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김영란법'을 흔들지 말라

새 날 2016. 6. 27.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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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9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김영란법'과 관련하여 정부와 재계 그리고 정치권의 흔들기가 본격화되고 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지난달 시행령안이 입법예고된 이래 자신들마저 법 적용 대상에 포함된 뜨악한 현실에 대해 우회적으로 혹은 공공연하게 불만을 표출해 오던 언론 매체들의 포문을 시작으로 사실상 김영란법 흔들기는 진작부터 돌입됐던 셈이다. 


며칠 전 민간경제연구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이 김영란법이 예고대로 현실에 적용될 경우 연간 11조6000억 원이라는 막대한 경제적 손실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으며 언론에 일제히 대서특필된 바 있다. 음식업종만 8조5000억 원의 손실을 비롯해 선물 관련 산업은 2조 원, 골프장은 1조1000억 원 가량의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발 더 나아가 이는 매출 감소만 추산한 것이기에 고용 위축 등을 감안하면 부작용이 더 클 것이란 언급도 덧붙여졌다.


ⓒ노컷뉴스


이와 교묘히 때를 맞춘 듯한 재계의 움직임 또한 주도면밀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26개 경제단체는 지난 21일 국민권익위원회에 '청탁금지법 시행령 제정(안) 개정 의견서'를 제출하고, 시행령의 대상이 되는 부문의 가격 기준을 상향할 것과 '금품'의 범위에서 제외 품목을 설정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한국은행 총재도 이러한 움직임에 힘을 싣는 모양새다. 지난 22일 경제동향간담회를 주재하던 이주열 총재는 “김영란법이 9월 말에 시행된다면 분명히 민간 소비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팔을 걷어붙였다. 농식품부는 김영란법 대상 품목 중 농축산물을 제외해달라는 업계 입장을 반영한 의견서를 국민권익위에 제출했다. 


정치권도 시행일이 점차 다가오자 김영란법 개정에 대한 목소리를 한층 높이고 있는 양상이다. 주로 농림축수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중심으로 농축수산물을 김영란법의 규제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요구가 흘러나오고 있으며, 법 개정안을 제출하려는 움직임마저 엿보인다. 


물론 입법예고기간을 두는 이유는 법안의 취지 및 주요 내용을 미리 예고하여 그와 관련한 국민의 의사를 수렴, 국민의 입법 참여기회를 확대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찬성 의견이든 반대이든 자유로운 의사 개진은 절대로 흠이 될 리 없다. 오히려 보다 혁신적이며 자유로운 의견이 더 많이 나와주어야 하는 게 여러모로 이롭다. 그동안 우리 사회를 좀먹어 오던 부정부패를 일소하자는 차원에서 시행되는 제도인 만큼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사전에 충분한 분석과 검토는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김영란법의 이해 당사자들이 노골적으로 반대 여론을 형성하고 있는 현상은 우려스럽기 짝이없다. 김영란법 때문에 손실이 불가피해질 것이라는 일각의 하소연은, 역으로 말하자면 그동안 우리의 접대 문화 등이 지나치게 비정상적인 형태였음을 자인하는 꼴이자 그만큼 부패에 젖어든 채 무엇이 잘못인지조차도 판단하지 못할 만큼 달콤함 속에서 허우적거려 왔음에 대한 방증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이러한 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을 테니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게 한다. 물론 김영란법이 시행될 경우 일부 관련 업계의 직접적인 피해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이에 대해 어느 누구도 뚜렷한 결론을 내리기란 쉽지 않다.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일례로 앞서 언급한 한국경제연구원의 전망과는 달리 또 다른 경제연구기관인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선물값 기준을 5만원으로 가정하고 최악의 상황으로 적용하더라도 선물 수요 감소폭은 1%가 채 되지 않는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행정부 수반인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일부 정치인과 경제 단체 등은 경제 위축을 이유로 김영란법의 일부 기준을 낮춰야 한다며 법 자체를 후퇴시키려 하거나 누더기로 만들려 하고 있다. 하지만 김영란법은 원안대로 시행돼야 한다. 당장 힘이 들거나 어렵게 받아들여질지 모르나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땐 우리 경제의 체질을 더욱 튼튼하게 만드는 첩경이 되고 되레 성장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연합뉴스


김영란법이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을 리는 만무하다. 외려 경제의 뒷덜미를 잡고 있는 건 오랜 부패 관행이다. 우리나라의 2015년도 부패인식지수는 100만점에 56점으로, OECD 평균 69.9점에도 훨씬 못 미친다. 34개국 가운데 고작 27위에 머물러 있다. 부패를 막는 일만이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로 이끄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은 부패로 인한 성장 손실이 특히 크게 다가오는 우리에겐 무엇보다 뼈저린 명제다. 한국갤럽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66%의 국민이 김영란법을 찬성하고 있는 입장이며,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의 국가청렴도가 OECD 평균 수준 정도로 개선될 경우 경제성장률이 0.65% 오르는 효과를 누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는 부패 청산의 당위성을 입증하는 결과이자 김영란법이 원안대로 통과되어야 할 필요충분조건이기도 하다. 아직 법이 시행조차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비정상적인 접대 문화와 부정 청탁의 고리를 끊자는 법 제정의 취지를 무력화시켜 국민적 여망마저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 될 노릇이다. 정치권과 재계 그리고 언론계는 김영란법을 후퇴시키는 우를 범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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