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국회 컴퓨터 교체에 국민들은 왜 뿔났나

새 날 2016. 5. 26.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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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국회가 개원을 앞두고 국회의원실에 들어갈 컴퓨터를 새로 장만했다는 소식이다. 의원 1명당 10대씩 총 3천 대의 컴퓨터가 지급된다고 한다. 컴퓨터와 주변장치 그리고 새로운 집기 장만까지 총 50억 원에 이르는 혈세가 투입되는 사업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언론 보도가 잇따르자 '국회가 멀쩡한 의원실 컴퓨터를 일괄 교체한다'며 좋지 않은 여론이 형성되고 있는 양상이다. 이에 대해 국회는 "6년 전 18대 국회에서 지급된 컴퓨터의 사용 기한이 지났고 해킹에 대비해 보안이 강화된 제품을 지급하는 것"이라며 해명에 나섰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사양의 제품인지 직접 살펴 봐야 정확히 알 수 있는 노릇이나, 사실 요즘 컴퓨터는 성능 향상이 과거보다 빠르지 않아 교체 주기가 상당히 더뎌진 것만큼은 분명하다. 6년이 된 제품이라고 해도 아직은 실사용에 전혀 지장이 없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물론 민의를 대변해야 할 의정활동에 있어 손과 발이 되어줄 컴퓨터가 최신 사양으로 갖춰진다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당연히 일을 하는 데 있어 훨씬 수월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선 나 역시 수긍한다. 하지만 문제는 돈이다.

 

KBS 영상 캡쳐

 

이는 우리가 직접 낸 세금, 즉 국민의 혈세가 투입되는 사안이다. 내용연수가 지나고 해킹시도가 빈번한 상황에서 그간 입법 및 상임위 등 의정활동 과정에서 컴퓨터 속도가 느리고 고장이 잦다는 불만 때문에 새로 구입한다는 국회의 해명은 왠지 궁색해 보인다. 정말 컴퓨터 때문에 의정활동에 문제가 있기라도 한 것일까? 해킹이나 고장은 사양과는 크게 관련이 없는 사안이거늘 이 때문에 굳이 바꿔야 하는 게 분명 맞는 말일까? 그렇다면 본격 출범을 앞두고 열심히 일하겠다며 새 컴퓨터 구입에 나선 국회를 향해 국민들은 왜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걸까? 단순히 혈세 때문일까?

 

단언컨대 그렇지 않다. 그간의 국회 행적을 돌아보자. 19대 국회의원들은 지난 4년간 외유 경비로 95억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지출했다. 새로운 건물도 속속 건립되고 있다. 4년 전 지어진 국회 제2의원회관은 고급 내장재로 장식되어 있고, 특수 코팅된 유리 외관이 돋보일 정도로 굉장히 잘 만들어졌다는 후문이다. 의원실 하나의 면적은 웬만한 아파트의 그것보다 넓어 148제곱미터나 되며, 이를 건립하는 데 모두 1,800억 원이라는 예산이 투입됐다. 근래 지자체의 호화청사가 논란이 되고 있지만, 이쯤되면 민의의 대표 전당마저도 온통 호화판인 셈이다.

 

뿐만 아니다. 강원도 고성에는 현재 국회 의정 연수원이 건립되고 있고, 여기에도 350억 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되었단다. 국회는 최근 900개에 가까운 본관 외벽 유리를 통째로 교체하였다고 한다. 얼마나 급한 일이었길래 외벽 유리까지 모두 손을 댄 것인지 그 속내까지야 속속들이 알 수는 없는 노릇이나 일반 국민들이 바라볼 땐 그저 눈이 휘둥그래질 뿐이다. 이러한 변화가 반드시 일의 성과로 이어지는 건 아닐진대, 과도한 건 아닐까?



그동안 정책 현안을 두고서는 사사건건 대립하고 다툼을 일삼아오던 국회의원들이다. 그나마 이들이 유일하게 합심해서 처리하는 안건 하나가 있긴 하단다. 다름아닌 세비 인상건이다. 지난해 20대 국회의원 세비가 3% 인상된 것으로 알려지자 여야가 법안 처리를 놓고선 늘 싸우면서 자신들의 세비 인상에는 담합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고, 뒤늦게 세비 인상분을 자진 반납하기로 동의하였다는 해명이 있었다. 결국 여론에 등 떠밀려 억지춘향격으로 세비를 동결시킨 셈이다. 하지만 지난 2006년부터 10년간 국회의원의 세비는 무려 37%나 올라, 동일한 기간 공무원 임금 인상률 28%와 공공기관 임금 인상률 26%를 훌쩍 뛰어넘는다.

 

그들 스스로도 이러한 사실에 대해 염치가 없음을 잘 알고 있는지 국회는 새로운 임기가 시작될 때마다 '국회의원 세비 감축'을 공약으로 내세워왔다. 심지어 30% 감축을 주장하며 국민을 위한 국회를 만들겠노라며 호기롭게 외친 의원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진짜 속내는 무얼까? 매일경제신문이 20대 국회 당선자 13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세비 감축'에 반대하는 당선자가 73명(55.3%)으로 찬성(46명)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적어도 세비 인상만큼은 양보하고 싶지 않노라는 심산이 아닐까? 

 

얼마전 시행령 입법예고가 이뤄진 '김영란법'은 금품이 오가지 않더라도 인허가 면허 처리, 채용 승진의 인사 개입 등 15가지 부정청탁 유형에 해당하면 처벌할 수 있게 되어 있으나 국회의원과 같은 선출직 공직자와 시민단체의 경우 공익적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 민원을 전달하는 것을 허용하는 예외 조항을 두고 있다. 때문에 김영란법 통과 당시에도 다른 영역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놓고 정작 국회의원 본인들의 활동에 대해서 만큼은 한층 느슨하게 적용하고 있다는 비난을 초래한 바 있다.

 

KBS 영상 캡쳐

 

국회의원들이 국민보다는 자신들의 밥그릇 챙기기에 더욱 혈안이 돼있다는 불만은 비단 어제 오늘만의 얘기가 아니다. 기득권을 내려놓고 국민 속으로 들어가겠다는 그들의 약속은 늘 공염불이 되곤 했다. 한국갤럽이 최근 '김영란법' 시행령 입법 예고를 어떻게 보는지 설문조사한 결과 우리 국민의 68%가 '국회의원에게 예외 조항을 둬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국민 다수가 국회의원의 예외 조항에 반대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국회의원을 향한 국민들의 시각이 가장 객관적으로 반영된 결과다.

 

국민 대표 기관인 국회가 평소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모든 역량을 그에 쏟아붓고, 방만한 예산 사용으로 국민들의 혈세마저 엉뚱한 곳으로 흘러들어가게 하고 있으니 어찌 분통이 터지지 않을 수 있을까? 국회의원들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면, 오히려 국민들이 직접 나서서 컴퓨터를 바꿔주고 건물도 새로 지어주며, 세비도 올려주지 않을까? 미국 의회 건물은 수십 년 동안 거의 바뀌지 않고 있는데, 우리 국회만 지속적으로 화려하면서도 웅장한 새 건물이 추가되고 있다는 한 방송사 앵커의 멘트가 유독 폐부를 깊이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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