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하게 된 진짜 이유

새 날 2016. 7. 1.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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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는 화장을 않거나 외모를 가꾸지 않으면 왕따를 당하기 일쑤란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어 눈이 휘둥그레지지 않을 수 없다. 어른들의 보편적인 상식으로는 다른 커뮤니티도 아닌 적어도 학교에서만큼은 성적을 최고의 가치로 받아들이고 떠받들 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현실은 따로 놀고 있었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성적보다 외모가 더욱 중요한 가치로 받아들여진다. 공부를 못 한다고 하여 왕따를 당하는 경우는 드물어도, 뚱뚱하거나 누가 봐도 못생겼을 경우 이는 무조건 왕따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상황이 이쯤되다 보니, 아이들 입장에서는 꾸미지 않은 민낯이 가장 보기 좋다고 말하는 어른들의 흔한 조언 역시 뻔한 잔소리로 와닿을 법하다. 어른들로서는 아이들의 이러한 성향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겠으나, 반면 아이들의 입장에서 볼 때 오늘날의 결과는 어쩌면 또래 집단 내에서의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욕구에 충실히 따른 산물일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들의 모습은 어른들의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한다. 결과적으로 어른들이 잘못하고 있는 셈이다. 외모에 집착하는 건 사실상 특정 계층에 국한되지 않을 만큼 우리 사회에서는 이미 보편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진다. 


ⓒ파이낸셜뉴스


실력보다는 외모가 성공과 실패의 요인이라는 풍조가 사회 전반에 만연한 처지에서 우리나라는 일찌감치 세계 제일의 성형공화국으로 발돋움한 바 있다. 이웃 국가에서 성형을 위해 원정을 올 정도이니 이쯤되면 말 다한 셈 아닌가. 애나 어른 할 것 없이 모두가 얼굴과 몸매에 혈안이 된 채 외모 가꾸기에 깊숙이 빠져들게 된 배경에는 다양한 각종 미디어 매체가 한몫 단단히 하며,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 역시 주지의 사실이다. TV만 켜면 하루종일 몸짱 얼짱이 돼야 한다며 부추기기 바쁘고, 주변에는 온통 성형광고로 도배되어 있다시피 하니 말이다. 


그러나 미디어 매체만큼 화려하지는 않아도 훨씬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한 가지 있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이 방문하여 개최된 한류 행사 ‘KCON2016프랑스’에서 통역관을 뽑는 공고문에 ‘용모 단정, 예쁜 분’을 조건으로 내걸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프랑스 현지에 있던 한 유학생이 이와 관련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논란으로 불거진 사안인데, 그는 ‘파리 유학생의 눈으로 본 대통령의 파리 방문’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다음과 같이 비판한 바 있다. “통역은 외모가 아니라 언어가 1순위다. 프랑스에서 살면서 채용 기준에 ‘예쁜 분’이라는 천박하고 성차별적인 단어를 노골적으로 명시했다는 이야기를 결코 들어본 사례가 없다"



최근 부산 지역에서 활동 중인 학교 전담 경찰관이 담당 학교의 여고생과 부적절한 행위를 일삼다가 뒤늦게 발각이 되어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학교 전담 경찰관을 뽑는 기준이 도마에 올랐다. 이들은 학교 폭력과 관련한 상담 직무를 담당해야 하나,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바로는 전문성이 요구되는 상담 능력보다는 학생들에게 인기를 끌 만한 출중한 외모와 훤칠한 키가 최우선의 발탁 요건이었다고 한다. 물론 아이들에게 인기를 끌 수 있는 상황이라면 역할 수행이 조금 더 원활하긴 하겠으나 주된 업무이자 전문 영역인 상담 직무를 등한시한 채 외모 위주로 발탁했다는 대목에서는 씁쓸함을 자아내게 한다.


청와대 행사에서 모집하는 통역사의 기준조차 외모가 우선이 돼야 하고, 심지어 학교 폭력으로 인한 폐해를 줄이고자 일선 학교에 배치된 학교 전담 경찰관을 모집할 때조차도 능력보다는 외모를 중시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때문에 사회 전체가 온통 외모 가꾸기에 빠져든 작금의 기현상은 매우 자연스러우며, 초등학생이 화장을 해야 하는 현실 역시 지극히 정상처럼 다가온다. 이렇듯 정부를 비롯한 공공부문에서마저 능력보다는 외모 위주로 사람을 뽑는 마당이니, 사회 전반에 외모지상주의 풍조가 만연하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겠는가.


미국 적십자사 물놀이 안전 포스터


최근 미국에서는 적십자사의 물놀이 안전 포스터가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실제로 포스터를 유심히 살펴보면 수영장 주변에서 장난을 치거나 음료수 병을 들고 다니는 아이들은 죄다 흑인이거나 아시아인으로 그려져 있다. 반면 안전수칙을 잘 지키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백인이다. 명백한 유색인종 차별이다. 논란이 일자 적십자사가 공식 사과에 나섰으나, 그 어느 나라보다 인권과 평등을 핵심 가치로 여기며 이를 자랑스러워 마지않던 미국이란 일등국가였기에 실망감은 배가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미국 사회 곳곳에 인종차별적 요소가 여전히 만연해 있고 툭하면 논란으로 불거지고 있는 건 결국 이처럼 공공부문에서 이뤄지는 못미더운 행태들 때문이 아닐까? 


입으로는 인종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며 백번 천번을 읊고 있으나 정작 현실에서는 공공부문에서조차 공공연하게 차별 의식을 조장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사회 전반에 뿌리 깊이 박힌 인종차별적 요소가 쉽게 사라질 수 없음은 자명한 노릇이다. 그렇다면 우리라고 하여 다를까? 입으로는 능력 위주의 사회가 되어야 한다며 열심히 부르짖으면서도 정작 현실에서는 아예 공개적으로 외모를 최고의 가치로 떠받들고 있으니, 사회에 만연한 외모지상주의가 어떻게 쉽게 사라질 수 있겠으며, 어떻게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화장을 하지 말라며 떳떳하게 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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