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개성공단, 대북 제재 수단이 되어선 안 된다

새 날 2016. 2. 10.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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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 연휴 마지막날인 10일, 정부가 개성공단의 철수 내지 폐쇄를 대북 제재 수단 중 하나로 검토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제로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을 단행했다. 이는 지난달 6일 4차 핵실험에 이어 근 한 달만인 7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통한 대형 도발을 연이어 일삼고 있는 북한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 읽힌다. 물론 북한의 최근 행위는 우리뿐 아니라 국제 사회를 향한 무력 도발로 간주되는 까닭에 더없이 위협적이며 치명적인 상황으로 받아들여진다. 때문에 어떠한 형태가 됐든 북한에 모종의 경고 신호를 보내야 할 상황임은 분명하다. 우리 정부가 최근 미국과 한반도 사드 배치 협의를 공식화한 건, 물론 이의 배치가 바람직한지 그렇지 않은지의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그의 일환 중 하나로 받아들여진다.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힘겨운 줄타기를 벌이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곤혹스러운 처지가 아닐 수 없다. 최근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이라는 커다란 밑그림에 따라 일본과의 의도적인 관계 복원이 이뤄진 바 있고, 때마침 행해진 북한의 도발을 명분 삼아 중국의 견제구 때문에 한없이 껄끄럽게 다가오던 한반도 사드 배치마저도 급물살을 타며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미국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와중이다. 크게 격노한 중국은 우리를 향해 날 선 비난과 함께 경제 제재를 예고하고 나섰지만, 북한 도발이라는 변수에 직격탄을 맞은 우리로서는 미국 쪽으로 균형추가 급격하게 기울어가는 와중이다. 

 

ⓒ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최대 무역국이자 경제 파트너인 중국과의 관계가 더욱 냉랭해질 수밖에 없는 건 결국 시간 문제로 받아들여진다. 아울러 중국의 제재 수위에 따라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경제가 악화일로로 치달을 개연성마저 점차 고조돼 가고 있는 양상이다. 조금 더 크고 멀리 보자면 한반도의 미래는 또 다시 우리 민족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닌, 주변국들의 힘의 논리에 의해 그 운명이 뒤바뀌게 될 처지로 내몰리는 듯싶다. 최악의 경우 자칫 민족의 공멸을 불러올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찰나를 지금 이 순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절실히 요구되어지는 게 다름아닌 정부의 외교적 능력일 텐데, 여러모로 무능하기 이를 데 없는 박근혜 정부가 과연 어떠한 구상과 계획에 의해 일련의 판단 및 결정을 해 온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외교의 근간이랄 수 있는 국익에 초점을 온전하게 맞추긴 한 걸까? 물론 이번 포스팅에선 정부의 외교력에 대하여 별도로 언급할 생각은 없다. 다만, 남북한 양쪽엔 존재 이상의 가치를 지니며 상징성마저 띠고 있는 개성공단을 대북 제재 카드로 꺼내든 정부의 납득하기 어려운 방침에 대해선 심각한 우려를 표할 생각이다.

 

개성공단은 최초의 남북합작 공단으로서 남북화해교류협력, 특히 남북경제협력에 있어 매우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한다. 아울러 남한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토지와 인력이 결합하여 남북관계에 새로운 장을 마련한 역사적인 사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해 기준 124개의 우리 기업이 개성공단에 입주해 있으며, 11월 말 현재 5만4천763명의 북한 노동자와 803명의 남한 노동자가 근무하고 있다.  



물론 그동안 부침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남북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던 지난 2013년 북한의 일방적인 노동자 철수 조치로 인해 개성공단은 무려 134일 동안이나 가동이 중단됐던 적이 있다. 이후에도 남북 간 개성공단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갈등이 불거지긴 했으나 다행히 공장 가동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근래 북한 노동자가 1천명 가까이 증가하는 등 작업시간도 대폭 늘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지난해 생산액은 전년대비 20% 이상 늘어 2004년 공단 가동 이래 처음으로 5억 달러를 돌파하며 최대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개성공단이 지닌 가치는 단순한 경제적인 효과나 남북관계의 상징성 그 이상이다. 무엇보다 현재 북위 38도 상에 그어진 물리적인 휴전선을 개성까지 가상으로 끌어 올려 놓았다는 점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극적인 효과 아닐까 싶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북한의 미친 듯한 핵실험이 이뤄지고, 미사일을 발사하거나 심지어 국지적인 도발을 일삼더라도 개성공단이라는 일종의 든든한 보험이 우리에겐 심리적인 안정제 역할을 톡톡히 해 오고 있다. 결국 개성공단은 남북관계에 있어 공존과 평화의 상징이자 최후의 보루와도 같은 존재다. 그동안 남북관계가 아무리 극한으로 치닫더라도 남북한 사이에서 탄생한 자식과도 같은 상징적이며 가치 있는 개성공단이라는 존재가 더 이상의 관계 악화를 막는 완충 역할을 충실히 해 왔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북한의 4차 핵실험이 감행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달 28일 통일부 당국자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 개성공단은 제재수단이 아니라며 선을 그은 바 있다. 그랬던 정부가 단 며칠 만에 청와대와의 조율을 거쳐 나온 언급이라는 전제를 달더니, 개성공단의 철수 내지 폐쇄를 대북 제재 수단으로 검토하고 있노라고 발표한 뒤 실제로 이를 단행했다.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개성공단의 포기는 흡사 남북관계의 개선과 공존, 그리고 평화통일이라는 한민족 전체의 열망을 외면한 채 극한 대결을 지향하겠노라는 의지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자칫 한반도를 또 다시 전쟁의 참화로 몰아 넣을 개연성을 높이는 만큼 매우 위험천만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아울러 공단에 입주해 있는 기업체와 직원들을 볼모 삼으려는 발상만으로도 정부의 태도는 무책임함의 극치이다. 박근혜 정부가 그동안 '통일은 대박'이라 외쳐왔듯 남북한의 공존과 평화를 바라는 게 분명 맞다면, 개성공단을 대북 제재 수단 카드로 꺼내들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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