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그놈이다> 심장 쫄깃해지는 독특한 스릴러

새 날 2015. 10. 28. 15:48
반응형

어릴적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장우(주원)와 동생 은지(류혜영)는 서로룰 의지한 채 작은 부둣가 마을에서 살고 있다. 이 마을은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된 터라 빈 집과 폐가들이 즐비하여 온통 을씨년스런 분위기이다. 장우는 아직 고등학생에 불과한 여동생 뒷바라지에 사활을 걸고 있는 모양새다. 그맘때 여느 아이들처럼 교복 치마를 짧게 줄여 입기 좋아하고 대학 진학을 바라는 오빠의 바람과는 달리 미용 일을 배우며 공부에 관심없는 그녀에게 오빠는 간혹 핀잔도 주지만, 이 모두는 그녀를 진정으로 아끼는 마음에서 비롯된 행위들이다. 

 

그러던 어느날이다. 부모님 기일이라 제삿상을 차려놓은 채 동생을 기다리던 장우는 이날도 자신의 바람과는 달리 늦게 귀가한 그녀 때문에 화가 나고 만다. 천방지축 성격이라 평소 온 동네 쏘다니는 것을 즐겨하던 동생이 영 마뜩잖던 장우는 그녀를 혼내줄 요량으로 집안에 가둬두지만, 밖에 다녀온 사이 동생이 실종되는 사태가 벌어진다. 애가 타는 마음에 장우는 경찰서에 들러 실종 신고를 하게 되나 담당 경찰관은 아무 일 없을 거라며 3일만 기다리면 제발로 돌아오기 마련이니 그냥 있으란다. 그러나 그녀는 모두의 기대를 저버린 채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다.

 

 

동생의 장례가 치러지고, 바닷가에서 죽은 넋을 달래기 위한 씻김굿이 진행되던 찰나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다. 억울하게 떠난 넋을 위로하기 위한 의식을 위해 던져진 붉은 천이 팽팽해지다 급기야 끊어지더니 어느 남성 앞에서 멈춘 것이다. 장우는 모자를 푹 눌러쓴 이 남성이 자신의 동생을 살해한 범인이라 직감하고 그 뒤를 쫓기 시작하는데...

 

영화는 크게 세 사람의 인물 구도로 그려진다. 장우는 집과 여동생 둘만 달랑 남겨 놓은 채 세상을 떠난 부모 때문에 졸지에 가장이 되어 험난한 세상을 살아보려고 아둥바둥거리는 청년이다. 그의 동생 사랑은 부모가 안 계신 터라 더욱 유별나다. 자신을 살해한 범인에게 잡힌 뒤 오빠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바닷가 한 가운데에 버려지더라도 어떡하든 찾아낼 것이라는 동생의 울부짖음은 두 오누이의 사이가 얼마나 각별한가를 말해준다.

 

장우와 대립각을 세운 채 추격전을 벌이며 이 영화의 양대 축을 이루는 인물 민약사(유해진)는 어릴적 비극적인 가정사가 상처로 남아 이를 끝내 극복하지 못한 비운의 주인공이다. 그는 겉과 속이 전혀 다른, 의문 속의 인물이자 이번 사건의 핵심 열쇠를 쥐고 있다.



미래에 벌어질 사건에 대한 독특한 예지 능력을 보이며 장우의 범인 추격전에 힘을 실어주던 시은(이유영)은 그녀의 남다른 능력 탓에 동네에서는 귀신 씌운 여자라 불린다. 그녀가 거리를 지날 때면 사람들은 재수없다며 굵은 소금을 마구 뿌려대기 일쑤다. 그녀가 왜 이러한 능력을 지니게 됐는지는 설명되고 있지 않지만, 장우와 민약사 사이에서 벌어지는 목숨을 건 사투에 매우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영화의 장소적 배경이 되고 있는 부둣가 마을은 재개발 때문에 방치된 폐가들이 주를 이루고 있고, 사람의 모습이라고는 좀처럼 찾아 보기가 쉽지 않아, 흔히 떠올리기 쉬운 운치있는 풍광과는 거리가 먼, 음산하기 짝이 없는 그러한 곳이다. 안타깝게도 영화의 시작 시점부터 막을 내리는 그 시각까지 이러한 칙칙한 배경은 한결 같다. 게다가 신내림이나 일종의 토속신앙 따위의 소재가 영화에 더해지니 더없이 음울한 분위기마저 연출된다. 스릴러 장르로서는 제격이다.

 

 

이 영화 역시 실화를 모티브로 했단다. 1999년 부산의 청사포 해변마을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한 여대생의 죽음을 기리는 의식이 벌어지던 현장에서 영화속에서와 같은 불가사의한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이에 죽은 여대생의 아버지는 현장에 있던 청년을 범인으로 지목한 채 6개월 동안 끈질기게 추적했지만 안타깝게도 결국 범인임을 증명하지는 못했단다. 그러나 우리 민속신앙의 일종인 씻김굿과 신내림의 신묘함 그리고 죽은 혼과의 접촉이나 미래에 대한 예지 능력 따위의 불가사의한 소재가 스릴러와 결합할 수 있었던 이 영화만의 독특함은 다름아닌 해당 모티브가 배경이 된 셈이다.

 

영화속에서 무기력하게 묘사된 경찰의 모습에선 화가 절로 난다. 처음 실종 신고할 때의 대응도 그렇거니와 동생의 주검이 발견되어 살인사건으로 전환된 이후에도 제대로 된 수사를 통해 범인을 잡으려 하기보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정황이나 과거의 사건 통계를 바탕으로 한 막연한 추정에 의해 엉뚱한 인물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알리바이를 그에 짜맞추려는 무모함을 보여주기 일쑤다. 부하 직원이 객관적인 물적 증거와 합리적인 의심을 근거로 요목조목 반박하자 오히려 직위를 이용, 입을 틀어막고 자신의 방식대로 사건을 처리하려 하는 무능한 상사의 모습 속에선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동생을 잃은 장우가 결국 예지 능력을 갖춘 시은의 힘을 빌려 직접 범인 추적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건 바로 이러한 연유 탓이다.

 

 

주원은 요즘 가장 핫한 배우 중 하나다. 브라운관에서 스크린까지 종횡무진 활약하며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배우답게 동생의 억울한 죽음 때문에 분노하며 미련할 정도로 자신이 지목한 범인을 끝까지 추적하는 그의 연기는 흠잡을 데라곤 전혀 없다. 믿고 보는 배우 유해진의 천연덕스럽거나 여유가 느껴지는 명품 연기는 이번에도 빛을 발한다. 첫 배역이라는 스릴러 장르지만 낯설음 따위란 전혀 없다. 미래 예지 능력을 지닌 시은 역의 이유영은 지난해 데뷔작 '봄'으로 한국 배우로서는 최초로 밀라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며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배우이다. 때문에 지금보다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이번 영화에선 귀신들린 여성의 특이한 캐릭터를 무리없이 소화해낸다.

 

범인을 지목한 뒤 그를 끝까지 추적해가는 방식은, 마지막까지 범인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은 채 중간중간 혼선을 유도하다가 점차 진실을 향해 좁혀가는 방식인 일반적인 스릴러 장르와 차별화되는 요소다. 여기에 전통신앙과 미래 예지 능력과 같은 미스터리 요소가 더해지고, 음울한 배경을 바탕으로 한 공포감의 가미는 보는 내내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하는, 심장을 쫄깃하게 하는 묘미로 다가온다. 다소 개연성 떨어지는 설정이나 연출 등은 옥에티라고 할 수 있지만, 이는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으로 충분히 커버하고도 남는다.

 

 

감독  윤준형

 

* 이미지 출처 : 다음영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