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제2의 홍가혜 사례 막겠다'는 검찰, 본말전도인 까닭

새 날 2015. 4. 12.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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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찰청이 "제2의 홍가혜 사례를 막겠다"며 합의금을 목적으로 여러 사람을 고소하고 부당하게 이를 요구할 경우 공갈죄나 부당이득죄를 적용하겠노라는 내용이 담긴 '인터넷 악성 댓글 고소사건 처리방안'을 이달 13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는 세월호 참사 당시 허위 인터뷰 논란을 야기했던 홍가혜 씨가 비방 댓글을 작성한 네티즌 1500여명을 고소한 데 따른 후속 조치의 일환이다.

 

검찰은 정도가 심한 악성 댓글을 반복해 올리거나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표현 등을 담은 댓글을 작성할 경우 엄벌하되, 고소인이 고소를 남용했다고 보이면 고소 자체를 각하하거나 댓글 작성자를 기소유예하기로 했으며, 합의금을 목적으로 고소를 남발하는 경우 적극적으로 공갈 등의 혐의를 적용해 사법 처리하기로 했단다.  형법에 따르면 공갈죄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 그리고 부당이득죄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이 대목에서 의문점 하나가 생긴다.  홍가혜 씨의 1500건 고소가 과연 고소 남발인 걸까, 아니면 그렇지 않은 걸까?  그녀와 그녀의 변호사가 언급했듯 추리고 추려 고른 게 이 정도라는데, 악플의 수위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내용일 테고, 1500건이 모두 그와 비슷한 수준에 해당한다면 이 경우가 과연 고소 남발이라 할 수 있을까?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피해 당사자였다면 혹여 댓글이 수백만 건에 이른다 해도, 인격살인에 준하는 행위에 대해 그들 모두를 엄중히 처벌해달라며 법에 호소했을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검찰은 여느 때와는 달리 무척 발빠르게 이와 관련한 방안을 내놓은 셈이다.  하지만 몇가지 측면에서 다소 우려스러운 점이 엿보인다.  앞에서 슬쩍 운을 띄웠듯 우선 모욕죄 고소 남발의 기준이란 게 과연 무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홍가혜 씨의 경우 1500여건을 고소했으니, 그렇다면 1500건이란 건수가 그 기준이란 말인가? 

 

허나 1500건이란 고소 건수가 어떤 이에겐 다소 큰 수치로 다가올지언정, 이미 알려진 내용처럼 이 모두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피해자를 심하게 모욕한 댓글일 경우, 그와 관계 없이 가해자에 대한 처벌 요구는 고소인의 너무나도 당연한 권리 아니겠는가.  혹여 그 건수가 수십만 건, 아니 수억 건이 넘는다 해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가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일 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번 방안에 따르면 앞으로 관련 고소 건수를 검찰의 입맛에 맞도록 적절히 조절해야 하는, 말도 되지 않는 상황이 눈앞에서 펼쳐질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경제TV

 

아울러 악성 댓글의 피해자로서 고소를 한 당사자는 피고소인과 합의금을 받고 소를 취하하든, 그렇지 않고 합의를 거부하고 나서든, 이 또한 전적으로 고소인의 권리에 해당하는 영역일 테다.  애매한 고소 남발 기준은 이러한 고소인의 기본적인 권리마저 침해할 소지가 다분하다.  물론 고소인이 피고소인을 작정하고 물고 늘어지며 처음부터 강제적으로 합의금을 취하려 함이 목적이었다면, 이는 분명 공갈죄 내지 부당이득죄의 구성 요건에 해당할 테니, 그에 걸맞게 처벌 받아야 하는 게 마땅한 일일 테다.  그러나 법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은, 애매한 남용 잣대를 이에 들이댈 경우 검찰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상당하기에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는 홍가혜 씨에게 인격 살해를 감행했던 수많은 파렴치한들과 지금 이 시간에도 끊임없이 악플을 통해 인격 살해를 시도하고 있을, 모두가 예상하고 있는 바로 그 커뮤니티 회원 및 아류들이 가장 반겨할 만한 소식이 아닐까 싶다.  검찰이 대놓고 이들을 옹호하며 지원하고 나선 게 아니라면, 또한 홍가혜 씨를 음해할 목적이 아니라면, 굳이 이러한 방안을 내놓아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이 방안은 적극적으로 적용이 된다 해도 그렇거니와 단순히 선언적 의미로만 그친다 해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왜냐면 일부 언론과 네티즌들이 홍가혜 씨를 아예 작정한 채 몹쓸 사람으로 낙인을 찍었듯, 검찰마저 그녀의 흠집을 내기 위해 발벗고 나선 상황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홍가혜 씨가 합의금을 목적으로 고소를 남발했다는 사실을 검찰이 공공연하게 알리고 나선 꼴과 진배없다. 

 

검찰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야 할 몫은 자신들만의 잣대에 의한, '제2의 홍가혜의 사례'를 막는 일이 되어선 결코 안 된다.  그녀의 1500건 고소는 검찰이 사례로 든 고소 남발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  우리 사회에 경각심을 일깨우는 본보기가 되기 위해서라도 홍가혜 씨를 향한 악플러들에 대해선 엄중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때문에 애시당초 정책의 지향점이 잘못됐다.  검찰의 방안과는 반대로 다시는 이 땅에서 홍가혜 씨와 같은, 악플로 인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이를 철저히 막는 일에 정책의 방점이 찍혀야 함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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