 그름을 단정 지을 수 없다. 물론 굳이 시시비비를 가릴 필요성을 딱히 느낄 수 없지만 말이다. 다만, 관리소장을 향한 주민 대표의 '종놈'이라는 인격모독적 발언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과도한 것임이 분명하다. 혹여 관리소장이 전적으로 잘못한 행위라 해도 그렇다.

 

SBS 방송화면 캡쳐

 

주민 대표란 입주 주민들로부터 아파트 관리와 관련한 사무를 위임 받아 이를 대행하는 사람이다. 때문에 주민 대표와 관리소장 사이에는 사용자와 근로자라는 일종의 근로 계약 관계가 성립된다. 주민 대표가 관리소장에게 '종놈'이라고 발언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이 근로 계약이라는 갑과 을의 관계가 떡 하니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즉, 갑의 입장에서는 을을 종처럼 부려먹어도 상관 없노라는 전근대적인 사고 방식이 그러한 관계 속에 자연스레 녹아들어있음을 새삼 확인시켜준다. 물론 비단 이 아파트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닐 테다. 갑질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여전히 횡행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대표에게 관리 사무를 위임한 건 권력을 행사하라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주민 대표라는 직위가 얼마나 대단한 건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아파트 내에서만큼은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고 있음이 분명하다. 때문에 주민 대표는 아파트의 관리소장이나 경비 등에게 있어 어쩌면 생사 여탈을 쥔 최고 권력자로서 군림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이러한 역학관계를 주민 대표는 주인과 종이라는 시대를 초월하는 관계로 엮어 이를 행사해오고 있던 셈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번 사건은 이제껏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각종 갑질 사건의 연장선으로 읽힌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생산수단 등 자본을 소유하지 못해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 그의 대가로 임금을 받는 임금 노동자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이런 상황에서 주민 대표의 논리를 그대로 따르자면, 국민 다수는 결국 모두 '종놈'이 되고 마는 셈이다. 때문에 다수의 임금노동자들을 졸지에 '종놈'으로 둔갑시킨 주민 대표의 갑질은 비난 받아 마땅하다.

 

아울러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우린 수많은 관계를 맺게 될 테고, 원하든 원치 않든 복수로서 갑의 지위 또는 을의 지위에 서게 된다. 어떤 영역에서는 갑의 혜택을 누릴 수 있지만, 또 다른 영역에서는 을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즉, 주민 대표라는 사람이 그 아파트에서는 갑의 지위로서 목에 힘을 잔뜩 쥔 채 생활할지 몰라도 그 역시 다른 영역에서는 얼마든 을의 처지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에게 갑질을 행사하는 건 상대적으로 자신보다 약자인 이를 단순히 짓밟거나 분풀이하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지극히 졸렬한 행위로 받아들여진다. 어찌 보면 현재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약자를 향한 혐오 현상과 같은 맥락이다.

 

SBS 방송화면 캡쳐

 

우린 흔히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입 밖으로 애써 표현하고 있지는 않으나 엄연히 계급과 계층이 존재함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인다. 물론 그의 기저에는 돈과 권력이 얽혀있다. 이번 갑질은 단순히 한 사람의 인성 문제만으로 치부할 수 없는 사안이다. 왜냐하면 '굳이 표현을 하지 않을 뿐이지, 누구나 주민 대표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겠는가' 라는 일부 대중들의 반응은 뿌리 깊은 우리 사회의 갑질 문화를 고스란히 비추는 잣대이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권력만 손에 쥐어주어도 칼자루를 함부로 휘두르려는 행태는 단순히 한 아파트 단지에서 벌어진 꼴불견이라기보다, 다른 아파트나 기타 영역에서도 얼마든지 벌어질 법한 사안이기에 그 자체로 이미 우리 사회의 축소판에 가깝다. 아울러 이러한 현상을 보고도 이제는 주변에서 많이 겪는 일이라며 별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 일색인 데다가, 주민 대표에게 온갖 비난과 쌍욕을 퍼부으면서도 현실적으로는 우리 모두가 비슷한 현상으로부터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은 더없이 씁쓸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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