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마션> 과학의 방향성과 인간다움 일깨운 영화

새 날 2015. 10. 9.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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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A 화성 탐사선인 아레스3호의 여섯 대원들, 그들은 화성에서의 탐사 임무 수행 중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난다. 기상 예측을 크게 벗어난 거대 폭풍이다. 작업 중이던 모든 일을 중단해야 할 처지에 놓이고 만다. 하지만 철수를 결정하고 말고 할 겨를도 없다. 짧은 찰나에 폭풍이 그만 현장을 덮쳤기 때문이다. 부서진 잔해들이 온통 그들 주변으로 날아다닐 만큼 위험천만한 상황, 불행히도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 대원이 잔해물에 맞아 실종되는 참사가 벌어진다. 당장 현장을 벗어나야 할 절체절명의 순간, 그렇지 않을 경우 대원 전원의 안전을 보장하기란 요원한 일이거늘, 대장인 맬리사 루이스(제시카 차스태인)는 결국 마크 와트니의 수색을 멈추고 지구로의 귀환을 결정한다. 

 

NASA는 마크 와트니의 죽음을 공식 선언하고 장례식까지 치른다. 하지만 지구로부터 적게는 5천만 킬로미터에서 많게는 1억 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그곳 화성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측되던 마크 와트니는 기적처럼 살아있었다. 아레나3호 탐사대원들의 화성 활동 기반인 거주 모듈은 그의 생명 연장의 일등 공신 역할을 하게 되며, 화성탐사차량인 로버는 그의 발이 되어준다. 식물학이었던 자신의 전공을 십분 활용, 화성의 토양을 이용한 감자 재배를 통해 부족한 식량을 보충하는 기지도 발휘한다. 그의 긍정 마인드는 어떠한 극한의 환경에서도 삶의 끈을 놓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그의 생존 사실이 지구에 알려지게 되고, 그의 구출 작업이 진행되는데...

 

 

지난해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영화 '인터스텔라'에 이은 또 다른 우주 소재의 과학 영화 탄생이다. 공교롭게도 인터스텔라에서 주요 배역을 맡았던 배우들이 이 영화에 재차 출연한다. 비단 예매율 1위라는 국내 박스오피스 순위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이 영화의 히트 조짐은 여러 경로를 통해 드러난다. 출연 배우들의 면면과 각 캐릭터에 대한 상세 분석, 과학적 고증, 원작에 대한 관심 증폭, OST의 인기 그리고 심지어 사소한 대사 등 매우 세세한 영역까지 화제가 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영화의 원작은 앤디 위어의 동명 소설이다. 아마존 베스트셀러 탑10, 뉴욕타임즈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 2015년 Audie 최고의 과학소설상 수상 등 겉으로 드러난 면면만으로도 화려함 일색이다. 해당 소설은 이미 전 세계의 대중들로부터 흥행을 거둔 바 있으며, 작품성 또한 인정 받았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원작 소설은 평범한 우주 이야기가 아니다.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이고 재미있으며 도전으로 가득 차있다. 화성에서 이 소설이 알려준 대로만 생활하면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고, 유익한 교훈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하고 있다.

 

 

이 영화는 화성 탐사가 주 소재인 터라 과학적 사실성이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99%의 과학적 사실이 영화의 근간을 이루는 것으로 알려졌다. NASA 소속 우주과학자와 비행사들의 철저한 검증을 거친 바 있고, 시나리오부터 프로덕션 단계 대부분의 과정에 대한 검증을 받아 완성된 작품이란다. 영화속 NASA 로고의 등장은 이를 입증하는 요소다.

 

마크 와트니가 화성인이 되어 어느덧 그곳의 환경에 익숙해질 무렵, 유일하게 들을 수 있었던 음악은 다름아닌 대장이 USB에 남겨놓은 노래들이다. 이를 틀어 놓은 채 디스코밖에 없다며 연신 투덜거리는 그의 모습이 등장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해당 노래들을 즐기며 오히려 흥겨워하고 있는 눈치임이 역력하다. 감독이 첨단 과학을 소재로 한 영화에 1970년대 유행했던 올드팝을 배경음악으로 풀어놓는 만행(?)을 저질러놓는 바람에 관객들의 눈과 귀는 어느덧 동시에 고문(?)을 당해야만 하는 처지로 내몰린다. 특히 영화의 절정 대목에서 흘러나오는 아바의 '워터루'는 노래 특유의 밝은 분위기와 경쾌함이 전해지면서 마크 와트니의 긍정 마인드와 더해져 영화의 결말을 예측케 하는 장치가 된다. '워터루'는 1972년 결성된 아바가 74년 유로비전 송 컨테스트에서 그랑프리를 거미쥔 곡이다. 그러니까 벌써 40년 하고도 조금 더 지난 곡이다.

 

 

작금의 세상은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전 세계를 휩쓸며 어느덧 효율성과 경제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떠받드는 시대가 돼버렸다. 잔인한 얘기가 될지 모르지만, 그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NASA의 애초 발표처럼 화성에서 실종된 마크 와트니는 생사 여부와 관계없이 차라리 살아있지 않는 편이 그들의 입장에선 더 도움이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화성에 탐사 인력 한 명을 산 채로 떨구고 왔다는 소식이 알려질 경우 그들을 향한 비난을 피할 수 없을 테고, 구조 여론이 비등해질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리 될 경우 당장 식량 부족의 위협에 처해 있을 그에게 식량 보급도 해야 할 판인데, 모두가 짐작하고 있듯 식량 보급선을 화성으로 띄우는 데만 해도 천문학적인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 물론 마크 와트니를 직접 구출해오기 위해선 그보다 훨씬 많은 자금 소요와 위험 부담이 따르는 일이란 건 주지의 사실이다. 과연 단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여러 사람의 희생과 엄청난 비용 그리고 시간을 감수해야 할 것인가는 근래의 조류로 보자면 상당한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아니 딜레마라기보다 이미 어떠한 결론이 내려지게 될지 보지 않고서도 사실 뻔한 노릇일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속에서는 오로지 단 한 사람의 생명을 구조하기 위해 지구에 존재하는 최고의 천재들이 머리를 한데 맞대고, 엄청난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세상 모든 사람들의 뜻을 한 곳으로 모으는 기적일 일궈낸다. 이에는 국경도 없다. 세계 3번째로 달탐사선을 달에 착륙시킬 정도로 우주 강국에 해당하지만 동시에 미국과의 패권 경쟁을 겨뤄야만 하는 G2의 묘한 입장에 놓인 중국은 복잡미묘한 상황을 뒤로 한 채 마크 와트니의 고립 사건을 정치적인 문제가 아닌 과학적인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며 그의 구조에 결정적인 역할을 제공하기도 한다.

 

 

결국 이 영화는 화성에 홀로 고립된 마크 와트니의 구조를 통해 자본이나 정치, 과학 심지어 명분 따위에 앞서 사람의 생명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이 그 무엇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매우 근원적인 명제를 말하고 있는 셈이다. 지극히 과학적인 사실을 소재로 다룬, 첨단 SF 작품이면서도 따뜻한 인간적인 면모를 담고 있는 부분은 앞으로 우리의 과학이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 그 방향성을 명확하게 제시해주는 듯싶다. 두 시간 반에 이르는 러닝타임은 다소 지루한 느낌을 준다. 내용상 분량을 충분히 압축 가능했을 듯싶은데 그렇지 못한 점은 옥에티라 할 만하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의료시설마저 폭격하는 세상, 종교적 신념이라는 미명 하에 수십명 내지 수백명의 생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꺼번에 희생시키거나 지극히 사적인 욕망 때문에 사람의 목숨을 함부로 다루는 풍조가 만연한 이 세상에서 영화 '마션'은 우리에게 인간다움이 무언지를 새삼 일깨운다. 물론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제작된 데다 그와 관련한 철저한 고증이 뒷받침된 매우 완성도 높은 작품임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이 영화만의 매력일 테다. 그렇다고 하여 대단한 재미와 오락성을 갖춘 영화냐고 묻는다면 나로선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의 힘은 어떠한 고난도 헤쳐나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준다는 강한 메시지와 함께 과학이란 것도 결국 사람을 향해야 한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하는 사실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감독  리들리 스콧

 

* 이미지 출처 :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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