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대기오염의 주범이 비단 디젤 차량뿐일까?

새 날 2016. 5. 22.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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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는 그 경제적 가치가 부동산에 준할 만큼 크게 다가온다. 때문에 선뜻 구입하기가 어려우며, 또한 한 번 구입했을 경우 적어도 수년 동안은 웬만해서는 바꾸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주택 다음으로 정말 큰 맘 먹고 구입하는 제품의 대명사격이 아닐까 싶다. 아무래도 경제성과 정책, 성능 등 여러 조건을 주욱 나열해놓은 채 저울질 끝에 구입하는 방식이 가장 보편적인 자동차 구입 형태일 텐데, 최근 10년 동안 자동차 시장에서는 유독 디젤 차량이 인기였다고 한다. 왜일까?

 

배출가스는 획기적으로 줄이고 반대로 연비는 높인 클린 디젤 이미지가 덧씌워진 덕분에 폭스바겐과 닛산 사태가 불거지기 전까지만 해도 디젤 차량의 이미지는 매우 친환경적이었다. 정부도 이에 질세라 유럽의 환경 기준을 일정 수준 충족시키면 환경개선부담금을 면제해주는 등 온갖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자동차 제조사들을 돕는 한편 소비자들의 선택에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엄격하기만 했던 디젤 차량의 배출가스 초과에 대한 과징금 기준도 대폭 완화됐다. 레저 활동이 일상화되면서 SUV 형태의 차량이 인기몰이를 하게 된 것도 디젤 차량 대세의 일등공신이다.

 

유류에 붙는 세금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덕분에 가솔린 차량에 비해 경제성이 훨씬 뛰어나고, 성능 그리고 환경적인 측면까지 소비자들의 욕구를 두루두루 만족시키다 보니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디젤 차량을 구입하지 말아야 할 하등의 이유란 없었다. 그동안 국내에 들여온 수입차의 70% 가량이 디젤 차량이었으니 이쯤되면 디젤 차량 전성시대라 불릴 만도 하다. 통계 결과도 이러한 추세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국토교통부와 한국자동차산업협회 등에 따르면, 승용차 가운데 디젤(44.7%)의 비중이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가솔린(44.5%)을 앞서는 기염을 토했다고 한다. 불과 6년 전까지만 해도 가솔린 승용차 비중은 68.1%로, 디젤(18.5%)을 크게 압도하고도 남을 정도였으니 대단한 반전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최근 이러한 분위기는 급변모됐다. 클린 디젤이라는 이미지가 급작스레 추락하게 된 건 폭스바겐의 디젤 게이트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디젤은 친환경이다'라는 그동안의 굳건했던 등식은 모두 허구로 드러나게 됐고, 근래엔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마저 부각되면서 외려 이의 주범으로 내몰리는 처지가 됐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의 대기는 툭하면 미세먼지와 황사로 인해 숨쉬기마저 곤란해질 정도로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데, 그동안 칭찬 일색이던 디젤 차량이 그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상황이니 이쯤되면 격세지감이라 할 만하다.

 

우리는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의 원인을 모두 중국에 원죄로 돌리며 애써 모른 척해온 경향이 크다. 우리 스스로가 원인 제공을 하고 있다는 논리는 그나마 근래 주장되고 있는 사실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국내 미세먼지의 30% 정도는 중국에서 유입되고 있으며, 절반 이상은 국내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단다. 그렇다면 정부는 그동안 무얼 하고 있다가 이제와서 뒤늦게 호들갑인 걸까? 일부 시민들에게는 세금을 올리려는 꼼수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니다. 정부가 아직 정확한 미세먼지 오염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현상을 더욱 부추기는 요인이다.

 

 

서울에는 현재 25개의 미세먼지 측정소가 있으나, 핵심 측정소가 상대적으로 공기가 맑은 공원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는 등 시민들의 체감지수와는 완전히 딴판이라는 비판을 낳고 있다. 대기질 통합관리시스템 또한 자료 분석 기능이 크게 미흡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오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의 원인을 중국보다는 우리 내부 탓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거나 대기오염의 주범으로 디젤 차량을 지목하는 사실에 대해 일각에서 '모순이다' 라고 하는 건, 다름아닌 이렇듯 정부가 미세먼지에 대한 분석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다.

 

근래 나빠진 대기 환경과 관련한 각종 통계 수치들이 봇물을 이루던 참이다. 미국 예일대와 컬럼비아대 공동 연구진이 발표한 '환경성과지수'를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공기질 부문에서 100점 만점에 45.51점을 받아 전체 조사대상 180개국 가운데 173위로 세계 최하위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공기질의 세부 조사항목 중 '초미세먼지 노출 정도'에서는 174위를 차지했다. 국립환경과학원도 관련 통계 결과를 내놓았다. 수도권의 대기 상태를 조사했는데 질소산화물 배출량의 약 70% 가량이 각종 차량 등에서 발생한 것으로 분석됐으며, 이 중 약 76% 정도가 디젤 차량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이러한 통계 수치들을 이용하여 정부는 최근 대기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시키고 있으며, 미세먼지에 따른 종합대책의 일환 중 하나로 경유값 인상안을 들먹이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물론 아직 결정된 건 전혀 없으나 디젤 차량 차주들로부터 불만이 불을 뿜고 있는 모양새다. 왜 아닐까 싶다. 그동안 친환경적이라며 각종 인센티브까지 제공해주고 디젤 차량의 홍보대사를 자임했던 정부 아니었던가. 그랬던 정부가 이제와서 디젤 차량을 대기오염의 주범이라며 급작스레 방향을 선회하고 나섰으니 어찌 당황스럽지 않을 수 있으며, 불만스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정부는 대기가 지금과 같이 악화돼온 근 10년 동안 환경오염과 관련하여 도대체 무슨 일을 해온 것인지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혹시 자동차 제조사들의 안위가 걱정되어 이를 알면서도 묵인해온 건 아닐까? 아니면 폭스바겐 사태가 터지고 미세먼지 등의 대기오염 상황이 심각하게 부각되고 나서야 비로소 해당 문제가 눈에 들어오기라도 한 걸까? 만일 디젤 차량이 대기오염의 주범이란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묵인한 채 인센티브 등을 제공하며 지속적으로 디젤 차량의 판매를 촉진해온 게 사실이라면 그 자체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결과물이 되겠으나, 혹여 그렇지 않더라도 환경을 이토록 방임한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는 노릇일 테다. 

 

친환경 자동차라며 그동안 판매를 적극 독려해와놓고 이제와서 디젤차를 구입한 소비자들에게 자신들의 책임을 오롯이 떠넘기려는 행위는 전형적인 뒷북 행정 아닌가? 디젤 차량 소비자들은 평생 동안 단 한 차례, 아니 많아야 2-3회에 불과한 차량 구입과 관련하여 정부의 정책을 믿고 구입했건만, 새삼스럽게 이를 180도 바꾸겠다고 나선 상황이니 정부의 정책을 당췌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자동차 제조사의 추악한 거짓과 속임수도 심각한 문제이긴 하나, 대기오염의 주범은 디젤 차량이라는 명제가 틀림없는 사실이라면 정부 역시 그의 책임으로부터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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