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여성 전용칸이 불편하고 불만이신가요?

새 날 2016. 6. 18. 13:06
반응형

부산교통공사가 22일부터 3개월간 부산지하철 1호선에서 출퇴근 시간에 여성 전용칸을 시범 운영하기로 했다는 소식입니다. 시범이란 글자가 들어간 이유는 3개월간 운영하면서 여론을 수렴한 뒤 폐지 또는 확대 시행 방침을 결정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부산교통공사에 따르면 출근 시간인 오전 7시에서 9시 사이와 퇴근 시간인 오후 6시에서 8시 사이에 운행하는 도시철도 1호선 전동차 8량 가운데 5호차를 여성 전용칸으로 운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승객이 몰리는 시간대에 임신부와 영유아를 동반한 여성을 배려하고, 성추행 등 지하철 범죄로부터 여성을 보호하려는 취지에서 비롯된 발상입니다.


온라인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벌써부터 찬반 논란이 뜨겁습니다. 하지만 대체로 부정적인 시각이 우세합니다. 아직 시행 전인데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정말로 여성을 보호할 요량이라면 여성 칸을 만드는 일보다 성추행 등 지하철 범죄에 대한 단속과 신고를 원활하게 하고, 그에 따른 형량을 대폭 높이는 게 우선이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심지어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반감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입니다.


ⓒ부산교통공사


물론 결코 틀린 의견은 아니며 이해 못 할 바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과거 비슷한 제도가 수차례 시도된 바 있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해 흐지부지되곤 했으니까요. 서울 지하철의 경우 지난 1992년과 2007년, 2011년 세 차례에 걸쳐 유사한 제도를 시도한 사례가 있습니다. 대구 지하철도 2013년에 이를 운영했던 적이 있습니다. 비단 지하철뿐만이 아닙니다. 분홍색의 여성 전용 좌석이 마련된 버스를 도심에서 심심찮게 만날 수 있습니다. 고속버스 등에도 비슷한 취지의 좌석이 설치돼 있습니다. 물론 유명무실한 경우가 태반이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과거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또 다시 비슷한 카드를 자꾸만 꺼내들게 되는 것일까요? 짐작가는 대목이 여럿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이와 관련하여 우리 생활과 가장 밀접한 한 가지 사례만을 들어보겠습니다. 서울 지하철 객실 곳곳에는 분홍색의 임신부 배려석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눈에 띄지 않아 사실 양보가 잘 이뤄지지 않아온 경향이 있었습니다. 서울시가 고심 끝에 이에 대한 디자인을 획기적으로 바꿨습니다. 좌석은 물론, 좌석 뒤쪽의 벽면과 바닥까지 온통 분홍색 앰블럼으로 도배하고 띠로 이를 연출하여 주목도를 대폭 높인 것입니다. 이후 다른 좌석과 확연하게 구별되는 터라 누가 보아도 일반 좌석이 아님을 알 수 있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디자인을 개선한 뒤로는 임신부 등 약자에 대한 배려가 잘 이뤄지고 있을까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디자인을 개선하기 전과 후, 딱히 달라졌다고 할 수 없을 만큼 유명무실한 제도가 되고 말았습니다. 남녀 불문하고 대다수의 승객들이 그곳에 덥석 앉는 모습을 흔치 않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의 경우 가운데에 위치한 좌석보다는 좌측이나 우측 끝의 좌석이 조금은 편하게 와닿는 터라 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임신부 전용 좌석이 끝에 마련돼 있다는 점 역시 그러한 편의성이 반영된 산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다 보니 임신부석을 비워놓을 경우 오히려 일반인들끼리 이에 앉으려고 서로 다투는 경향마저 읽힙니다. 구석진 곳은 누구에게든 군침을 흘릴 만한 자리일 테니까요. 즉, 배려한답시고 비워놓아 봐야 되레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일을 시키는 결과물이 되기 일쑤입니다.


해당 좌석의 진짜 주인인 임신부가 그 자리에 앉고 싶어도 왠지 말을 꺼내기조차 민망할 만큼 애초 분홍색이 담보하고 있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중들이 임신부석이라는 존재를 몰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고 있는 것인지,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만으로는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다만, 그와는 별개로 애써 꾸며놓은 임신부석이 이름값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합니다.


임신부가 아닌 사람들이 그곳에 앉는다는 건, 임신부가 양보를 요구해올 경우 그에 응하리라 마음을 먹고 있기 때문일까요? 물론 이런 마음이라도 갖고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임신부석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마치 남의 일인 양 전혀 신경조차 쓰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일 테니까요. 하지만 원래는 임신부가 언제든 와서 편하게 앉을 수 있도록 해당 좌석을 비워 놓아야 하는 게 애초의 도입 취지 아니었을까요? 앞서도 언급했듯 누군가 앉아있으면 왠지 비켜달라고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은 노릇일 테니 말입니다. 아무리 복잡한 출퇴근 시간대라 하더라도 적어도 우리에 비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월등히 힘들어할 그녀들을 위해 해당 좌석을 무조건 비워놓아야 하는 게 옳지 않을까요?


ⓒ여성신문


우리의 시민의식은 앞서 여성 전용칸이라는 유사한 제도가 시행됐던 당시와 견주어도 여전히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약자에 대한 배려심은 눈을 씻고 찾을래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절대로 누구를 탓할 입장이 못 됩니다. 혹자는 여성 전용칸 운영 제도가 계층을 나누고 갈등을 더욱 부추긴다며 하소연하곤 합니다만, 과연 우리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기는 한 걸까요? 앞서 살펴본 사례 하나만으로도 과거에 실패했던 이러한 제도가 왜 또 다시 생겨날 수밖에 없는가를 여실히 일깨우고 있는 게 아닐까요? 즉, 일각에서는 실효성을 언급하며 여성을 약자로 받아들이거나 배려해야 하는 이유를 딱히 모르겠다고 쉽게 말하곤 합니다만, 일상에서의 몸에 밴 태도와 우리 안의 잠재된 의식속에 바로 그에 대한 해답이 담겨있는 게 아닐까요? 


여성 전용칸이 여전히 불편하고 불만이신가요? 하지만 이는 약자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 서로에 대해 배려할 줄 모르는 시민의식이 개선되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제도입니다. 유사한 제도가 자꾸만 시행된다는 건 우리에게 그만큼 배려심이 부족하다는 방증일 테니 이를 비아냥거리고 비난하기보다 오히려 반성의 기회로 받아들여야 함이 옳을 것 같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