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주술은 판타지다

새 날 2016. 2. 15.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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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의 제목이 말해 주듯, 그동안 우리 스스로는 성적과 삶의 만족도가 별개라며 의도적으로 주술을 불어넣곤 해 왔다. 뿐만 아니다. 돈이 적으면 살아가는 데 있어 다소 불편함만 따를 뿐, 보유 재산 역시 삶의 만족도와는 그다지 관련이 없다며 스스로를 위로해 왔다. 하지만 현실은 인문학자가 건네는 위로의 말 한 마디나 책속에 빼곡히 적힌 깨알 같은 자기 최면의 글귀보다 훨씬 냉혹하다. 오늘 아침 포털 사이트의 뉴스 섹터엔 행복은 성적순이라며 명문대 출신일수록 삶의 만족도가 높다는 솔직담백한 내용의 기사가 일제히 톱으로 올라왔다.

 

해당 기사에는 학력과 출신 대학의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삶의 만족도가 높다는 연구 결과가 담겨 있다. 가뜩이나 북한을 둘러싼 주변국들의 정세와 우리의 움직임이 마뜩잖은 상황에서 아침부터 참 씁쓸하게 만드는 기사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까지 굳이 어렵사리 통계 수치를 통해 확인시켜 주지 않더라도 학력 수준에 따라 삶의 만족도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아마도 없을 텐데 말이다. 물론 왜 이러한 결과를 도출해내려 했는가를 결코 모르는 바는 아니다. 머릿속에서 막연하게 맴돌던 것들을 하나 둘 낚아챈 뒤,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우리 사회가 지닌 문제점을 까발려 보고자 했음이리라.

 

ⓒ연합뉴스

 

부모의 보유 자산이 많을수록 사교육에 많이 투자하게 되고, 또한 사교육의 혜택을 많이 받은 아이들일수록 좋은 학교에 진학하게 된다는 논리는 이제 진부하다. 이른바 명문대의 합격 비율을 따져 보니 서울 강남지역 출신이 싹쓸이했노라는 보도 또한 식상하기 짝이 없다. 견고하기 이를 데 없는 학벌 위주의 사회는 이제 대학에서 하위 학제로까지 내려가더니 어느덧 고등학교마저 줄을 세우며 되레 더욱 탄탄해지고 있는 양상이다. 때문에 해당 통계 결과는 우리의 아픈 상처를 스스로 후벼파는 결과밖에 더 되겠는가 싶다.

 

너도 나도 대학을 보내려고 기를 쓰는 덕분에 우리나라의 대학진학률은 세계 최고 수준인 70%를 이미 넘어선 지 한참이다. 그렇다면 서두에서 언급한 학력 수준과 행복도와의 관계는 이미 이 수치 속에 해답이 제시되어 있는 셈 아닐까 싶다. 출신 대학의 서열이 곧 사회적 지위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실제 사회 경험을 통해 터득한 부모들이 자식에게만큼은 나쁘지 않은 환경을 물려 주기 위해, 혹은 자신이 미처 이루지 못한 성공을 자식을 통해 발현시키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는 행위는 우리 사회에선 익숙한 모습이다. 부모들의 등골을 휘게 하는 과도한 사교육비 역시 다름아닌 이의 산물 중 하나다. 



이로 인한 부작용은 자못 심각한 수준이다. 교육비 투자를 비롯한 자녀 양육으로 인해 부모의 노후는 위태롭기 짝이 없다. 오늘날 헬조선이라 불리는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과 문제점들 역시 바로 이러한 세태로부터 잉태됐음을 부인하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학력 수준이 뛰어나 사회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은 이들이라고 한들, 삶의 만족도까지 그에 비례해 마냥 높은 건 아니다. 앞서 제시된 통계 수치는 그저 상대적인 우위와 관련한 지표일 뿐, 한국인의 절대적인 삶의 만족도는 수준 이하이기 때문이다.

 

주변인들과의 상대적인 비교를 통해 얻는 만족도는 흡사 도토리 키재기와 같다. 전체적인 큰 틀에서 보자면 키가 작은 도토리나 조금 큰 도토리나 바둥거리며 살아가는 건 매한가지임에도 불구하고 남들보다 아주 조금 더 크다는 사실만으로 상대적인 위안을 얻고 있는 것으로 읽히는 탓이다.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는 작년말 OECD가 발표한 ‘2015년 삶의 질(How’s Life?)’ 보고서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그것은 10점 만점에 5.8점으로 34개 회원국 가운데 27위에 머문다. OECD 평균인 6.6점에도 크게 못 미친다. 성적순에 의한 상대적인 우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는 현재 위태로운 지경에 놓여 있다.

 

ⓒ헤럴드경제

 

물론 나 역시 성적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마찬가지로 돈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우리가 몸 담고 살아가는 현실 세계에서의 성적과 돈은 불가분의 관계로써 솔직히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일쑤이다. 인적 자원을 제외한 자원이라곤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좁은 땅 덩어리 위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인구밀도를 보이며 아둥바둥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 지금과 같이 과열된 경쟁 구도는 어쩌면 도저히 피해갈 수 없는 현실의 어려움을 표출하는 가늠자일지도 모른다. 더구나 워낙 비교하기를 좋아하는 국민성인 탓에 상대적인 우위를 통해 얻는 만족감을 중요시하는 성향마저 뚜렷하다는 건 이와 같은 경향을 더욱 부추기기까지 한다.

 

기사 말미에는 대학 간 서열 문화를 완화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극히 옳은 말이다. 그러나 정작 해법은 말처럼 단순치가 않다. 작금의 청년 취업난이나 저출산 문제를 통해 보듯 어느 한 가지 해법만으로는 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요원하다. 단기적인 부양책이나 해결책의 제시를 통해서는 더욱 어렵다. 사회의 토대와 구성원들의 정서 등이 얽힌 구조적인 사안인 탓이다. 더구나 부익부빈익빈 현상과 같은 사회 경제적 불평등 구조가 심화될수록 계층 간 삶의 만족도의 차이는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를 완화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평등한 기회와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사회, 아울러 안전망이 제대로 갖춰진 사회가 절실히 요구된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주술은 그저 영화에서나 접하게 되는 판타지에 불과할 뿐, 현실 세계에선 더 이상 유효하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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