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상시 청문회 거부권 행사, 협치는 어디로?

새 날 2016. 5. 28. 12:29
반응형

박근혜 대통령이 27일 상시 청문회를 가능케 하는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사실상 이러한 결과는 진작부터 예견돼왔다. 그러나 왜 하필이면 27일이었는가에 대해서는 구구한 해석과 함께 뒷말이 무성한 상황이다. 야당은 꼼수행정이라며 즉각적인 반발에 나섰다. 4.13 총선 이후 협치를 강조하며 잇따른 제스처를 취해온 박근혜 대통령이거늘 이러한 결과는 20대 국회가 열리기 전부터 정치권과의 관계를 삐걱거리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야당은 왜 대통령의 고유 권한 행사에 대해 꼼수행정이라며 극한 표현마저 숨기지 않고 있는 걸까? 19대 국회 임기는 29일까지다. 하지만, 28일과 29일이 주말이어서 사실상 27일이 국회가 일할 수 있는 마지막 날에 해당한다. 법률안 거부권에 따르면, 거부된 법안에 대해 국회에서 재의결에 부쳐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시 법률로서 그대로 확정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사실상 19대 국회의 마지막날인 27일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결국 이에 대한 일말의 가능성마저 원천적으로 봉쇄한 셈이다.

 

ⓒ청와대

 

그렇다면 도대체 상시 청문회가 무엇이길래 입법부와 행정부를 이토록 극한 갈등으로 치닫게 하는 걸까? 청문회란 국회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현안이나 이슈에 대해 그의 관계자 내지 전문가를 불러 의견을 듣는 자리다. 이의 목적은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현안에 대해 사실과 인과 관계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가장 바람직한 국정 방향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이번에 거부된 국회법 개정안은 본회의가 아닌 상임위원회만으로도 소속위원 과반의 동의가 있을 때 소관 현안에 대해 상시로 청문회를 개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한 의견 차이는 입법부와 행정부의 갈등만큼이나 극명하다. 우선 찬성하는 측의 의견을 먼저 들어보자. 반대하는 측이 주로 내세우는 청문회 남발 가능성에 대해 이와 관련한 조항은 청문회의 실시 사유와 요건을 대폭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주요 현안 조사를 위한 청문회를 법률에 명시하는 것뿐이라며 이를 일축하고 있는 입장이다. 아울러 청문회의 긍정적인 효과를 결코 간과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즉, 공무원들이 청문회에 불려나가지 않기 위해 정책을 좀 더 신중하게 실현하게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청문회란 반드시 공무원만 참여하는 게 아닌, 사회 각 분야 전문가나 학자 그리고 시민단체 등이 그 대상이 될 수 있기에 마치 공무원만 참여하는 것처럼 해석하고 떠드는 건 청문회의 근본 취지를 호도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또한 본회의와 상임위별 청문회는 사안에 따라 달리 다뤄지기에 이를 같은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상시 청문회를 반대하는 측의 의견을 들어보자. 역시 가장 큰 우려는 소관 현안 조사라고 하여 본회의가 아닌 각 상임위에서 이의 여부를 정할 수 있고, 절차가 간단해져 청문회가 남발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꼽는다. 최악의 경우 정치적으로의 악용 소지를 우려하기도 한다. 각종 사회적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상임위별 청문회 개최가 남발되고, 또한 정치적 의도로의 활용 가능성마저 열려져있다는 의미다. 행정력 낭비는 빠지지 않는 반대 의견 중 하나다. 청문회가 남발될 경우 공무원들이 본연의 업무에 소홀하게 되고 청문회 준비에 행정력을 낭비하게 되며, 이는 결과적으로 공무원들이 소신껏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꼴이라는 주장이다.

 

찬성과 반대 측 입장을 유심히 살펴보면, 둘 모두 결코 틀린 주장은 아니다. 단순히 어느 측의 의견이 무조건 옳다며 손을 번쩍 들어줄 만한 사안이 아니라는 의미다. 상시 청문회를 주장하는 측은 스스로의 권한인 견제와 감시 기능을 통해 올바른 방향으로의 국정을 꾀하려 함이 그의 취지일 테고, 그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측은 잦은 청문회 때문에 행정력이 낭비되거나 소신 있는 행정을 펼칠 수 없노라는 볼멘소리를 내고 있는 입장이다. 하지만 어쩌면 영원히 해답을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은, 흡사 평행선을 달리는 듯한 이러한 논쟁이 보다 생산적인 대화와 논의를 통해 우리의 민주주의를 한 차원 높은 방향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다가오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뉴스1

 

입법부와 행정부는 상호 견제와 균형이라는 숙명적인 관계로 엮여있다. 이는 국가권력을 분리시켜 상호 견제 억제하게 함으로써 국가질서의 균형 있는 안정을 이루도록 하는 민주적인 통치 원리의 산물이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상호 간 양보하기 어려운 이견과 갈등이 발생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사람 사이에서도 갈등은 피할 수 없거늘 하물며 권력 주체라면 오죽할까 싶다. 어쨌거나 입법부와 행정부 간 벌이는 치열한 논쟁은 처음에는 평행선에 불과할지 몰라도 점차 그 간극을 좁혀나가며 결국 대화와 타협을 통해 생산적인 결론으로 도출시킬 수 있는 사안임이 명백하다.

 

그러나 대통령은 그러한 활로와 가능성 모두를 아예 차단해버렸다. 물론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은 헌법 제53조를 통해 보장되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임이 분명하다. 아울러 행정부에 주어진 마지막 대응수단이자 가장 강력한 권한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난 총선 당시 민심 이반으로 여소야대 국회가 탄생한 이래 대통령은 협치를 강조하며, 야당과의 접촉면을 넓히는 등 그동안의 불통 이미지를 벗어나는 듯 싶었으나, 국민의 대표기관인 입법부를 상대로 극한 대결 끝에 여당과 정부의 법 논리에 따를 경우 20대 국회로 넘겨서 의결할 수도 없는 상황인 데다, 그렇다고 하여 19대 국회에서는 날짜 부족으로 재의결을 할 수도 없는 날짜를 일부러 골라 거부권을 행사하고 말았다. 이는 결국 권력 상호 간 견제와 균형,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대화와 타협마저 완전히 걷어차버린, 의회 민주주의를 향한 폭거가 아니면 무엇일까. 20대 국회도, 대통령의 남은 임기도, 모두모두 순탄치 않으리라는 전망은 가뜩이나 경기 침체로 우울한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 한다. 안타깝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