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공무원 시험에 올인하는 사회, 소는 누가 키우나

새 날 2016. 2. 9. 12:46
반응형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은 지난해 70.9%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가경쟁력이 세계 1위로 알려진 스위스조차 대학진학률은 고작 29%에 불과하고, 여타의 유럽 선진국들 역시 아무리 많아 봐야 40%를 넘지 않는다. 우리보다 잘 사는 국가인 미국과 독일이 40%, 일본 또한 48% 가량이니 가히 압도적인 결과라 할 만하다. 이는 우리만의 높은 교육열을 상징하는 수치이자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국식 교육을 부러워하게 된 배경으로 작용할 법한 사례다. 

 

불과 십수년 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교육적 열망들이 한국 사회의 발전을 이끌었던 원동력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OECD 등의 순위에서 늘 좋지 않은 영역에서만 수위를 차지하던 것과 비교한다면 그나마 상당히 고무적인 결과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는 우리의 아픈 현실과 맞물리며, 대학을 어느덧 상아탑이 아닌 등골탑으로 변모시켜 온 원인으로 작용한다. 지금이 고도성장시대라면 어떡하든 대학을 졸업한 인력들이 사회 요소요소에 흡수되어 제 몫을 다할 수 있을 테지만, 알다시피 우리 사회는 고도성장시대가 진작에 막을 내린 지 오래이고 일본식 장기 침체를 우려해야 할 만큼, 아니 그 이상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중앙일보

 

저성장시대가 낳은 풍경은 삭막하기 그지없으며, 청년층의 취업절벽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무언가 굉장한 엇박자 현상으로 발현되고 있는 양상이다. 과열된 교육열을 이용, 장삿속을 앞세운 대학들이 우후죽순 늘어나는 바람에 어느덧 대학교육의 부실, 더 나아가 한국 대학 교육의 가치 하락과 질적 수준 저하마저 우려해야 할 상황에까지 이른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일찍이 “교육이 양적으로 팽창하고 관련 지출이 늘고 있는데도 실질적인 인적 자본 형성으로 효과적으로 이어지지 않는 ‘교육거품’ 현상이 심각하다”고 분석한 바 있다.

 

대학 진학이 사람들의 기대 수준을 높이는 건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고급 기술을 익힌 기술자가 더 좋은 대우를 받는 게 일반적이듯 말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한국적 상황들 때문에 이른바 누구나 선망하는 번듯하고 그럴 듯한 일자리는 한정될 수밖에 없다. 덕분에 대략 90%에 해당하는 청년들 모두가 일제히 패배자가 되고 만다. 질적으로 수준이 낮아진 반면 세계 최고 수준인 대학 등록금을 고려해 볼 때 이는 사회적으로 심각한 낭비 현상 중 하나다.

 

그런데 근래 학생 스스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언론발로 젼해져 온다. 무슨 얘기일까? 대학에 합격해 놓고도 이의 진학을 포기하거나 고등학교 때부터 아예 일찌감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 이른바 '공딩족'들이 급증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고등학교 때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의 비율이 전년과 비교해 1년만에 5배가 늘었다고 한다. 세태가 이러하다 보니 공무원 시험 준비족들이 몰리는 노량진 학원가에는 일찌감치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이를 준비하는 고등학교 3년생이나 재수생들의 모습이 흔해져, 모 학원만 하더라도 이른바 공딩족들이 전체 수강생의 27%에 이른다고 한다.  

 

 

저성장시대, 어차피 괜찮은 일자리는 한정돼 있고, 대학에 진학해 봐야 너도 나도 취업절벽이라는 뜨악한 상황과 맞닥뜨려야 할 처지, 일찌감치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게 될 경우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등록금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 부모의 등골을 휘지 않게 할 수 있고, 일찍 준비한 만큼 그에 비례해 합격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높아지는 까닭에 차라리 '공딩'의 길을 택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일견 학벌이라는 명분보다 실리를 택한 합리적인 결정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아울러 사회적 낭비로까지 치부되고 있는 과열된 대학 진학이 이러한 현상으로 다소나마 누그러지게 된다면 이 또한 바람직한 결과로 읽힌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사실 이러한 현상이 등장하게 된 배경을 살펴 보게 되면 우리 사회에 내재된 모순들이 응집되어 발현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까닭에 몹시도 씁쓸하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특히 청년들이, 왜 모두들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갖기 위해 이토록 기를 써야 하느냐 하는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좋은 직장에 들어가더라도 안정성까지 담보해 주지는 못한다. 40대만 되어도 쫓겨날까 봐 좌불안석인 게 가장 보편적인 우리 주변 직장인들의 처지이다. 더구나 정부는 노동개혁이라는 명분 하에 이른바 쉬운 해고마저 가능토록 추진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년이 보장되는 데다 퇴직후 연금까지 꼬박꼬박 받을 수 있는 공무원은 모든 이들의 선망의 대상이자 매력적인 직업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경제가 저성장시대로 접어든 이래 공무원의 인기는 진작부터 하늘을 뚫을 기세다. 오죽하면 여성 공무원을 향해 '걸어다니는 중소기업'이라고까지 칭할까 싶다.

 

ⓒ중앙일보

 

게다가 청년층의 취업절벽 상황이 고질적인 사회 문제로 고착화되자 발빠른 쳥년들이 보다 안정적인 직장을 위해 과감히 실리를 택한 결과로도 읽힌다. 고등학생들까지 벌써부터 공무원 시험에 매진하는 모습은 청년들의 현실적인 고통을 고스란히 비추는 가늠자로 받아들여진다. 이를 통해 모두가 대학 진학을 좇는 현상이 다소 완화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부분도 일부 존재할 수는 있겠으나 그렇다고 하여 우리의 과열된 교육열이 식어 나타나는 점진적이며 바람직한 해소 형태가 아닌, 사회적 모순에 의해 발현된 일종의 풍선효과처럼 이상 현상으로 받아들여지는 까닭에 교육 거품을 걷어내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더 큰 문제는 모두가 안정적인 직업만을 추구하다 보니 사회의 활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청년이라 불리는 이유는 아직은 미생이라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기 때문일 텐데, 다양한 영역에서 그들만이 지닌 끼와 꿈을 맘껏 발휘하여 아직 채워지지 않은 나머지를 채우고 사회 발전에 이바지해야 할 젊은이들이 하나 같이 안정성만을 추구한 채 모두가 공무원이 되겠노라고 한다면, 이 사회는 과연 어떻게 돌아갈 것인지 암담함 그 자체다. 청년들 스스로 다양한 꿈을 키워 나갈 수 없다며 벌써부터 이를 포기하게 만드는 사회는 살아있으되 이미 죽은 것과 진배없지 않을까? 모두가 공무원을 꿈꾸는 사회, 소는 과연 누가 키워야 할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