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청년 취업 빙하기 한국, 일자리 넘치는 일본

새 날 2016. 2. 14.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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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의 일본 사회엔 청년들의 일자리가 넘쳐나고 있는 형국이다. 청년 취업 빙하기를 관통하고 있는 우리에겐 너무도 부러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일본 고교 졸업예정자들의 취업률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90%를 돌파했다. 대졸자를 포함한 전체 청년 취업률 역시 97%를 상회한다고 하니, 아베노믹스를 펼치고 있는 아베 정권의 입장에서는 이를 자신의 성과로 돌린다고 해도 일견 무리수는 아닌 것처럼 읽힌다.

 

이 뿐만이 아니다. 기업이 구직자에게 다른 직장을 찾기 위한 구직 활동을 중단하고 자기 회사에 입사할 것을 강요하는, 이른바 '오와하라'가 새로운 사회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일자리가 넘쳐나다 보니 상당수의 기업은 구직자가 ‘꼭 입사하겠다’는 약속을 깨고 다른 기업으로 가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자 더 이상의 구직활동을 하지 않겠노라는 내용의 서약서나 계약서를 요구하기도 한단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는 우리 청년들에게 있어 괴롭힘이라기보다 외려 부러움으로 다가올 듯싶다. 

 

ⓒ연합뉴스

 

물론 일본은 과도한 경쟁 일변도 사회인 우리와는 여러모로 처한 환경 등 차원이 다른 까닭에 같은 조건에서의 비교는 무리라 판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일본이 걸어온 길은 한국 사회의 그것과 유사한 부분이 전혀 없지 않기에 전적으로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일본의 청년층 취업률 상승 이면에는 크게 두 가지 요소가 작용한다. 우리보다 한 발 앞서 이미 고령사회로 깊숙이 접어든 일본이다.

 

지난해 일본 고령사회백서에 따르면 일본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65세 이상 고령자의 비율은 26%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결국 저출산과 고령화를 통한 인구 구조의 변화가 생산가능인구수를 크게 줄여 그의 반대급부로 청년 일자리를 둘러싼 경쟁률을 하락시키고 있는 셈이다. 일본의 고령 인구 비율은 2060년이면 40%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기에 청년을 위한 일자리는 앞으로도 더욱 넘쳐날 것으로 예측된다. 이쯤되면 작금의 결과가 아베노믹스의 효과라며 떠벌리고 있는 아베의 자화자찬 역시 머쓱해지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또 다른 요소로는 일본만의 특이한 기업 고용 형태를 꼽을 수 있다. 일본에서는 기업의 이익과 배치되는 고용 형태가 여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업이 지나치게 이익만을 좇는 게 아니라 당장의 효율성은 다소 줄어들더라도 최대한 많은 청년을 고용, 이들의 소비 여력을 키우고, 이는 다시 기업이 돈을 벌게 하는 선순환 구조를 이루는 방식이 횡행하고 있단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닮은 구석이 여러모로 많다. 그러나 실은 다른 점이 더 많다. 그 중에서도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은 그야말로 천양지차다. 일본에서는 굳이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우리 사회에서처럼 실패한 인생이란 낙인을 찍지는 않는다. 대학을 안 나와도 적어도 먹고사니즘 문제로부터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탓이다. 이는 대학 진학률을 통해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우리의 경우 70%를 상회하지만 일본은 48%로, 절반에도 못 미친다. 사회 효율성 측면에서 보자면 우리의 그것은 절대로 일본에 비할 바 못 된다.

 

경제구조의 차이 역시 확연하다. 일본은 우리와는 달리 중소기업이 튼튼한 나라다. 덕분에 우리처럼 수출이 경제의 근간을 이루기보다 내수가 국가 경제의 기틀을 유지한다. 이것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일본은 우리처럼 빠른 발전을 이루지는 못하더라도 그에 반해 모든 사회 시스템이 안정화된 국가다. 일본에 비해 수십년 뒤쳐진 것으로 늘 인식돼 오던 우리에겐 과거 20년간 지속됐던 일본의 장기침체야말로 마침내 그들을 앞설 수 있노라는 희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일부 영역에서는 우리가 일본을 앞질렀노라는 다소 성급한 판단마저 들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은 달리 선진국이 아니었다. 

 

저출산과 고령화의 영향 때문에 올해를 정점으로 우리의 생산가능인구 역시 줄어들기 시작한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대목은 일본의 전례를 그대로 답습하는 모양새다. 자동차를 이용해 도로를 달리다 보면 지체 구간과 정체 구간을 번갈아가며 만나게 되곤 하는데, 이 또한 일정 시간이 지나면 언제 막혔냐는 듯이 시원하게 뚫리기 마련이다. 조만간 우리 사회 역시 생산가능인구 부족으로 인해 외려 외국인노동자를 수입하게 될 것이란 전망은 결코 엄살이 아닐지도 모른다. 

 

현재의 청년세대는 일자리 부족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으나 가까운 미래의 그들은 반대로 일본의 경우처럼 일자리가 넘쳐나게 될 테고, 이는 학벌사회의 풍토를 조금은 효율적인 사회로 변모시키는 계기로 작용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현재의 청년세대들이 겪고 있을 고통이다. 20대의 빈곤은 이들이 40대가 되어도 그로부터 헤어나올 수 없게 하는 족쇄로 작용하기 십상이다. 때문에 이를 반드시 해소해야만 한다.

 

ⓒ한겨레

 

기업을 운영하는 이유는 이익의 극대화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이를 추구하는 행위는 결코 흠이 될 수 없다. 이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오로지 효율과 이익만을 앞세운 채 사회 환원에는 인색한 우리 기업들에 있어 일본 기업의 고용 형태는 많은 시사점을 안긴다. 대기업의 쏠림 현상이 유독 심한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이 인건비를 줄여 얻는 이득의 대부분이 결국 재벌에게 돌아가기 일쑤일 테다. 하지만 이는 사내유보금의 형태로 차곡차곡 쟁여져왔을 뿐 낙수효과는 언감생심이었다. 그럼에도 정부와 정치권의 정책은 오로지 기업의 이익에만 초점을 맞춰 왔다.

 

일본의 사례처럼 당장 눈에 보이는 기업의 이익은 다소 줄어들게 될지라도 기업들이 현재보다 청년 고용을 의무적으로 조금 더 유지하는 방식은 어떨까? 진정한 낙수효과는 기업에 온갖 혜택을 몰아주어 그들의 이익 극대화를 통해 얻으려 하기보다 고용을 늘려 청년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결국 이러한 결과가 소비를 진작케 하여 국가 경제 기반을 튼튼하게 하는 등 기업뿐 아니라 모두가 행복해지는 선순환의 구조 개혁으로 이뤄져야 함이 옳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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