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김영란법, 국민적 여망이 무시되어선 안 된다

새 날 2016. 5. 10.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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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김영란법'이라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 금지법'은 지난해 3월 제정됐다. 국민권익위원회가 2012년 8월 해당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지 무려 929일만의 일이다. 이토록 힘겹게 통과된 해당 법안은 우리 사회에 깊숙이 자리잡은 부정부패의 관행을 완전히 뿌리뽑아야 한다는 국민적 여망에 힘입은 바 크다. 1년 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오는 9월 28일 시행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법 통과만큼이나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마침내 시행령안이 9일 입법예고됐다. 법률 시행을 위한 준비 작업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음을 의미한다. 입법예고에만 1년여의 시간이 걸렸다는 건 그만큼 이해 충돌 상황이 만만치 않노라는 방증이다.

 

아니나 다를까? 김영란법 시행일이 시시각각 다가오면서 재계와 정치권 일각에서는 내수 위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한층 높이고 있는 모양새다.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된 언론계 역시 일부 언론이 총대를 맨 채 이들과 함께 본격적인 여론몰이에 나선 형국이다. 물론 법 통과 당시에도 재계 등으로부터 내수 위축과 경제 활성화에 악영향이 미칠 전망이라는 볼멘소리가 비등했던 게 사실이다. 때문에 이러한 우려는 결코 낯설지 않다. 종국에는 대통령까지 이에 가세한 모양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중앙 언론사 편집 보도국장 오찬 간담회에서 "좋은 취지로 시작했던 게 내수까지 위축시키면 어떻게 하느냐. 합리적인 수준에서 하려고 연구를 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뉴스1

 

이번에 입법 예고된 시행령안을 살펴보면 현행 공무원 행동강령의 음식물 접대 허용 한도 3만 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경조사비 허용 한도를 5만 원에서 10만 원으로 대폭 늘렸다. 아울러 공무원 행동강령에서는 허용되지 않던 선물 5만 원 한도를 이에 포함시켰다. 경조사비와 선물의 경우 기존 공무원 행동강령에 비해 크게 완화된 기준이기에 이는 자칫 김영란법의 도입 취지마저 무색케 할 우려가 있는 대목이다. 

 

권익위는 김영란법의 입법 취지,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로 나타난 일반국민의 인식 수준, 금품 등을 받은 공직자뿐 아니라 이를 제공한 국민도 처벌받게 되는 점, 상호부조 성격의 경조 문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내수 진작과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두 명제 사이에서 나름 고심했으리라 짐작되는 상황이긴 하다. 물론 음식물 3만 원이나 선물 5만 원의 한도는 요식업계 등 경제계가 바라던 기대치에 비해서는 상당히 아쉽게 다가올 법한 액수다. 가격대가 비싼 한우나 굴비 등 특정 품목에 대한 허용 한도 완화 요구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영란법은 애초의 취지대로 시행돼야 함이 옳다. 앞서 살펴본 시행령안의 내용만으로도 원래의 취지로부터 상당 부분 후퇴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해관계가 얽힌 주체들에 의해 해당 법이 자꾸만 누더기가 되어가는 현상을 보고 있자니 더 없이 안타깝다. 우리 사회에 부정부패가 만연돼있음을 인지하지 못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테다. 세계 10위권 언저리의 경제 볼륨에도 불구하고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없는 주요 이유 중 하나가 다름아닌 이렇듯 투명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현실일 테니 말이다. 그동안 접대나 청탁은 관행이라는 이름 하에 철저하게 묵인돼왔고, 때때로, 아니 거듭하여 거악의 부패 사슬로 이어져오곤 했다. 

 

 

올해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우리나라의 부패인식지수는 100점 만점에 56점으로 168개 국가 중 37위, OECD 34개 국가 중 최하위권인 27위에 머물러있다. 7년째 제자리걸음이거나 하락세에 놓여있는 셈이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실시한 부패인식도 조사에서도 60%에 이르는 응답자가 우리 사회를 부패하다고 답했다. 김영란법은 바로 이렇듯 우리만의 느슨한 윤리적 토대가 빚어낸 필연적인 산물이다. 여기에 국민의 여망까지 덧대어졌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김영란법이 통과됐을 당시나 지금 현재도 이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고 있는 업종은 한결 같다. 주로 주류나 대형음식점 등을 망라한 요식업계와 호텔, 골프, 백화점 등과 같은 접대 및 향응과 관련한 업종이다. 일부 언론사들 역시 겉으로는 내수 위축을 언급하며 김영란법에 흠집을 가하려 하고 있지만, 실은 자신들이 해당 법의 적용 대상 범주에 포함된 게 못내 못마땅해서인 듯싶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 사회를 부정부패의 사슬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했던 관행이 주로 이들 업종으로부터 비롯됐다는 건 공공연한 현실이다. 이들의 볼멘소리는 결국 청탁이나 향응 등의 온갖 부정부패가 사라지는 현상이 두렵다며 하소연하는 꼴과 진배없다. 아니 계속해서 부정부패 행위를 할 수 있게 도와달라며 공개적으로 읍소하는 행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들에 의해 관행이 돼버린 온갖 부정부패가 그동안 우리 경제를 썩어 문드러지게 하고 작금의 경기 침체로 이어지게 했던 핵심 요인이 아니었던가? 오히려 이를 걷어내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경제의 기틀이 마련될 수 있지 않을까?

 

ⓒ헤럴드경제

 

물론 한우 농가나 일부 어민들이 이로 인해 직격탄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는 건 안타까운 대목이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으로 바라볼 때 김영란법을 통해 우리 사회가 조금 더 투명해질 수 있고, 각종 불법 로비 자금이 줄어들게 될 경우 되레 경제 성장 및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리라는 기대감 또한 무시할 수가 없다. 결국 김영란법의 시행은 우리 경제 전반의 기본 체질을 확 뜯어 고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다가온다.

 

아직 시행도 하지 않은 법에 대해 벌써부터 각종 예외 규정을 두거나 접대 등의 허용 금액 기준을 지나치게 높일 경우 법의 도입 취지가 유명무실해지리라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말도 되지 않는 경기 침체를 이유로 해당 법에 자꾸만 태클을 걸어서도 안 될 노릇이다. 물론 김영란법 하나만으로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완전히 일소할 수는 없을 테다. 다만 국민적 여망이 담겨있는 만큼 이 법이 상징하는 바를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되며, 때문에 일단 법을 온전하게 시행해 보고 관행으로 묵인되어오던 온갖 부패와 관련한 사회적 인식을 제고시킨 뒤, 미흡하거나 개선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그때 가서 손질해도 결코 늦지 않을 테다. 사소한 이해관계 때문에 오랜 관행과도 같은 부정부패의 사슬을 이참에 끊어보자는 국민적 기대가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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