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학원 교습시간 연장, 신중해야 하는 이유

새 날 2016. 5. 3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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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의 심야영업시간 제한을 두고 정치권과 시교육청 그리고 사교육업계와 시민단체 간에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설왕설래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관련 조례에 따르면 서울의 경우 오후 10시 이후 학원에서 강의가 이뤄져서는 절대로 안 된다. 이는 과도한 사교육의 폐해를 막고 공교육을 다잡고자 교육계와 사회 각계각층이 중지를 모아 마련한 나름의 고육지책이다. 심지어 학원의 불법 영업 행위를 차단한다는 명분으로 '학파라치'라는 전혀 교육적이지 않은 제도를 만들어 운영해오던 교육계다. 그런데 최근 서울시의회가 학원 교습시간을 고등학생에 한해 오후 11시까지 늘리자는 취지의 조례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라 밝히면서 아이들의 학습권과 그와 대척점에 놓인 건강권 보장을 둘러싼 대립이 다시금 격해지는 양상이다.

 

극소수의 물 흐리는 이들 때문에 열심히 공부하고 가르치겠노라는 교육 주체 전체에 대해 일괄적으로 시간을 정해놓고 그 선을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것은 어찌 보면 참으로 우스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는 현재 우리의 교육이 지극히 정상이 아님을 입증하는 사례다. 교육 과정의 수강 행위 자체를 불법으로 규정하지 아니한 이상, 아울러 사교육에 몸담고 있는 이들 전체가 범법자가 아닌 이상 학원의 영업 및 그의 이용을 교육 주체의 자유 의지에 의해 영위할 수 없도록 일정한 틀로 제한하는 건 일견 지나친 기본권의 침해로 받아들여질 법한 사안이다. 이와 관련하여 80년대 서슬 퍼렇던 군사정권 시절의 과외금지 조치를 떠올리게 된다면 지나친 확대 해석일까?

 

물론 다소 무리수라 판단되는 정책이 나올 수밖에 없는, 현재 우리 교육이 처한 곤혹스러운 현실을 전혀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 한가운데엔 추락하고 있는 공교육이 자리한다. 애초 공교육의 품질이 좋지 못해 그의 반대급부로 사교육 시장이 팽창하게 된 건지, 아니면 사교육이 워낙 앞서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공교육이 뒤처지게 된 건지, 이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따위의 논리에 해당되기에 뭐라 콕 집어 단정 지을 수는 없으나, 분명한 건 그동안 우리의 교육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해온 주체 치고 그와 관련하여 일말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는 뜨악한 사실일 테다.

 

오늘날과 같이 사교육 시장이 승승장구하고 있는 이면에는 공교육의 위기감 팽배라는 명제가 늘 함께한다. 때문에 막강한 위세를 떨치며 공교육의 영역까지 거침없이 침투해 들어오는 사교육의 영향력을 일정 부분 감쇄시키기 위해서라도 학원의 심야영업시간 규제는 피치 못할 카드인 것만은 틀림없다. 과도한 경쟁 일변도의 입시 체제 내에서 이에 대한 변화를 온전하게 바랄 수 없는 이상, 해당 수준의 통제조차도 없다면 이는 마치 브레이크가 파열된 채 언덕길을 내려오는 대형 트럭과 진배없는 꼴이 되고 말 테니 말이다.



언젠가 우연히 우리 동네에서 가장 성업 중인 대형 학원 부근을 밤 10시 무렵 지나간 적이 있다. 그런데 수강을 마치고 일제히 쏟아져 나온 학생들을 태워 나르는 학원 버스며 승합차 그리고 학부모들의 차량들로 인해 학원 앞 대로변은 어느새 온통 북새통으로 변모해 있었다. 가장 바깥 차선은 사실상 이들의 전유물로 보였고, 심지어 그 옆 차선까지 차지한 채 차량의 흐름을 끊기 일쑤였다. 주차장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비단 차도만 엉망인 건 아니었다. 보도 역시 일시에 나온 학생들과 그들의 자전거 등이 한데 얽히면서 일대 혼잡을 빚고 있었다.

 

무언가 기이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학원은 주변의 모든 아이들을 강력한 중력으로 일시에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는, 흡사 블랙홀을 빼닮아 있었고, 또한 아이들은 환히 켜진 전등을 바라보며 그에 홀딱 반한 채 일제히 그 속으로 빠져드는 부나비와 진배없어 보였다. 학원에서는 저녁부터 밤 늦은 시각까지 불을 환히 밝힌 환경에서 각기 다른 학교의 아이들을 한 공간에 몰아넣은 채 수많은 강의가 이뤄진다. 때문에 밤 10시는 아이들 입장에서나 학원 입장에서나 부모 입장에서나 혹은 부근을 지나는 사람들과 차량 입장에서나 상당히 상징적인 시각이 아닐 수 없다.

 

서울시 조례에 의해 정해진 밤 10시는 환히 켜진 전등이 일제히 소등되며, 강력한 중력마저 잠잠해지고, 블랙홀의 기능이 임시로, 그리고 강제로 오프되는 시각이다. 아이들은 이 지점까지 한 공간에서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이내 지친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밖으로 나와 일시에 주변으로 흩어진다. 이들을 낚아채는 건 다름아닌 마중나온 학부모들이다. 때마침 이와 관련한 언론보도가 있었다. 대한민국 학원 1번지 대치동 학원가 일대 도로는 밤 10시만 되면 주차장으로 변모하여 엄청난 민폐를 수반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과연 누가 이들 학부모에게 극성이라며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학부모의 입장이 아니더라도 작금의 아이들 상황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지 않을까? 굳이 탓하려거든 오늘날의 지옥과도 같은 경쟁 일변도의 입시 제도를 만들어놓고 나몰라라 하는, 또한 사교육 탓에 공교육이 무너졌다며 책임을 전가하거나 회피하고 있는 교육 정책 입안자들을 탓해야 하지 않을까?

 

서울시의회가 발의하기로 한 조례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학생의 발달 단계에 따라 초등학생은 밤 9시, 중학생은 밤 10시, 그리고 고등학생은 밤 11시로 다양화되어 있다. 물론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 해당 조례가 발의된다 해도 쉽게 통과될 것이라고 장담하기란 녹록지 않아 보인다. 다만, 만약 조례가 통과될 경우 지금처럼 밤 10시라는 상징적인 시각에 일제히 쏟아져나오던 아이들로 인해 학원 일대의 교통이 온통 마비 되던 기현상이 조금은 누그러지는 효과를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10시 전후로만 교통 혼잡을 빚던 현상이 앞서의 경우보다 그 정도가 조금은 덜하겠으나 어쨌든 밤 9시부터 11시까지 학생들이 분산되면서 무려 세 시간에 걸쳐 학원 일대의 교통을 온통 혼잡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최악의 결과를 빚게 만드는 건 아닐까? 결국 학원 교습 시간은 단순히 아이들만의 문제도, 그렇다고 하여 학부모들만의 문제도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로 귀결된다. 아침 등교 시간을 9시로 늦춘 결과가 많은 변화를 불러오고 있듯, 학원 교습시간 연장 역시 그 이상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파급력 높은 사안이다. 이의 판단과 결정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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