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메르스, 시민들은 왜 독자행동에 나섰나

새 날 2015. 6. 5.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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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감염사태가 일파만파 확산되면서 시민들의 공포감이 극대화돼가고 있습니다.  방역 관련 물품이 동이 나는 상황만으로도 작금의 공포가 어느 정도일지 짐작 가능합니다.  마스크와 손 세정제가 불티나게 팔리며 어느 순간 구하기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 돼버렸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거리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만, 이젠 남녀노소 구별 없이 많은 이들이 이를 착용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어색함은 사라지고 어느덧 자연스러운 도시의 풍경이 돼가고 있습니다. 

 

메르스 확진 환자가 발생한 지역을 지도상에 표시한 '메르스 확산 지도'도 등장했습니다.  물론 정보 통제에만 급급해하고 있는 정부가 만들었을 리는 절대로 만무합니다.  한 네티즌이 페이스북을 기반으로 만든 것입니다.  현재 해당 정보는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빠르게 전파되고 있는 양상입니다. 

 

메르스 확산 지도 사이트 캡쳐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4일 밤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하여 메르스 사태에 대해 중앙정부와 관련 정보가 전혀 공유되지 않는 엄중한 상황이라며 직접 대책본부장을 맡아 진두 지휘하겠노라고 선언했습니다.  이를 달리 해석하자면 중앙 정부를 믿지 못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시민들이 정부를 믿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가만히 있으라 해서 가만히 있었더니 저희에게 돌아온 건 생떼같은 아이들의 죽음이었습니다.  메르스 확진 환자가 발생한 이후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그야말로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엉망 일색입니다.  입버릇처럼 말해오던 골든타임, 즉 초동대처 실패의 대가는 감염환자들의 잇따른 죽음과 확진환자 증가 그리고 의심환자 및 격리자 속출입니다.  대한민국 전체를 휩쓸고 있는 공포감 엄습은 덤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결국 병원과 자본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메르스 관련 정보 통제의 결과는 괴담과 유언비언만 양산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기껏 내놓은 대책이라곤 괴담 유포자를 끝까지 추적하여 엄벌에 처하겠노라는 으름장뿐입니다.  무능하며 무책임한 정부의 행태에 대해 시민들이 자구책을 마련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실제로 리얼미터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7명이 정부의 메르스 관리 대책을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또 다른 조사에서는 83%에 이르는 시민들이 감염병원과 지역 공개를 요구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워싱턴포스트 사이트 캡쳐

 

외신들도 우리 정부의 어이없는 대응을 꼬집고 나섰습니다.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 그리고 일본 교토통신 등은 우리 정부의 허술한 초동 대처뿐 아니라 감염 발생 병원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 정책까지 강도 높게 비판하며 정부의 책임론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정부는 여전히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박원순 시장의 기자회견에 대해 청와대가 직접 나서 "불안감 커지는 상황에 매우 우려스럽다"며 불쾌한 반응을 드러낸 것입니다. 

 

무언가 단단히 착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청와대는 메르스 사태가 빚어진 지 15일이 지나서야 민관합동 긴급 회의를 주재하고, 범정부메르스대책지원본부를 꾸렸습니다.  그 사이 국회법을 놓고 입법부에 압박을 가하며 새누리당내 정쟁의 빌미를 제공했던 청와대이기도 합니다.  한 마디로 박원순 시장에게 뭐라 말할 자격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아울러 시민들의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감염병원과 지역을 알리는 행위는 득보다 실이 많다며 여전히 정보 통제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늑장대응과 지자체와 공유조차 되지 않는 정보 부재 탓에 이를 알리고 직접 대응하겠노라는 발표는 지자체장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조치입니다.  이에 대해 우려스럽다는 표현은 흠집내기를 위한 비난으로밖에 보이질 않습니다.  옹졸하기 짝이 없는 행동입니다.

 

초기 대응에 실패한 정부가 마땅히 알려주어야 할 정보를 움켜쥔 채 이를 통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민들더러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말은 더 이상 통하지가 않습니다.  이는 세월호 참사 이후 수많은 재난 사고를 통해 얻은 유일한 교훈 중 하나입니다.  부처 간 빚고 있는 불협화음과 혼란은 작금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시민들은 정부에 기댈 만한 요소를 전혀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어쩔 수 있나요?  메르스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마스크를 착용하고 시민들 간 공유된 정보를 서로서로 확인하며 각자 살 길을 찾아나설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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