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엄중한 상황에도 국민 무시로 일관하는 정치권과 정부

새 날 2015. 6. 4.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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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상임위원회는 지난달 29일, 정부의 행정입법에 대한 수정 변경 요구를 가능하게 하는 내용이 담긴 국회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이로 인한 후폭풍이 거셉니다.  정치권은, 아니 엄밀히 말해 새누리당은 온통 벌집을 들쑤셔놓은 모양새입니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가세함으로써 혼란은 더욱 가중되고 있는 양상입니다.  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대통령은 개정 국회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강력하게 시사했습니다. 

 

급기야 새누리당 당내 분란으로까지 이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른바 '비박'과 '친박' 사이에서 책임론 공방이 불을 뿜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야당의 계파 간 다툼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었는데, 이번엔 집권 여당으로까지 그 분위기가 확산된 모양새입니다.  그런데 참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보통 정치권에서 계파 간 분란이 발생할 경우 언론을 통해 이 같은 의혹이 먼저 흘러나가게 되고, 이후 정치권이 이의 무마를 위해 "언론 보도는 과장된 데다 소설에 불과하다"며 진화에 나서는 게 일반적인 행태인데, 이번 경우는 정 반대의 정황으로 읽힙니다.

 

ⓒ경향신문

 

즉 청와대가 아예 작심한 듯 의도적으로 정쟁을 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 정확한 속내야 속속들이 알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만, 그래도 어떤 상황인지는 대충 짐작이 갑니다.  새누리당의 당 대표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가 이른바 '친박'이 아닌 '비박'이라는 사실에 주목하게 됩니다.  못마땅한 겁니다.  이를 대놓고 표출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정책적인 사안을 빌미로 공격에 나선 듯싶습니다.  이런한 조짐은 이미 공무원연금개혁안 국회 통과 당시 청와대가 대놓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을 당시부터 불거졌던 셈입니다.

 

권력이 한 쪽으로 치우치지 못하도록 상호 견제와 균형을 이루게 함이 3권분립의 근본 취지입니다.  때문에 입법부와 행정부의 서로를 향한 견제는 반드시 필요한 대목이기도 합니다.  충돌의 형태가 다소 과격해 보이더라도 필요악일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오히려 이러한 충돌이 보다 건설적인 대안을 만들며 발전할 수 있는 토대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 분란 사태는 앞서도 언급했듯 청와대가 작심하며 정쟁 유도의 도구로 삼은 듯한 행태로 읽히기에 우리가 바라는 견제와 균형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상황으로 읽힙니다.  일종의 권력을 향한 헤게모니 다툼과 맞닿은 듯한 느낌 때문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습니다. 



오늘자 한 신문기사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이 야당 국회의원 시절,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국회법 개정안보다 훨씬 더 강제력이 있는 국회법 개정안을 공동발의했던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같은 보도는 사실 놀랍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공약을 유야무야시키거나 말 바꾸기를 밥 먹듯이 일삼는 우리 정치권에 있어 이러한 결과는 일상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씁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작금의 상황은 매우 엄중합니다.  자칫 국가적 위기 상황을 초래할 지도 모를 만큼 중차대한 시기입니다.  이런 시기에 대통령과 여당이 권력 헤게모니를 놓고 다투는 모습은 여지없는 국민 무시 행위이자 국민 모독 행위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입버릇처럼 되뇌여오던 골든타임,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도 또 다시 놓치고 말았습니다.  이번 사태가 빚어진 지 15일이 지나서야 청와대는 민관합동 긴급 회의를 주재하고, 범정부메르스대책지원본부를 꾸렸습니다.  뒷북도 이런 뒷북은 없습니다.  이미 초기 대응이 늦어져 사망자가 잇따르고 있고, 확진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으며, 3차 감염자마저 속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대통령은 마치 싸움닭이라도 되는 양 입법부를 향해 연일 으름장만을 놓고 있습니다. 

 

ⓒ한국미디어연합뉴스

 

더욱 답답한 건 청와대가 현재 메르스 상황에 대해 국민에게 정확히 알려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병원 이름 공개의 득보다 실이 많다며 감염자가 발생한 병원 이름 밝히기를 꺼리고 있는 대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리얼미터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8명 이상이 이를 공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정부의 정보 통제로 인해 국민 불안은 더 없이 커져만 가고 있습니다.  물론 정보 통제와 국민의 알 권리 사이에서 적절한 묘수를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는 사실, 익히 알고 있는 부분이긴 합니다만, 현재의 상황이 청와대가 밝힌 바와는 달리 정보 통제로 인한 득보다 실이 오히려 커 보이는 데다 국민 다수가 원하고 있는 사안이기에 막연하게 이를 통제하는 정책은 썩 바람직스럽지 않아 보입니다.  제아무리 의료적 전문 지식이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해도 말입니다.  메르스와 함께 괴담이 창궐하게 된 계기 역시 이러한 국민의 알 권리가 제대로 충족되지 않은 탓이 크다는 사실을 절대로 간과해선 안 될 노릇입니다.

 

보건 당국은 지역과 병원이 알려지게 될 경우 주민들의 공포가 커지고 병원에 불필요한 낙인이 찍혀 환자들이 내원을 꺼리는 등의 피해가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정보 통제에 나섰노라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이 말인 즉슨 병원 영업 이익에 막대한 손실이 초래될 우려가 있기 때문일 테며, 병원 재산권을 지키기 위해 취해진 조치로 읽히는 상황입니다.  결국 국민의 알 권리보다 병원 등 자본의 이득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취해진 조치이기에, 이 대목에서도 역시 국민은 뒷전이었던 셈입니다.

 

그렇습니다.  국민들이 감염병에 감염되어 죽어나가는 상황에서도 정부와 정치권은 그저 권력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거나 병원 등 자본의 이익만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결국 국민에 대한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는 의미가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세월호 참사에서 보여주었던 그 추악한 민낯은, 축적된 경험과 학습효과를 통해서도 여전히 변할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안타깝기 짝이 없는 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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