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동네 빵집은 계속 보호 받아야 한다

새 날 2016. 2. 11.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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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검사외전'의 흥행 속도가 놀랍다. 11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누적 관객수 637만6493명을 기록했다. 여느 해보다 길었던 설날 연휴라는 시기적 호재와 딱히 눈에 띄는 경쟁작마저 없었다는 점이 이와 같은 결과를 빚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인기 배우들을 대거 투입시킨, 영화 자체가 갖고 있는 빼어난 매력이 흥행 요소가 되고 있음 역시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검사외전' 독주의 이면을 살펴 보면 우리 영화 업계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듯해 다른 한 편으로는 씁쓸하기 짝이 없다. '검사외전'은 전국 2400여개 스크린 가운데 무려 1778개의 스크린을 확보하고 있다. 구체적인 비율로 따지자면 전체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특정 대기업이 과도하게 점유한 스크린 독점 현상은 사실 '검사외전'만의 문제도, 아울러 어제 오늘만의 얘기도 아니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현상이 관객들의 선택권을 빼앗음은 물론, 영화의 다양성을 해치고 더 나아가 결과적으로 한국 영화 산업에 독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는 괜한 게 아니다.  

 

ⓒ동아일보

 

비록 영화를 사례로 들고 있지만, 이렇듯 시장 지배력이 월등한 대기업의 특정 산업 독식은 많은 폐해를 낳기 마련이다. 최근 제과점업의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 만료를 앞두고 대기업과 중소빵집 사이의 갈등이 다시 증폭되고 있다는 소식이 언론발로 전해졌다. 중소기업적합업종은 재벌 독식 경제가 지속되자 이명박 정부 후반인 2010년에 도입된 제도로, 중소기업과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특정 업종에 대해 3년간 대기업의 진출을 제한하는 내용이 주요 골자를 이룬다. 2011년 처음 지정된 이래 제조업과 서비스업 등 현재 74개 업종이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돼 있다.

 

그 중 제과점업은 2013년 지정되었으며, 이에 따르면 동네 빵집의 500m 이내에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제과점을 새로 열 수 없게 돼 있다. 이제 어느덧 3년간의 대기업 진출 제한이 만료되어 제과점업은 이달 중 재지정 여부를 결정해야 할 상황이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업체들은 때맞춰 벌써부터 여론몰이에 나서고 있다. 자영업자가 자신이 원하는 사업을 못 하게 하는 것은 ‘직업 선택의 자유’와 ‘행복 추구권’을 침해한 것이라는 논리와 소비자의 편익을 앞세워 제과점업의 중소기업적합업종 재지정을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일 강제 사례에서 보듯이 소상공인과 골목상권 그리고 전통시장 보호에 대한 명분은 이미 대법원 판결을 통해서도 합법적으로 공식 인정 받은 바 있다. 마찬가지로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 제도는 시장 지배적 위치에 있는 기업 및 재벌들 틈바구니에서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에 해당한다. 대기업들이 겉으로는 '직업 선택의 자유'와 '행복 추구권' 따위의 그럴 듯한 논거를 들이대고 있으나, 결과적으로는 경제적 약자인 자영업자를 전면에 내세워 자신들의 프랜차이즈를 골목 구석구석까지 심어 놓아 소비자들을 더욱 많이 끌어모으겠노라는 과도한 욕심으로만 비칠 뿐이다.  

 

 

아울러 500미터 조항 때문에 빵을 하나 사기 위해 먼 걸음을 가야 한다며 소비자의 권리 침해에 대해 운운하고 있으나 이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업체가 자신들이 원하는 곳에 마음대로 들어서지 못하는 작금의 현실에 대한 하소연으로만 와닿을 뿐, 일반 동네 빵집에는 해당되지 않는 사항인 데다 소비자는 오히려 대기업 빵집이 시장을 장악하는 바람에 보다 다양한 종류의 제품을 즐길 수가 없어 그와 반대 개념의 선택권을 침해 당하고 있는 입장이기도 하다.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 제도는 법제화를 통해 지금보다 오히려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제도 자체가 갖는 맹점 때문이다. 적합업종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기업의 동의가 필요하다. 소상공인들이 아무리 어렵다고 하소연을 해도 대기업이 완강하게 버티며 끝까지 합의해 주지 않을 경우 이들의 시장 지배를 막을 재간이나 안전장치는 전혀 없다. 때문에 해당 제도는 중소상공인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보호장치이면서도 법제화가 되어 있지 않은 바람에 그나마 대기업에 훨씬 유리한 상황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중소기업계는 진작부터 적합업종 법제화를 요구해 왔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극구 반대하고 있는 입장이다. 국제 교역에서의 통상 마찰을 표면적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법조계 일각과 중소기업계의 이야기는 그와 전혀 딴판이다. 대형마트 규제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서 보듯, 해당 규제는 외국회사라고 하여 국내회사와 달리 특별한 적용을 하는 게 아니기에 일반적으로 외국인과 내국인에 대한 차별 금지를 담고 있는 통상 마찰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얘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WTO 등 국제기구는 원칙적으로 국가의 합리적인 정책과 주권을 인정하고 있으며, 기업의 숫자나 제품의 수량 따위의 양적 제한이 아닌 탓에 시장 접근 제한이라는 논란의 여지는 전혀 없을 것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한국일보

 

수출이 우리 경제의 근간이었는데, 근래 이것이 현저히 줄어들며 한국 경제 전반에 어둠이 짙게 드리워진 형국이다. 미증유의 경기 한파가 지속되고 있다. 해외에서 더 이상 돈벌이를 할 수 없게 된 대기업들이 내수 시장으로 눈을 돌려 호시탐탐 이를 노리고 있음은 바로 이러한 연유 때문이다. 비록 특정 지역에 국한된 사안이긴 하나 최근 미용실에 대한 대기업 진출을 허용하며 가뜩이나 얼어붙은 골목상권에 전운이 감돌고 있는 양상이다.

 

시장 지배력이 월등한 재벌이 골목상권에 마음껏 손을 대게 될 경우 앞서 살펴 본 '검사외전'의 사례처럼 해당 시장 전체가 왜곡되는 현상은 불 보듯 뻔하며, 경제적 약자들은 모두 나락으로 떨어지는 신세로 전락하게 될 게 틀림없다.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나 중소기업적합업종 제도는 이러한 재벌들의 시장 지배로 인한 폐해로부터 경제적 약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그나마 유일한 장치이다. 때문에 골목상권의 대표 업종 중 하나인 제과점업에 대한 중소기업적합업종 재연장은 지극히 당연하며, 더 나아가 중소기업적합업종의 법제화를 통해 약자 보호를 위한 보다 튼튼한 안전장치 마련 역시 선행돼야 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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