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그럼에도 대통령을 북돋워 줘야 하는 이유

새 날 2015. 6. 9. 12:24
반응형

2, 3, 5, 7, 9, 14, 23..  이 숫자가 무얼 의미하는지는 다들 아실 거라 믿습니다.  메르스 첫 감염자 발생 이후 국내에서 확진 판정을 받은 중동호흡기증후군 환자 증가 추세입니다.  한동안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던 터라 우려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만, 다행히 8일을 기점으로 멈칫거리고 있는 양상입니다.  9일엔 확진환자 8명이 추가되는데 그쳤습니다.  처음으로 줄어든 것입니다.  제가 의료전문가가 아닌 이상 제대로 된 판단을 내놓긴 어렵습니다만, 한풀 꺾인 확진환자 숫자만으로도 한없이 부풀어오르던 공포감이 일정 부분 불식되는 역할을 톡톡히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방심은 여전히 금물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이번 메르스 사태를 통해 또 다시 우리 정부의 위기 대응 능력이 도마에 올랐습니다.  정부의 초동대처는 물론이거니와 이후의 대응 모두 제대로 된 게 하나 없습니다.  정부가 백번 천번을 잘못한 것입니다.  우왕좌왕 하고 있는 정부 탓에 가장 고생을 겪고 있는 건 당연히 대한민국 국민 모두입니다.  오늘 기사를 보니 의심 환자로 분류되어 격리된 이들조차 보건 당국의 제대로 된 지원이 이뤄지지 않아 갖은 고생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래저래 국민들만 힘이 드는 꼴입니다.

 

때문에 책임질 줄 모르는 정부를 향한 국민들의 비난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국정 책임자인 대통령을 향한 조롱과 비난 역시 민심의 성난 표현 중 하나일 것입니다.  온라인상에서 대통령이 네티즌들에게 조롱을 당하는 건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닙니다만, 메르스 사태를 기화로 오프라인이며 언론까지 모두가 나서 십자포화가 퍼부어지고 있는 양상입니다.  며칠 전 젊음의 거리 홍대와 신촌 일대에서 메르스 정국을 비난하는 삐라(제겐 왠지 전단지보다 이 용어가 조금 더 친근하게 다가옵니다)가 뿌려져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는 기사를 접한 바 있습니다.

 

ⓒ연합뉴스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 자신이 책임지고 이끌어 나가야 할 사안을 두고 "정부가 알아서 해결할 것입니다" 따위의 유체이탈 화법이 사용되고 있으니 국민들이 뿔이 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더구나 세월호 참사 당시처럼 컨트롤타워를 놓고도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을 내비친 건 더더욱 용납하기가 어려운 노릇입니다.  그와 같은 몰상식한 상황을 한 번 겪었으면 됐지 두 번 다시는 겪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세월호 참사가 낳은 트라우마로 읽힙니다.

 

언론의 논조에서도 과거와 다른, 뚜렷한 온도차가 느껴집니다.  예전 같았으면 객관적인 사실만을 기술하거나 최대한 정부 입장에서 서술하기 급급했으나 근자엔 제법 바른 소리를 하는 기사들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박 대통령은 미국 갑니다     

 

"박 대통령은 오는 14일 미국으로 떠날 예정입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이 일찌감치 잡혀 있어서죠. 메르스 확산을 막지 않고 국정 최고책임자가 나라를 비워도 될까요. 박근혜식 사고방식이면 가능합니다.... 중략 ... 박 대통령이 미국 입국할 때 메르스와 관련해 방역당국의 ‘체크’를 받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국격이 달린 일이니까요. 조심히 다녀오세요. 대통령님."

 

메르스 사태라는 중차대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미국 방문을 고집하고 나선 박 대통령을 살짝 비트는 내용입니다.  또 다른 기사 하나를 보겠습니다.



 '박근혜 번역기 등장'.. 불가능에 도전하는 IT코리아

 

"이제 대통령이 당최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해도 국민들이 그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길이 생긴 것이다. 세계에 유례가 거의 없는 셈이니 IT강국의 위상을 또 한 번 높인 쾌거라 할만하다... 중략 ... 그렇다고 박 대통령이 이해 불가의 말만 하는 것은 아니다. 번역기가 찾은 번역이 필요 없는 완벽한 워딩이 있다. 2004년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한 말이다. "국가가 가장 기본적 임무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지도 못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들은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분노하며 국가에 대한 근본적 회의를 갖게 됐다." 11년 후 자신에 대한 '돌직구'인가 보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번역해주는 번역기가 등장하게 된 현실을 두고 IT 강국의 쾌거라며 슬쩍 비꼬는 투의 기사입니다.  물론 이들 말고도 많은 기사들이 이해 불가한 대통령의 태도에 대해 돌직구를 날리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결코 불 수 없었던 모습들입니다.  명예훼손죄로 잡아가겠다며 국민을 겁박해 왔던 탓에 모두들 몸사리기 바빴던 덕분입니다.  그에 비하면 작금의 상황은 놀라울 정도의 반전입니다.  그만큼 민심은 이미 인내심을 잃고 임계치에 도달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삼성카드 광고영상 캡쳐

 

불현듯 모 카드 회사의 광고 카피 하나가 떠오릅니다.  영화배우 유해진이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속내를 내비치는 광고입니다.  다른 배우가 아닌 유해진이기 때문에 해당 광고가 생명력을 지닌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의 연기력은 탁월합니다.  자못 비장하기까지 한 그의 뚱한 표정을 배경으로 아무 것도 하기 싫다는 문구가 흐르는 상황, 그야말로 절묘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기가 막힌 조화입니다. 

 

우리 대통령은 지금 할 일이 산더미 같습니다.  오죽하면 이 힘든 시기에 국민들로부터 무수한 욕을 먹으면서까지 미국 방문을 강행하려 하는 것일까요?  혹자는 해외여행 나서는 길에 무슨 옷을 입을 것인가를 고민한다며 조롱 섞인 비난을 쏟아붓고 있습니다만, 대통령인들 고충이 전혀 없으리라곤 생각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한미군이 우리 영토에서 비밀리에 벌이고 있는 탄저균 등 생물학전 실험에 대해 명확한 미국의 입장을 묻고, 국민의 생명 및 안전과 관련한 위협 요소를 확실히 제거해야 할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으며, 아울러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 따른 우리의 입장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선을 그어야 할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사적인 감정이나 이익은 모두 배제한 채 오롯이 국익의 관점에서 다뤄져야 할 엄중한 사안들입니다. 

 

그런데 이렇듯 대통령을 향한 비난과 조롱이 마구 쏟아지는 상황이라면, 다소 엉뚱한 염려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국민들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냈듯 대통령의 그것 역시 바닥을 보이지 않을까 싶은 탓입니다.  가뜩이나 콘크리트 지지자들만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은 채 어렵게 국정을 꾸려가고 있는 상황에서, 온라인, 언론 그리고 오프라인 할 것 없이 사방천지로부터 대통령을 비난하고 나섰다가는 자칫 유해진의 광고처럼 '더 격렬하게 아무 것도 안 하고 싶다'며 나앉아버릴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대통령에게 힘을 더욱 북돋워주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물론 순전히 국익 차원에서의 이야기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