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남중국해 분쟁 입장 요구한 미국, 시험대 오른 외교력

새 날 2015. 6. 7.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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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미국 방문을 앞둔 박근혜 대통령 앞에 쉽지 않은 숙제가 주어졌습니다.  '메르스'라는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난 탓에 가뜩이나 국내 문제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겠습니다만, 새롭게 주어진 숙제 역시 만만치 않은 중량감을 지닌 사안이기에 신중하면서도 현명한 대응이 요구되는 상황입니다. 

 

최근 남중국해에 위치한 스프래틀리 군도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이 격해지는 와중에 대니얼 러셋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지난 3일 이에 대해 한국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며 우리 정부의 입장 표명을 공개적으로 촉구하고 나선 것입니다.  우리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코앞에 둔 시점이라 그 어느 때보다 민감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없는 사안입니다.

 

표면적으로는 한국이 미국과 마찬가지로 이번 영유권 분쟁의 당사자가 아닌 탓에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보편적인 원칙과 법치를 위해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속내는 그리 단순해 보이지가 않습니다.  즉 우리나라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지금처럼 어정쩡한 입장을 견지할 게 아니라 분명한 태도를 취하라며 압박을 가하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지는 탓입니다.  미국이 이렇듯 남중국해 영토 분쟁과 관련하여 공개적으로 우리 정부의 입장 표명을 요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경제

 

남중국해에 위치한 스프래틀리 군도는 1930년대 당시 프랑스가 점령하고 있던 작은 섬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면서 일본이 이를 점령하게 됐고 그 뒤로는 일본의 해군 기지 역할을 해 오던 곳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이 일본의 패망으로 종결되자 대만이 이 군도 중 가장 큰 섬인 이투아바 섬을 점령하게 됩니다. 

 

이후 해당 군도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하는 주변 국가들이 점차 늘기 시작합니다.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중국 등은 여러 개로 흩어져 있던 각각의 섬을 점령하였고, 부루나이는 EEZ 내에 스프래틀리 군도 주변 해역을 포함하는 등 주변 각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며 수비대를 주둔시키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해관계라곤 털끝만큼도 없을 것만 같던 미국이 남중국해를 놓고 중국과 본격적으로 갈등이 불거지게 된 건 지난 4월 초입니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가 스프래틀리 군도에서 중국이 매립을 통한 인공섬과 활주로를 건설하는 모습을 포착, 이를 공개하면서 갈등이 표면화된 것입니다.  G2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고, 패권을 다퉈야만 하는 미국 입장에서 볼 때 중국의 남중국해 인공섬 건설은 자칫 군사기지로까지 발전하는 결과물이 되는 게 아닐까 싶어 노심초사해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읽힙니다. 

 

ⓒSBS

 

아울러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내세우고 있는 미국은 중국과 분쟁 중인 필리핀, 베트남 등을 자신의 확고한 동맹국으로 삼는 일 또한 게을리 할 수 없는 입장입니다.  때문에 이들 국가와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합동군사훈련은 중국 견제의 일환 중 하나입니다.  미국은 지난달 남중국해에 해상 초계기를 파견하여 중국과 대치하는 급박한 상황을 연출한 바 있으며, 추후 군함과 군용기의 항구적인 배치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자칫 군사적 충돌의 불씨가 될지도 모르는, 미국과 중국 양국 간 한 치의 물러섬 없는 치열한 수 싸움이 전개되고 있는 양상입니다.

 

이러한 긴박한 양대 강국의 패권 다툼 속에서 미국은 우리마저 전혀 의도치 않은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어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필리핀, 베트남과의 합동군사훈련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고 있는 미국의 구상은 자타가 공인하고 있는 확고한 동맹국 일본은 물론 우리마저 이에 끌어들여 전선을 확대하겠노라는 의도로 비치고 있는 탓입니다.  사드(THAAD)의 한반도 배치를 놓고 미국과 중국이 벌이고 있는 패권 다툼의 틈바구니 속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벌이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는 결코 만만치 않은, 또 다른 부담을 떠안게 된 셈입니다.  

 

 

최근 전대미문의 탄저균 배송 사건으로 미국 국방장관이 우리 정부에 직접 사과의 뜻을 표명해 온 바 있습니다.  아울러 책임자 조처, 재발 방지 대책 마련 등을 약속하였습니다.  하지만, 언론에 보도된 육군 에지우드 화학 생물학 센터의 피터 이매뉴얼 생물과학 부문 책임자의 자료에 따르면, 작금의 미국 태도에 어느 정도의 신뢰가 실려있는가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한미군은 지난달 29일 이번 탄저균 사고와 관련하여 최초로 실시된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나 해당 자료엔 미군의 ‘주한미군 통합위협인식’ 프로그램이 2013년부터 이미 가동됐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으며, 주한미군의 생물학전 대응 실험에 탄저균보다 최대 10만배 더 위험한 독소 물질인 보툴리눔까지 사용됐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얼마나 커다란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건 정부가 주권 국가로서의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미국은 여전히 생물학전 물질의 보유 실태 및 이와 관련한 군사훈련 현황 등 민감한 내용에 대해서는 우리 정부에 정보 제공을 꺼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때문에 향후 정보 공유 요구에 미국이 얼마나 성실히 응해 올지도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 영토에서 벌어지고 있는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는 은밀한 생물학전 실험에 대해 제대로 된 해명이나 정보 공유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는 마당에, 우리의 곤란한 처지는 아랑곳없이, 오로지 자신들의 입장만 이해해달라며 압박을 가하고 있는 미국에 대해 우리 정부가 과연 어떠한 방식으로 대응할 것인지, 또 다시 시험대에 오르고 있는 우리 외교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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