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김여사'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지 말입니다

새 날 2016. 5. 4.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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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공군부대를 방문한 민간인이 승용차를 타고 주요 보안시설 중 하나인 청주공항 활주로를 진입한 사건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군 부대 안이라 내비게이션이 정상 작동하지 않아 운전자가 길을 잘못 접어드는 바람에 벌어진 해프닝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욱 문제가 되고 있는 건 활주로 경계를 서고 있던 헌병이 해당 차량의 통과를 제지하지 않았노라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민간 시설이라면 단순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는 사안이었겠으나, 보안이 요구되는 특수시설이었던 터라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우리는 사람이기에 누구든 실수를 범하기 마련이다. 물론 이 포스팅을 보고 있는 당신이라고 하여 이로부터 예외일 수는 없다. 실수란 남자, 여자 그리고 제3의 성별 따위를 전혀 가리지 않는다. 이런 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때문에 누구에게든 공항 활주로라는 특수시설에 진입할 가능성이 열려져 있다. 물론 특별한 목적을 띠고 이에 진입했다면 범죄행위가 성립되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특별히 문제될 사안이 아니다. 이를 제지 못한 군의 넋 나간 행위에 대해 성토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다독이면 그만일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보도한 언론은 놀랍게도 특정 성별을 부각시키고 있다.

 

 

아침에 해당 기사를 접하면서 내 눈을 사로잡았던 건 다름아닌 기사 제목이다. ''김여사 승용차' 활주로 달렸다... 보안 뚫린 청주공항' 여기서의 '김여사'란 공항을 질주한 운전자가 실제로 김씨 성을 지닌 여성이었기에 그와 같이 지칭했을 수도 있다. 물론 전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크지만 말이다. 왜냐하면 해당 기사에서 사용된 '김여사'란, 김씨 성을 가진 사모님이라는 원래의 의미로 쓰이기보다 운전 못하는 여성을 낮추어 표현한 것임이 분명한 까닭이다.

 

우리 사회에서 '김여사'란 언젠가부터 운전이 서툰 여성을 광범위하게 지칭하는 단어로 쓰인다. 즉, 남성들은 여성에 대해 자신들보다 공간 감각이 떨어지고, 이로 인해 운전이나 주차 실력 또한 월등히 못미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때문에 여성 운전자가 도로 위에서 쩔쩔매거나 황당한 사고를 낼 때면 언젠가부터 주변에서는 '김여사'라는 호칭을 흔히 사용해 오던 터다. 이번 기사 역시 이러한 의미로 사용됐음직하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히 우스갯소리로, 혹은 재미로 이러한 단어들을 생활 속에서 사용하고 있지만, 실은 해당 표현에는 여성을 비하하려는 의도가 은연 중, 아니 노골적으로 내포돼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될 노릇이다. 이번 사건도 내막을 따져보면 운전자의 잘못을 딱히 찾아보기는 어렵다. 행사차 부대를 방문했고, 이를 마친 후 부대로부터 벗어나려다 작동하지 않는 내비게이션 때문에 길을 잘못 들어선 경우다. 그러다 보면 부근 공항 활주로로 접어들 개연성마저 다분하다. 물론 그가 여성이었든 남성이었든 이는 해당 사건의 요지와는 거리가 멀다. 이를 제지하지 못한 군의 군기 빠진 행태가 이번 사건의 핵심이다.

 

하지만 기사 제목만 보게 될 경우 '김여사'라는 호칭을 사용함으로써 마치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운전 실력이 형편 없어 공항 활주로에 들어선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 기사 내용이 그와는 전혀 거리가 멀다 해도 말이다. 이번 사건은 정작 운전자의 잘못이라기보다 군의 얼 빠진 행동 때문에 벌어진 사안임에도 기사는 철저하게 '김여사'라는 운전 못하는 여성상을 부각시키려 애쓰고 있는 모양새다. 여성이나 남성이 아닌 단순히 한 사람의 실수이거늘, 이를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김여사'와 등치시킴으로써 졸지에 모든 여성을 폄하하고 있는 셈이다.

 

 

해당 언론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기사 제목을 '민간인 활주로 달렸다...구멍 뚫린 청주공항'으로 바꿨다. 하지만 여전히 뒷맛이 개운치 않은 건 어쩔 수가 없다. 사회적 공기로서의 무거운 책무를 짊어진 기자나 언론사 스스로가 평소 여성의 지위를 얼마나 얕게 생각하고 있으면 이렇듯 막무가내식으로 제목을 뽑았을까 싶기 때문이다. 익명성에 기댄 채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평소 여성을 비하하는 현상이 우리 사회 내에 횡행해 오고 있는 현실 속에서 해당 현상을 비판하고 올바른 여론을 형성해야 할 언론이 되레 철없는 일부 네티즌들의 행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꼴이 아닌가. 이의 반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 다름아닌 '한남충'이라는 표현 따위의 남성 혐오이거늘, 때문에 오늘날 여혐 남혐 현상의 득세로부터 언론은 절대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얼마 전 디올이 개최한 한 전시회에서의 '한국 여자'라는 작품에 대한 언론 보도를 난 기억한다. 여성을 비하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노라는 내용 일색이었다. 물론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그럴 수도, 혹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예술 장르의 성격상 작품에 대한 가치판단은 오롯이 관람객의 시각에 맡겨져야 함이 옳을 테다. 작가 또한 여성을 비하하려 함이 아니라 자본주의사회의 소비 행태에 대해 꼬집기 위함이었노라 언급한 바 있다. 물론 나라고 하여 해당 작품의 작가를 두둔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다만 이와 관련하여 언론을 위시한 여론이 오로지 한 곳으로 집중됐던 점을 꼬집고 싶을 뿐이다. 더구나 그동안 스스로 여성 비하에 앞장서왔으면서 전혀 그렇지 않은 척 이중적인 행태를 보이는 언론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고 싶을 뿐이다. 결국 디올은 해당 작품을 전시회에서 철수하고 사과하기에 이른다.

 

 

앞서도 언급했듯 여성 비하 등 여성 혐오 현상과 더 나아가 남혐 현상마저 일상이 되고 있는 배경에는 언론의 행태가 한 몫 단단히 한다. 실제로 포털 검색창에서 '김여사'라는 단어 하나만 쳐 보자. 아마도 엄청난 수의 기사를 접하게 될 테다. 물론 이때의 '김여사' 다수는 공항 활주로를 진입했던 그 '김여사'와 동일 인물이다. 해당 언론사가 여론을 의식한 탓인지 비록 발 빠르게 기사 제목을 바꾸긴 했으나, 이미 보도가 나간 이상 여혐 행위에 일조한 자신들의 행태를 되돌릴 수는 없다. 앞에서는 특정 예술 작품에 대해 여혐이라며 거품을 문 채 성토 내지 비난하더니, 뒤에서는 스스로 여혐 행위를 일삼고 있으니 이 노릇을 어찌하면 좋을까?

 

'김여사'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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