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국가보훈처의 어이없는 행동, 납득하기 어렵다

새 날 2016. 6. 21.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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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가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금남로에서 광주시민들에게 집단 발포했던 11공수여단 등이 참여하는 광주 호국 퍼레이드 계획을 결국 취소했다. 하지만 그 뒷맛은 영 개운치 못한 상황이다. 광주지방보훈청이 6.25 기념행사인 광주광역시 금남로 시가행진에 11공수특전여단이 참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거듭 피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보훈처는 이에 아랑곳없이 애초의 계획을 철회하지 않겠노라며 완강하게 버텨왔다. 그러다가 5.18 관련 단체 등의 반발이 더욱 거세지자 뒤늦게 행사를 취소한다고 밝힌 것이다.


금남로는 5.18 민주화운동을 대표하는 매우 상징적인 공간이자 민주화의 성지다. 다른 곳도 아닌 이러한 역사적인 공간에서 당시 광주시민들을 향해 집단 발포했던 계엄군 소속 진압부대가 호국이라는 미명 하에 행진을 하겠다는 발상 자체부터 황당하다 못해 당혹스럽다. 이는 마치 과거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과 상처를 남겼던 일본의 군 부대가 욱일기를 흔들며 광화문 네거리를 행진하겠다는 발상과 흡사하다. 


ⓒ뉴시스


물론 호국 보훈 한마음 퍼레이드라는 국가보훈처의 고유 행사 자체를 문제 삼겠노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국가 유공자의 예우 시책과 참전 군인 및 제대 군인 지원 사업을 책임 지고 있을 보훈처의 입장에서는 호국의 달인 6월과 6.25 기념일이 돌아왔으니 일종의 대목을 맞이한 셈이다. 그에 따른 기념행사는 보훈처의 고유 업무 소관이기도 하거니와 국가 유공자 및 제대 군인들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사안이다.


다만, 국가 유공자와 군인들에 대한 예우 이상으로 국민의 정서 또한 소중한 것이 아닐까? 여전히 상흔을 간직하고 있을 광주시민들을 보듬지는 못해도 적어도 사전에 헤아리는 노력 정도는 기울여야 했음이 옳지 않을까? 때문에 누가 보더라도 보훈처의 이번 결정을 선뜻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다. 이를 조금 완곡하게 받아들이자면 주변을 돌아보는 노력을 게을리한 게 아닐까 싶고, 그도 아니라면 결과적으로 광주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뜨악한 현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퍼레이드에 참여하려 했던 11공수여단은 어떤 부대인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으로 투입되어 광주시민들을 능멸했던 부대다. 계엄군 내지 진압군이라는 이름 자체도 거부감이 들게 하지만 이들이 당시 광주시민들에게 행했던 과거의 행적은 차마 다시 들추고 싶지 않을 만큼 잔혹하기 이를 데 없다. 1980년 5월19일 금남로와 옛 전남도청 앞에서 시민들을 향해 집단 발포해 최소 550여명의 사상자를 발생시킨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이 발생한 지 36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어느덧 한 세대를 훌쩍 흘려보냈건만, 광주시민들에게 있어 당시의 충격과 고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들을 처참하게 짓밟았던 군 부대가 민주화의 성지인 금남로를 행진하는 장면은 당시의 아픈 기억을 고스란히 깨우는 일종의 주술과 진배없다. 집단 트라우마를 앓고 있을 시민들 앞에서 또 다시 과거의 그 끔찍했던 모습을 재현하겠다고 하니, 이러한 비정상적이며 몰상식한 사고 체계로 과연 국가 유공자 등에 대한 올바른 지원 업무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까?


ⓒ한국일보


전남도청과 금남로에서 진압부대 소속 군인들이 행진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시민단체와 정치권 그리고 사회 일각의 지적도 같은 맥락이다. 이와 관련하여 국가보훈처는 두 가지의 결정적인 잘못을 저질렀다. 우선 민주화의 성지 금남로를 진압부대 군인들로 하여금 행진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애초 있을 수 없는 결과물이고, 두번째는 논란으로 확산될 때까지 입장을 바꾸지 않은 채 꿋꿋하게 행진 계획을 고수한 점을 들 수 있다. 한 언론의 표현을 빌리자면 제대로된 몽니가 아닐 수 없다.


역사를 망각하고 시민에 대한 배려를 모르는 이들이 국가 유공자나 군인들에 대한 참다운 배려와 예우가 가능할까? 논란과 갈등을 의도적으로 부추겨 광주시민들을 모욕하고 5.18 민주화운동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라면 이러한 발상과 그 뒤에 이어진 행동들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국가보훈처는 앞서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도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거부로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이는 5.18 기념일이 돌아올 때마다 되풀이되고 있는 볼썽사나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광주시민을 모욕하고 우리 헌법의 기본 정신이기도 한 민주화의 역사를 대놓고 조롱하는 국가보훈처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과 한계를 이미 훌쩍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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