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술집 벗어난 집술 열풍이 즐거운 이유

새 날 2016. 5. 5.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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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지난해였던 것 같다. 한 공중파 TV 프로그램으로부터 촉발된 집밥 열풍이 시간이 꽤나 흘렀음에도 여전히 식을 줄을 모른다. 방송사마다 너 나 할 것 없이 온통 유사한 요리 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내보내기 바쁘고, 그 한가운데에 위치한 셰프라는 직업인은 어느덧 대중들에게 있어 선망의 대상으로 꼽힌다. 그렇다. 집밥은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문화 코드 내지 화두로서 아직도 유효하다.

 

이러한 집밥 열풍의 배경에는 여러 이유들이 있을 법하지만, 근래 1인 가구가 늘어나며 집에서 직접 해먹을 수 있는 기회가 점차 줄어들다 보니, 일종의 영원한 마음의 안식처로 인식될 법한 어머니의 손맛을 더욱 그리워하게 되는 현상이 가장 큰 몫을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현대인들은 삼시세끼 대부분을 외식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아 과거 온 가족과 오손도손 둘러앉은 채 어머니가 해주시던 따뜻한 밥 한 그릇을 함께 나눠 먹던 시절이 그리워지는 건 인지상정일 테다.

 

ⓒ헤럴드경제

 

음식과 관련한 TV 프로그램은 이러한 우리만의 정서를 제대로 파고들며 일종의 신드롬 현상을 낳고 있다. 즉, 치열한 경쟁 속에서 각박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있어 무언가 가슴 한편이 텅 빈 듯한 공허함을 파고드는 데 있어 더 없이 좋은 감성적인 소재인 데다, 갓 지은 따뜻한 밥을 가족과 함께 나눠 먹던 우리만의 성정이 해당 코드에 잘 녹아들어있기 때문일 테다. 결과적으로 집밥은 현대인들의 물리적인 허기를 달래줌과 동시에 감성적인 허기마저 달래주는 더 없이 고마운 존재다.

 

그런데 집밥에 이어 근래엔 술을 마실 때조차도 술집을 잘 찾지 않는다고 하니, 참으로 의외의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우린 술을 마실 때면 으레 술집을 찾곤 했다. 하지만 이젠 술집이 아닌 집에서 마시는 술인 이른바 '집술'이 대세가 되어간다. 이 또한 놀라운 변화라 할 만하다. 그렇다고 하여 막연히 집술을 찾는 사람들이 주변에서 눈에 많이 띄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실제로 각종 통계들이 이러한 흐름을 뒷받침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월 서비스업 생산지수 중 주점업의 실질 성장세를 나타내는 주점업 생산지수가 73.0으로 나타나, 통계가 작성된 2000년 이래 최저치로 떨어졌다고 한다. 여기서의 서비스업 생산지수란 100을 기준으로 기준년도 대비 생산량의 증감을 나타내며, 73.0이라는 수치는 역대 최저 수준에 해당한다.

 

ⓒ동아일보

 

술집의 매출은 이렇듯 크게 줄어든 반면, 가계의 술 소비 지출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가계동향 주류 소비지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각 가구마다 월 평균 1만2천109원 가량을 주류 소비에 지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술집에서의 술 소비가 줄어드는 대신 가정에서의 그것이 대폭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이쯤되면 집밥마냥 집술 트렌드가 점차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는 가설이 결코 과장된 게 아님을 입증하는 양상이다.

 

하지만 집술이 유행하게 된 배경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집밥과는 차원이 전혀 달라 다소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집술이 대세가 되고 있는 건 무엇보다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크다. 장기경기침체라는 미증유의 현상이 지속되면서 대중들의 지갑은 갈수록 얇아지고 있고, 그에 반해 술값은 계속 오르고 있는 추세이다 보니 이러한 결과를 빚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소줏값 인상으로 술집에서의 술값 인상이 러시를 이루자 소주를 더 이상 서민의 술이라 부르기가 민망해졌고, 최근에는 맥줏값마저 들썩이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 경기가 어려울 때면 그에 비례해 주류 소비가 함께 늘어나곤 했으나 근래에는 나름 굳건했던 이러한 소비 법칙마저도 무너지고 있는 추세다. 지갑은 얇아지는 데 반해 술값이 오르다 보니 대중들은 술집 등 대중음식점에서의 술값에 예민해지지 않을 수 없고, 일종의 임계치라 판단해온 가격대를 훌쩍 넘어 심리적인 저항선마저 붕괴되자 결국 술집보다는 가정 내에서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술을 즐기게 된 경향이 큰 탓이다. 

 

 

물론 비단 경제적인 이유만이 아니라 집밥 열풍을 몰고 온 1인 가구의 증가는 혼자 술을 마시는 사람을 일컫는 '혼술족'의 폭증 추세와 궤를 같이하고 있고, 사회 전반으로 확산된 개인주의 문화와 맞물리고 있는 상황인 데다, 과거보다 건강을 중시하는 풍조가 퍼져있는 현상이 이에 더해지며 집술 열풍을 더욱 부추기고 있는 모양새다.

 

그러나 사실 우리끼리 하는 얘기지만, 솔직히 집술이 술집의 그것에 비해 좋은 점이 훨씬 많다. 때문에 집술 유행 현상의 이면을 들춰보게 될 경우 다소 씁쓸함에도, 나 또한 이를 즐기고 있는 배경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존재하는 셈이다. 우선 술값이 저렴하다는 이점은 기본 중 기본에 해당할 테고, 혼자 먹어도 전혀 눈치 볼 대상이 없어 자유롭다는 사실은 그 중에서도 가장 손꼽히는 장점이 아닐까 싶다. 특히 혼술족에게는 집에서 혼자 마시는 집술 트렌드가 더 없이 반갑게 다가올 법하다.

 

아울러 술집에서 지인들과 함께 어울리다 보면 주변 사람들의 강권에 의해 주량을 조절하기 힘든 경우가 허다한데, 집술은 이로부터도 한결 자유롭다. 자신이 원하는 만큼만 조절하여 마실 수가 있고, 덕분에 주량 조절에 있어 훨씬 융통성을 발휘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주량 조절에 실패하더라도 가정 내에서 이뤄진 까닭에 음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민폐의 개연성 역시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 더구나 음주운전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는 건 대단한 이득이 아닐 수 없다.

 

마시고픈 술의 종류를 택하는 데 있어서도 술집보다는 자유도가 훨씬 높아 구애 받을 일이 전혀 없다. 아울러 술집에서는 왠지 술만 주문하기엔 눈치가 보이는 게 현실이다. 실제로 완전히 불가능한 건 아니나 어쨌든 술만 주문할 경우 술집 주인과 아르바이트생의 따가운 눈총을 피하기란 매우 어려운 노릇일 테다. 결국 안주를 주문해야 하는 상황인데, 맘에 드는 놈이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으나 간혹 그렇지 못해 우리를 결정 장애로 내모는 경우도 왕왕 있다. '아무거나'라는 명칭의 안주 메뉴가 흔한 이유도 다름아닌 이러한 현실을 나름 반영한 산물일 테다.

 

ⓒ아시아경제

 

어쨌거나 집술은 이러한 안주 고민으로부터도 우리를 해방시켜 준다. 최악의 경우 안주 없이 마시거나 집에서 돌아다니는 간식거리 내지 냉장고의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잔반 등으로 대충 때워도 전혀 지장이 없다. 더구나 만약 아내가 안주를 정성껏 만들어 함께 즐길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이건 흡사 로또 당첨과 견줄 만큼 더 없이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집술은 복장이며 자세며 심지어 시간 따위에도 전혀 구애 받지 않는다. 술을 마시다 단 한 차례라도 차가 끊겨 곤혹스러워하거나 끊길까 봐 노심초사해 본 사람에게 있어 집술은 그야말로 최고의 덕목이 아닐까 싶다. 술을 마시다가 졸리면 그 자리에서 그냥 엎어져 자도 뭐라 하는 사람 하나 없다. 한 마디로 집술은 경제적이기도 하거니와, 자유로움의 상징과도 같다. 이런 측면으로 볼 때 술로 인한 폐해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 집술 트렌드는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낮추는 데에도 한 몫 단단히 하리라 확신한다. 집술이 즐거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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