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일당 400만 원의 황제노역과 최저임금

새 날 2016. 7. 2.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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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의 차남 전재용 씨와 처남 이창석 씨가 탈세 혐의로 기소돼 벌금형을 선고 받았으나 이의 미납으로 노역장에 유치됐다는 소식이 언론발로 전해졌다. 전씨의 경우 벌금 38억6천만 원이, 처남인 이씨의 경우 34억2천만 원의 벌금이 미납된 상태다. 검찰은 두 사람이 벌금을 추가로 납부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 이들에게 노역장 유치를 집행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미납된 벌금액수에 따라 하루 400만 원으로 환산, 각각 965일, 857일의 노역장에 처해졌다. 


이들이 구치소에서 하는 일은 봉투 접기나 제초작업, 청소 등으로 알려졌다. 일당 400만 원짜리의 일감이라고 하기엔 왠지 낯부끄러운 수준이 아닐 수 없다. 일반 형사 사범의 노역 일당 10만 원과 비교해도 터무니없는 액수다. 우린 자연스럽게 지난 2014년 대주그룹 허재호 회장의 일당 5억 황제노역을 떠올리게 된다. 물론 논란이 됐던 해당 사건 이후 노역과 관련한 형법이 새롭게 적용되긴 했다. 

ⓒ헤럴드경제

현행 형법 70조는 벌금이 5억 원 이상 50억 원 미만일 때 500일 이상의 노역장에 유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벌금이 1억 원에서 5억 원 미만일 때는 300일 이상, 5억 원 이상 50억 원 미만일 때는 500일 이상, 50억 원 이상일 때는 1,000일 이상의 노역장에 유치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벌금 액수가 아무리 많아도 노역기간은 최대 3년을 넘길 수 없도록 돼 있다. 아울러 노역장에 처할 때 하루 일당은 통상 벌금액의 1000분의 1이 기준이다. 따라서 일당 400만 원이라는 액수는 이러한 셈법에 의해 등장하였으며, 전씨 일가의 경우 미납 벌금이 50억 원이 넘지 않는 덕분에 다행히(?) 1,000일 이상의 노역을 피해가게 된 셈이다.

허재호 회장의 황제노역 논란 이후 변경된 제도를 따르더라도 벌금 액수가 커질수록 탕감 금액이 커지는 모순은 여전하다. 아울러 일당 400만 원이라는 액수는 최저시급 1만 원으로의 인상안조차 받아들여지지 않는 작금의 사회 분위기와 현실로 비춰 볼 때 일반 서민들에게 있어 그 괴리감이 지나치게 크게 다가온다. 그렇다면 전두환 일가는 과연 어떤 사람들인가.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하고 무고한 광주시민들을 학살하는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만큼 갖은 범죄 행위로 긴 세월 동안 국민을 우롱해 오며 피로감에 빠져들게 한 집단이 다름아닌 그들 아닌가. 하지만 이들의 부정 축재 그리고 불법적인 부동산 거래를 통한 탈세 행위에는 그동안 한없이 무기력한 모습으로 일관해 왔던 정부와 사법 당국이다. 때문에 추가로 벌금을 납부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 노역장에 유치했다는 검찰의 설명은 좀처럼 납득하기가 쉽지 않다.

죄를 범하려거든 작은 범죄보다 차라리 크게 한 건 터트리는 게 이득이라는 결코 웃을 수 없는 우스갯소리가 시중에 회자되고 있는 배경에는 바로 이러한 말도 되지 않는 괴이한 현실들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그리고 '대마불사'와 같은 말들이 여전히 힘을 발휘하며 살아 숨쉬고 있는 건 작은 죄를 지은 보통사람들에게는 가혹할 만큼 중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 반면, 사회에 큰 해악을 끼친 범죄자들에게는 되레 황제노역과 같은 특혜가 주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뉴시스


현재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가 진행되고 있으나 노사 양측의 입장차가 워낙 큰 터라 법정시한마저 넘기고 만 상황이다. 노동계는 시급 1만 원으로의 인상을 요구하고 있고, 경영계는 현행 6,030원 대의 유지를 고수하고 있다. 그렇다면 2016년도의 최저임금인 시급 6,030원으로 하루 일당을 계산하면 얼마나 될까? 법정근로시간인 8시간을 이에 곱하니 48,240원으로 계산된다. 

전두환 일가의 노역 일당 400만 원과 비교해 보면 대략 83일을 꼬박 일해야 벌 수 있는 매우 보잘 것 없는 금액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는 이 액수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전두환 일가가 일당백의 일을 할 사람들이라고는 절대로 생각지 않는다. 결국 말도 되지 않는 희극 같은 이러한 결과가 대중들의 사법부 불신을 초래하는 단초가 되게 하는 건 아닐까? 아울러 최저임금 수준을 1만 원 가량으로 올리자는 주장에는 온갖 핑계와 수단을 동원, 이를 교묘히 회피하면서도 이렇듯 큰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특혜마저 부여하는 뜨악한 현실이 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더욱 부풀리게 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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