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국회의원 금배지 폐지, 적극 환영합니다

새 날 2016. 6. 22.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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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은 예나 지금이나 부를 상징하는 광물이다. 근래 유행하는 금수저 흙수저 계급론 역시 같은 맥락 속에서 탄생한 경향이 크고, 백일이나 돌을 맞은 아기에게 행운과 부를 가져다 줄 것이라며 금반지를 선물하거나 시중에서 황금열쇠 따위의 액세서리가 꾸준하게 인기를 끄는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이다. 아울러 부는 권력을 몰고 다니기 마련이다. 


최근 '금배지'가 화제다. '금배지' 하면 엄밀히 말해 금으로 만든 배지의 형태를 일컫는다. 하지만 대중들에게 있어 그보다는 국회의원을 의미하는 상징물로 각인돼 있다. 즉, 우리 사회에서 금배지라는 단어에 담긴 함의는 원래의 쓰임새보다 국회의원과 금배지를 등치시켜 의원을 상징하거나 혹은 그들의 권력과 특권을 부각시킬 때 흔히 사용되곤 한다. 


ⓒ세계일보


그런데 최근 국회의원의 상징인 이 금배지를 떼자는 의견이 국회 내부로부터 나왔다. 국회 윤리위원장으로 선출된 백재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일 국회 금배지 폐지를 제안하고 나선 것이다. 의원 배지는 책임과 봉사의 상징이 아니라 특권과 각종 예우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는 데다 일제의 잔재라는 측면에서 청산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물론 반대 의견도 만만찮다. 국회의원의 불필요한 권위의식을 불식시켜 나가자는 데엔 동의하지만 수십 년 동안 누적된 전통이며 관행인데 권위의식의 원죄를 모두 금배지로 몰아간다는 건 무리라는 주장이다. 아울러 배지를 착용하고 있으면 이를 통해 막중한 사명감과 책임 의식을 갖게 되고, 그에 걸맞게 자신을 성찰하며 의정활동이 가능하도록 마음가짐을 다지는 순기능적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의원 배지의 등장은 1948년 제헌국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제헌의원들이 일본의 의원 배지를 그대로 모방한 형태가 오늘날 의원들이 왼쪽 가슴에 패용하고 있는 바로 그것이다. 우연한 모방이 반세기가 넘도록 일종의 전통이 된 채 굳어져 버린 셈이다. 일제 잔재라는 주장은 다름아닌 이를 근거로 한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금배지는 진짜 금배지가 아니다. 실제 가치는 이름에 비해 매우 보잘 것 없다. 재료의 99%가 은으로 이뤄져 있으며, 금을 이용하여 도금하는 방식으로 제작되기 때문이다. 가격은 19대 국회를 기준으로 개당 3만5천 원이다. 



그러나 금배지를 단순히 그것이 지닌 재산적 가치로만 판단하는 사람은 드무리라 짐작된다. 그보다는 특권과 권위의식을 나타내는 징표로 여겨온 경향이 큰 탓이다. 비단 국회의원뿐 아니라 이른바 이름값 하는, 주로 관료나 전문 직종에 몸담고 있는 직업인들의 경우에도 경쟁적으로 금배지와 비슷한 배지를 패용하는 경우가 많다. 지자체 의원들 역시 금배지와 유사한 배지를 하나씩 달고 있다. 배지의 크기를 경쟁적으로 키우는, 결코 웃을 수 없는 현상마저 심심찮게 보인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들이 왜 이토록 배지에 연연하는가를 알 것도 같다. 유난히 크면서도 윤이 나는 배지에 시선이 멈추게 되는 순간, 우리의 머릿속에 이미 각인돼 있던 의회권력 등이 지니고 있을 법한 권위의 상징체계가 재빠르게 작동하면서 배지가 지닌 이미지로 그 사람을 덧씌우는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금배지는 그 상징성이 남다르다. 때문에 이를 떼자는 주장에 대해 한낱 쇼에 불과하다거나 또 다시 일회성 이벤트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은 결코 엄살이 아니다. 하지만 혹여 그렇다고 하더라도 모든 변화는 아주 작고 사소한 것부터 시작되는 법이거늘, 금배지 떼기가 의원들의 특권 내려놓기, 더 나아가 사회에 만연한 권위주의에 일대 변화를 가져오는 단초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기에 좋은 시도로 받아들여진다. 배지를 착용하고 있어야 사명감과 의원으로서의 책임의식을 가질 수 있다는 주장은, 반대로 말하자면 그들이 그동안 배지를 통해 누리거나 얻을 수 있었던 특권의식이 그만큼 컸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셈이라 되레 특권을 내려놓고 싶지 않다는 궁색한 변명으로만 들릴 뿐이다.


ⓒ중앙일보


20대 국회의 개원과 동시에 국회 지도부와 여야 의원들 저마다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를 공언하고 나섰다. 국회의장뿐 아니라 윤리위원장이 이를 언급하였고,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보좌진 월급 상납 금지, 국회의원 수당 특별활동비 심사 등을 골자로 하는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및 갑질금지' 법률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국회가 새롭게 시작되자마자 이렇듯 봇물 터지듯 특권 내려놓기 제안들이 일제히 쏟아지고 있는 현상은 그만큼 국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극에 달해 있다는 방증이자 의원들 역시 그의 심각성을 결코 모르지 않노라는 의미다.


물론 과거에도 의원들의 특권 내려놓기 주장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유야무야되거나 흐지부지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때문에 이번 금배지를 떼자는 주장 역시 보여주기로 그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시도가 바람직한 건 어쨌거나 특권을 내려놓기 위해선 무슨 형태가 됐든 디딤돌이 필요하고, 금배지가 그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한 매체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 95%가 금배지 폐지를 찬성하고 있단다. 국민이 무엇을 바라는지 이보다 명확할 수는 없다. 더구나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는 일이라고 하니 이를 마다해야 할 명분을 딱히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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