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헬리콥터맘이 자녀의 삶을 되레 망친다

새 날 2016. 5. 16.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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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동창 모임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친구 아들이 군에 입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물론 이 친구가 나를 포함한 다른 녀석들보다 장가를 조금 일찍 가긴 했다. 하지만 내가 군에 입대하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건만 어느덧 우리의 2세가 군에 가야 할 나이를 알리고 있는 셈이니 싱숭생숭해지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문득 내가 나이가 들고 있음을 깨닫는다.

 

실제로 군 입대 이래 강산이 수차례 변했다. 따라서 입대하는 현장의 모습도 많이 변모했으리라 짐작된다. 아니나 다를까. 부대의 성격에 따라 다르겠으나 보통 보충대를 거쳐 자대를 배치 받은 후 해당 부대에서 훈련을 받곤 하는데, 이러한 보충대 혹은 훈련소로 입소하는 자녀를 부모들이 몸소 배웅해주는 경우가 많아 신병 입소날이면 해당 부대 주변은 이들의 차량 때문에 온통 북새통을 이룬다고 한다. 물론 친구 녀석도 그 줄에 함께했던 모양이다.

 

군에 입대 가능하다는 건 무척 고마운 일이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의 건장한 성인으로 공식 인증 받은 셈이기 때문이다. 우리 때만 해도 부모님께 큰절하고 각자 알아서 입소 부대를 찾았다. 그에 비해 작금의 세태는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과거보다 자동차 문화가 보편화되고, 다자녀 가구가 현저히 줄어든 상황이기에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임 있는 행동에 대해 의무를 부여 받은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부모가 간섭하고 무언가 영향력을 미치게 하려는 듯한 행태로 다가오는 까닭에 썩 바람직한 현상은 아닌 것으로 읽힌다.

 

물론 부모가 자녀의 삶에 관여하고 간섭하는 앞서의 모습은 그저 한 사례이자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입대한 이후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부모들 덕분에 군 부대가 몸살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가끔 전해 듣곤 하기 때문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군에 입대한 아들이 조금 힘든 병과의 부대로 배치받을 경우 훈련소에까지 전화를 걸어 편한 곳으로 옮겨달라며 떼를 쓰는 부모들이 흔하다고 한다. 과거에는 생각조차 못했던 현상이다.

 

이런 현상을 보고 있자니 대학 수강신청시 일일이 이에 참견하며 시간표와 수강 과목까지 직접 선택하여 짜주는 부모에 대한 얘기는 차라리 점잖은 사례로 받아들여진다. 성적이 좋지 않게 나오면 심지어 교수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자식 인생을 망칠 일 있냐며 항의를 하는 부모들도 심심찮게 있을 정도라고 하니 세태가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한 느낌이다. 

 

 

자녀가 성인으로 성장하여 대학에 들어가거나 사회생활을 하게 된 이후에도 아이 주변을 맴돌면서 온갖 일에 참견하는 부모를 우린 흔히 '헬리콥터맘'이라 칭한다. 이는 평생을 자녀 주위에서 맴돌며 자녀의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발벗고 나서고 자녀를 과잉보호하는 부모들을 통칭하는 용어다. 우리 교육의 비틀어진 현실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일부 부모들의 치맛바람에서 파생된 용어로, 헬리콥터가 이륙하거나 착륙할 때 엄청난 바람을 뿜어내듯 부모들이 거센 치맛바람을 일으키며 자녀 주변을 맴돌고 있는 형상에서 비롯됐다.

 

부모가 자식을 위하는 마음과 그로부터 발현되는 행동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산물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앞서 언급한 헬리콥터맘 현상이 바람직스럽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이로부터는 단순한 자녀 과잉보호 그 이상의 면모가 읽히고 있기 때문이다. 혹시 부모가 자녀를,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는 도구로 여기고 있는 탓에 이러한 현상이 빚어지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과거 못다 이룬 꿈을 자녀를 통해 발현시켜 대리만족을 얻으려함이 주된 욕망일까? 하지만 이는 자녀의 삶을 한 개인의 독립적이며 주체적인 형태로 바라보는 게 아닌, 자신의 아바타로 인식하고 일거수일투족에 일일이 간섭하는 현상에 보다 가까워 보인다. 나를 비롯한 모든 부모는 과연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오늘날 우리 사회의 부모는 자녀를 자신의 아바타로 여기고 어릴 때부터 아이들의 학습을 직접 관리하는 등 일종의 매니저가 된 채 장성한 자녀가 대학에 들어간 뒤에도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참견하기 일쑤다. 이미 성인이 된 자녀의 숙제를 대신해 주거나 학교 측에 사사건건 간섭하기도 하며, 자녀가 사회인이 되어 취직을 하게 되면 자녀의 경력 관리에까지 나서고 부서 배치마저 조정하려 드는 무리수를 두기도 한다. 심지어 정작 자녀 본인의 의견은 아예 묵살한 채 결혼 상대마저 부모가 나서서 직접 고르고, 이미 기혼인 자녀에게까지 여전히 부모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혹시 부모들 다수가 자녀를 자신과 한 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아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아바타 쯤으로 여기고 있는 게 맞지 않을까? 하지만 헬리콥터맘에 의해 길러진 자녀는 학교 등에서 치르는 각종 시험에서 강한 면모를 드러낼지는 모르겠으나 이는 단순히 시험 기계에 불과할 뿐 성인이 되어서도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부모에 의해 간섭 받음으로써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창의력이나 독립심이 부족하여 좋은 인재로 성장하기가 사실상 어렵다.

 

물론 n포세대와 취업절벽으로 대변되는 작금의 어려운 현실이 자녀의 삶에 대한 부모의 간섭을 자꾸만 부추기는 경향이 전혀 없지는 않으나, 그럴수록 오히려 자녀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완전한 독립을 이루게 하여 모든 문제를 주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힘을 키워주게 하는 것이 부모로서의 올바른 역할 아닐까? 헬리콥터가 되어 자녀의 주변을 자꾸만 맴돌수록 자녀의 삶은 되레 깊은 수렁에 빠질 수 있음을 간과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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