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고향세' 도입 마다할 이유 없다

새 날 2016. 6. 19.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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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란 단어에는 왠지 아련함 같은 게 묻어있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온 곳이라 마치 어머니와 같은 존재로 다가오는 이유 때문일 테다. 다른 한편으로는 어릴적부터 흥얼거려오던 국민 가곡 '고향의 봄'에 담긴 구슬픈 정서가 절로 떠오르는 탓일 수도 있다. 그런데 더욱 신기한 건 도시가 고향인 나 같은 사람에게도 고향이라고 하면 막연히 시골 따위가 연상되곤 한다는 사실이다. 근래 귀농 귀촌 열풍이 불고 있는 이면에는 세상살이가 갈수록 각박해져가는 현상의 반작용적인 측면도 엿보이나, 어머니의 품과 흡사한 고향의 이미지가 연상되는 공간에서 여생을 누리고 싶은 욕구가 반영되어 나타나는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가 담긴 현상이 아닐까도 싶다. 


근래 우리의 고향이 많이 아프다고 한다. 수도권으로의 인구집중이 가속화되며 수도권 과밀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공화국'이라는 용어는 이러한 현상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외국인이 붙여준 별칭이다. 모든 산업 기반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이뤄진 탓에 지역경제는 아사 직전이다. 서울과 수도권의 면적은 전체 국토의 11%에 불과하지만,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이곳에 몰려 사는 기형적인 형태를 띤다. 우리나라 경제력의 3분의 2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으며, 덕분에 국세 수입 또한 서울과 수도권이 전체의 4분의 3을 차지할 정도로 과밀화 현상은 심각하다. 


ⓒ중앙일보


게다가 저출산 고령화의 급속한 진행은 우리 고향의 인구를 감소시킴과 동시에 마을공동체마저 무너뜨리고 있다. 거주민이 줄고 고령화된 지역에서 세수가 늘어날 리 만무하다. 2015년 우리나라 지자체의 재정 자립도는 50%에도 채 못 미친다. 그나마 특별시와 광역시는 평균 61.2%에 이르나 군 단위는 17%에 불과해 극히 저조한 수준이다. 전체 지자체의 30% 이상이 자체 세수로 공무원들의 인건비조차 마련하지 못할 만큼 재정 상태가 취약하기 이를 데 없다.


문제는 앞으로 이러한 격차가 더욱 벌어지리라는 데 있다. 가뜩이나 인구 부족으로 허덕이는 상황에서 젊은 계층은 진학과 취업을 위해 교육과 경제 기반이 월등한 수도권으로 모두 빠져나가다 보니 지방의 경제 구조는 더욱 악화일로로 치달을 테고, 반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갈수록 과밀화되어 도농간의 재정 격차가 커질 수밖에 없다. '고향세'라는 조금은 특이한 세금이 근래 주목 받고 있는 건, 바로 이렇듯 발등에 떨어진 불을 당장이라도 꺼야 할 만큼 급박한 처지이기 때문이다. 


세금 이야기를 하면 납세의 의무를 지고 있는 국민의 입장에서는 영 달갑지 않기 마련이고, 거부감부터 드는 게 인지상정일 테다. 하지만 적어도 고향세에 대해서만큼은 지레 겁 먹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고향세'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세금과는 그 납세 방식부터 다른 탓이다. 추가로 세금을 더 내야하거나 부담을 짊어지어야 하는 건 단언컨대 없다. 다만,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 낸 세금 중 일부를 고향 등 후원하고 싶은 지자체에 기부하는 형태를 띨 뿐이다. 



즉, 대도시 지역 주민이 소득세나 주민세 등 세금의 일부를 자신의 고향이나 후원하는 지방의 세입으로 납세할 수 있도록 결정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재정자립도가 취약한 지방자치단체를 지원하고 도농간 재정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제도가 다름아닌 '고향세'다. 타지에서 일하는 이들이 자신을 키워 준 고향의 발전을 위해 소득세나 주민세의 일부로 기부하면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게 해주는 게 해당 제도의 골자다. 흥미로운 건 후원하는 사람이 기부금의 사용처를 직접 지정할 수 있도록 투명성을 높인 대목이다. 게다가 후원을 받은 지자체에서는 그에 대한 답례로 지역 특산품을 선사해 주기도 한다. 


이 제도는 우리보다 일찌감치 인구 감소 현상을 겪으며 세수 부족에 시달려온 농어촌을 살리기 위해 일본 정부가 내놓은 발상이다. 지난 2008년 5월 1일 대도시와 지방의 세금 격차를 줄이고자 단행됐다. 처음 등장할 당시만 해도 일본 내 반응은 그다지 좋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와 관련한 혜택을 늘리고, 후원을 받은 지자체의 보답품이 점차 고급스러워지면서 최근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단다. 도입 당시 5만4천 건에 불과하던 것이 최근 227만5천 건으로 42배나 증가하였으며, 금액은 81억 엔에서 454억 엔으로 5.6배나 늘었다. 한 일본 매체의 분석에 따르면 고향세의 70%가 도쿄, 오사카, 나고야 등 일본의 3대 대도시권 주민들이 낸 것으로 드러났다. 결과적으로 볼 때 일종의 낙수효과다. 왜냐하면 도시에서 시골로 돈을 흘려보내 도농간 소득 격차를 완화하는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기 때문이다. 


ⓒ새전북신문


우리 역시 고향세의 개념을 들고 나온 지는 꽤 됐다. 지난 2008년 당시 창조한국당의 문국현 대선 후보가 고향세 도입을 대선공약으로 내놓은 적이 있으며, 2009년에는 국회에서 발의됐다가 폐기된 바 있다. 2010년에는 한나라당 대선공약으로 반짝 등장하기도 하였으나 앞서와 마찬가지로 빛을 보지는 못 했다. 시간이 제법 흐른 데다 근래 지방 재정 사정이 너무 어려워지다보니 지자체마다 이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나서고 있는 형국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수도권 과밀 현상이니 지역균형발전을 떠들어대면서도 정작 실효성 있는 정책이 나오지 않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고향세는 큰 노력 없이도 지역간 재정 격차 축소와 지역균형발전, 아울러 도농상생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 충분치는 않더라도 일정 부분 가능케 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살고 있는 도시민들은 자신의 고향을 후원하며 해당 지자체에 대한 애정을 듬뿍 키워나갈 수 있을 테고, 지자체는 지자체 나름대로 이를 통해 재정 자립도를 확충할 수 있을 테니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 


고향세가 자리 잡게 될 경우 후원에 대한 보답으로 제공되는 지역 특산품, 즉 농축수산물의 소비까지 덩달아 증가, 모처럼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는 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도농간의 교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 될 테며, 세수 증가 효과를 본 지자체로서는 지역 일자리를 대폭 늘리는 기회와 정면으로 마주하게 될 테다. 물론 일본에서 부작용으로 드러난 고향세액의 지자체 간 격차 확대와 보답품에 대한 경쟁 과열 현상 등에 대해서는 제도 시행에 앞서 면밀한 분석을 통해 보완해야 할 사안이다. 


고향세를 통해 고향을 경제적으로 후원함과 동시에 과거 고향과 관련한 아련한 추억을 곱씹게 해준다는 사실만으로도 도시민 및 현대인들에게 있어 이는 정서적으로 매우 유익한 제도다. 이를 마다해야 할 이유를 딱히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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