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결코 가볍지 않은 개성공단 중단 사태의 의미

새 날 2016. 2. 16.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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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 마지막날 득달 같이 이뤄진 개성공단 중단 사태는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북한이 4차 핵실험에 나선 상황이고, 이어 미사일마저 발사하는 등 군사적인 위협을 가해온 건 엄연한 현실이긴 하나 그렇다고 하여 우리에게 직접적인 공격을 감행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마치 전쟁이라도 벌어진 양 뜬금없이 개성공단 가동 중단 선언을 하더니 다음날 우리측 상주 인원을 모두 귀경시켰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번 결정은 박근혜 대통령의 독자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전시작전권이 주어져 있지 않거늘, 정황상 이토록 민감한 사안을 우리의 의중만으로 쉽게 결정할 수는 없었을 것 같다.

 

우리를 둘러싼 주변 정세와 무언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정부의 최근 동태만으로도 사실상 속내가 쉽게 읽히는 상황이다. 물론 이번 결정에 있어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둘러싼 동북아의 정세는 급속도로 빠른 변화가 읽히던 와중이다.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에 따른 움직임은 우리가 알고 있거나 모르고 있거나 그와는 별개로 그동안 발빠르게 진행돼 왔다. 미국의 전략에 따르면 동북아의 안보는 일본을 중심으로 한 한미일 삼각 구도다. 극우로 치닫고 있는 일본과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워오던 우리로서는 그들과의 화해가 영 마뜩잖은 상황이었으나 미국의 집요한 압박에 의해 결국 위안부 협상 타결이라는 어정쩡한 미완의 형태로 봉합되고 만다. 

 

ⓒ노컷뉴스

 

이로써 미흡하긴 하나 일단 한미일 삼각구도의 형태는 완성된 셈이다. 여기에 사드만 배치하면 미국의 전략은 그야말로 착착 맞아 떨어진다. 하지만 잠재적인 미국의 적국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가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무언가 명분을 찾아야 했던 미국, 고맙게도(?) 때맞춰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강행해 주었고, 이는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에 결정적인 힘을 실어주는 계기로 작용하게 된다. 여기에 모종의 액션이 더해져야 할 상황, 미국과 일본의 강력한 독자 대북 제재는 이러한 분위기를 띄우는 데 있어 훌륭한 양념이 되었고, 우리에게도 직접적인 압박으로 다가오던 찰나다. 마땅한 제재 조치를 꺼내들 게 없던 우리로서는 난감한 상황이었을 테지만, 한미일 삼각구도 내에서 공조를 해나가기 위해선 우리 역시 무언가 보여주어야 할 터, 결국 최후의 보루라 할 수 있는 개성공단 중단 카드를 꺼내들고 만다.

 

국론은 또 다시 분열됐다. 반대 진영은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전가의 보도인 '북풍' 카드를 꺼내들었노라며 반발이 거세다. 물론 그와 반대로 북한과의 평화로운 관계가 마뜩잖은 세력들에겐 더없이 반가운 조치로 받아들여진다. 이번 결정 역시 역사교과서 국정화나 위안부 협상 등 그동안 갈등을 야기하던 방식과 비슷한 전철을 그대로 밟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단독 결정에 따른 결과라며 배수진을 치던 정부이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들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인다. 아울러 우리의 개성공단 중단 결정은 중국과 러시아의 대북 제재를 이끌기 위함이었노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으나 실익 등 결과적으로 볼 때 우리의 자해 공갈쇼에 불과하다는 혹평을 피해가긴 어려워 보인다. 



북한의 4차 핵실험이 감행된 후 통일부는 개성공단은 대북 제재수단이 절대로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이를 뒤집고 만다. 더욱 어이 없는 건 개성공단 자금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전용되었다는 증거가 나와 이러한 조치를 취했노라는 홍용표 통일부 장관의 발언이다. 그는 불과 며칠만에 관련 자료 자체가 없다며 번복, 개성공단 중단 사태를 둘러싼 정부의 명분과 신뢰도를 크게 추락시켰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게 된 건, 바로 이러한 연유 탓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은 16일 오전 10시 국회에서 ‘국정에 관한 연설’을 통해 “개성공단 전면중단은 앞으로 우리가 국제사회와 함께 취해 나갈 제반조치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하며, 일각에서 일고 있는 '북풍' 의혹을 일축하고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에 힘을 실어 주었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과 정황만을 놓고 보더라도 우리 정부의 개성공단 중단 결정이 독자적인 의지에 의한 결과물이라 말하기는 어려울 듯싶다.

 

어쨌거나 개성공단 중단 결정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로 다가온다. 우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자적 역할을 자임하던 우리의 외교에 있어 그 중심추가 미국 쪽으로 급격하게 기울었음을 뜻한다. 이는 '한미일'과 '북중러' 구도라는 형태의 신 냉전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사라진 실리외교 덕분에 가장 뼈아프게 다가오는 대목은 앞으로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 험로가 예상된다는 점이다. 남북관계에 있어 평화의 상징이자 최후의 보루였던 개성공단을 자의가 됐든 타의가 됐든 정부 스스로 중단하면서 북한과의 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달을 일만 남게 됐다.

 

ⓒ오마이뉴스

 

중국과의 관계에 공을 들여왔던 그동안의 외교도 모두 허튼 짓이 돼버렸다.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여 중국어로 연설을 하는 등 친근감을 표시하면서까지 대중 관계에 공을 들여왔건만, 모두 부질 없는 행위가 돼버렸다. 우리의 교역 상대국 중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중국과의 외교 마찰은 향후 우리 경제에 악재로 작용할 게 틀림없다. 이는 이번 정부가 안보를 빌미로 외교의 가장 기본이 되는 국익과 실리 모두를 아예 내팽개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결과물이 아닐 수 없다.

 

사드 배치가 결정될 경우 실제로 어느 지역에 설치가 될지 지금으로선 구체적으로 알 수 없는 노릇이나 벌써부터 설치 지역으로 오르내리는 곳은 반대 여론이 뜨겁다. 이로 인한 국론과 지역 여론의 이반 및 갈등이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개성공단 중단 결정은 일견 우리의 삶과 그다지 관련이 없을 것 같지만, 이로 인한 나비효과는 앞으로 우리네 삶의 양태를 크게 바꿔놓을지도 모를 일이다. 때문에 개성공단 중단 결정에 담겨 있는 함의는 한없이 무겁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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