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스파이 브릿지> 반세기 전 사실에 투영된 현실감

새 날 2015. 11. 5. 16:22
반응형

때는 바야흐로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핵무기를 이용한 전쟁의 공포가 최고조에 이르던 1957년, 소련의 스파이인 루돌프 아벨(마크 라이런스)은 미국 내에 잠입한 채 자국에 이로운 활동을 벌이다 첩보를 입수한 미국 당국에 의해 추적 끝에 체포되고 만다. 당시의 미국 사회는 반공 이데올로기가 만연하여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치고 있던 터라 적국을 이롭게 한 스파이를 향한 적대적 감정이 그 어느 때보다 크던 시기이다. 때문에 스파이 혐의로 붙들린 아벨에게 사형 언도가 내려지더라도 그다지 놀라운 결과라고 볼 수 없을 만큼 분위기는 험악하기 짝이 없다.

 

한편, 제임스 도노반(톰 행크스)은 로펌의 공동대표이자 보험 전문 변호사로서 당시 그 분야에선 잘 나가던 인물인데, 그에게 아벨에 대한 변론의 기회가 주어지게 된다. 물론 스파이에 대한 변론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며 또한 어떠한 결과를 불러올지 뻔히 알고 있던 그였고, 때문에 가족을 포함한 주변에서의 심한 만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도노반은 아벨의 변론을 자신이 맡기로 작정한다. 그는 이 사건을 통해 미국 사법체계의 공정함을 몸소 실천할 계획이다. 

 

 

그러나 예상했던 대로 도노반을 향한 세상 사람들의 시선은 영 곱지 못하다. 대중들은 아벨 대신 미디어에 노출된 그의 변호사 도노반에게 매국 행위에 대한 적대적 감정을 마구 쏟아붓기 시작한다. 하지만 도노반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변론의 기회는 설령 적국의 스파이라 할지라도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한다는 굳은 신념을 지닌 그였기에 제아무리 척박한 환경에서조차 굴함 없이 아벨의 구명을 위해 정성을 다하는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톰 행크스의 만남만으로도 숱한 화제를 뿌리고 있는 데다, 적국 스파이의 변호를 맡아 비밀 협상에 나섰던 실제 인물 제임스 도노반 변호사의 실화를 그렸다는 사실로 더욱 흥미롭게 다가오는 영화다. 하지만 그러한 면면에 앞서 이 영화가 그 어떠한 종류의 작품보다 내게 더욱 실감나게 다가왔던 이유는 따로 있다. 



오늘날 우리의 사회 현실과 대략 60년 전 영화속 미국의 그것이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는 점 때문이다. 반공 이데올로기가 미국 사회 전체를 휩쓸던 시절, 소련 스파이에 대한 변론에 나선다는 자체만으로도 매국 행위로 간주되고 지탄 받던 당시 미국의 현실은, 어쩌면 역사 교과서에 대한 국정화를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 종북주의자 내지 좌빨로 매도 당해야 하는, 결코 웃을 수 없는 우리의 현실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정체 모를 기시감에 불편함마저 느껴야만 했다.

 

광기 가득한 사회에서 스파이에 대한 재판 과정은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도노반은 아벨의 변론을 맡기로 작정하고 담당 판사를 찾아가 아벨의 수사 방식과 관련한 문제점을 제기하며 채택된 증거에 대해 받아들일 수 없노라는 사실을 요목조목 지적하였으나 판사의 반응은 '그래서 어쩔 텐가'와 같은 생뚱맞은 태도 일변도다. 변호사가 변론에 최선을 다해 스파이의 죗값을 조금이라도 덜게 하더라도 어차피 판결 결과는 그와는 상관없이 불보듯 뻔한 노릇일 테니, 괜히 쓸 데 없는 곳에 헛심 쓰거나 말썽 피우지 말고 조용히 넘어가자던 판사의 암묵적인 압박은 과도하게 비틀어진 비정상적인 상황 하에서의 애국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고스란히 증명해 보인다.

 

 

대중들의 반응은 더욱 유별나다. 국가와 시민의 안전을 위협한 빨갱이를 변호한다는 사실에 광분한 채 도노반을 향해 매국노라며 일제히 거센 비판을 쏟아내기 일쑤다. 소련과의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과도한 반공 이데올로기는 '빨갱이'라는 용어를 심심치 않게 등장시키고,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진 이념의 잣대에 의해 매국 행위로 덧칠되는 순간 과격한 물리적인 린치 행위마저 서슴없이 벌어진다. 지금 시각으로 보자면 여지없는 광기에 해당하지만, 정작 가슴 아픈 건 작금의 우리의 현실이 그와 비슷하다는 점 때문이다.

 

스파이에 대한 변론이 과연 매국 행위인 걸까? 이에 대한 해답은 도노반 변호사가 직접 내놓는다. 그는 미국 헌법의 보호 아래 존재하는 자국 내 모든 사람들은, 국적을 떠나 심지어 난민들조차, 누구라도 인권을 보호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이러한 굳은 신념은 아벨의 표현대로 도노반을 오뚝이 처럼 제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도 우뚝 설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만들며, 그가 매국노가 아닌 진정한 애국자임을 입증한다.

 

 

영화의 완성도는 상당하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 또한 군더더기 하나 없을 만큼 수작이다. 2시간 20분에 이르는 긴 러닝타임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한 느낌이라곤 없다. 아스라한 복고풍의 스크린속 화면은 잠들어 있던 따뜻한 감성마저 깨운다. 배우들의 연기력이야 두 말 하면 잔소리일 테다. 비록 적국의 스파이에 불과하지만, 한 사람의 인권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결국 세기의 스파이 맞교환이라는 담판까지 이끌어낸 제임스 도노반 변호사의 이야기는 가슴 뭉클한 감동을 전해 온다.

 

하지만 미국의 입장에선 불과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이렇듯 이념이라는 굴레에 온 사회가 갇혀 마치 광기와도 같았던 모습 일색이었음을 스스로 반추해 가며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더듬어보거나 단순한 흥미거리로 받아들인 채 가볍게 웃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집권세력이 사회 전체를 옴짝달싹 못하도록 이념 프레임에 가둬 놓고 영화속 광기에 사로잡힌 과거의 미국인들이 그러했듯 사회 구성원들로 하여금 여전히 '빨갱이' 타령이나 하며 상대 진영을 향해 죽일 듯 악다구니를 일삼게 만들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미국의 반세기 전과 흡사한 모습이기에 영화를 보는 내내 씁쓸하면서도 불편한 감정을 못내 감출 수가 없게 한다.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 이미지 출처 : 다음영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