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성완종 리스트' 정작 경계해야 하는 건 무언가

새 날 2015. 4. 14.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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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불법 정치자금 제공 명단인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로 인한 풍랑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돼가고 있다.  검찰도 특별수사팀을 꾸려 정식 수사에 돌입했다는 소식이다.  사안의 심각성을 진작부터 인지한 새누리당은 지난 12일 오전,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김무성 당 대표가 직접 나서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한 채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정치권 금품 제공 의혹에 대한 성역 없는 철저한 수사를 검찰에 촉구한 바 있다.

 

다급함이 읽히는 대목이다.  4.29 보선을 앞두고 여유있게 승리를 장담하던 새누리당 입장에선 성완종 리스트가 당장 꺼야 할 발등의 불이 된 셈이다.  아니 단순히 이번 선거뿐 아니라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불법 자금 문제로까지 연루되며 일파만파 확산돼가는 탓에 겉으로는 내심 태연한 척 하고 있지만, 속내는 여간 불편하고 당혹해하는 눈치가 아니다. 

 

김무성 대표의 13일 발언에선 그러한 불안감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지난 2012년 대선자금 의혹으로 확산된 것과 관련해 필요하다면 여야가 함께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선자금엔 여야가 없는 것이라며 야당도 같이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도 했다.  그렇다.  또 다시 새누리당의 전매특허인 물타기를 끄집어낸 것이다.

 

물타기 사례 -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 대목에서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건 비단 물타기뿐일까?  물론 물타기도 충분히 경계의 대상이긴 하다.  그러나 아무리 물타기에 공을 들인다 한들 살짝 희석되는 한이 있더라도 본질 자체가 사라지는 일은 절대로 없거니와 우리 국민들 역시 이러한 꼼수엔 일정 부분 면역이 돼있는 상황이라 그 효과를 기대하기란 무척 어려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관심을 돌리기 위해 흔히 사용돼오던 시선 분산용 아이템 중 하나인 연예계 뉴스를 빵빵 터뜨리는 일 따위도, 과거의 학습효과 덕분에 이젠 잘 먹혀들지 않는다.

 

우린 오히려 김무성 대표의 발언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의 발언을 통해 저들의 속내가 어느 정도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12일 기자회견장에서는 물론이거니와 13일 최고위원회의석상에서도 그는 경제가 가뜩이나 어려운 만큼 이번 사건으로 국정에 공백이 생기거나 국정 동력이 상실돼선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성완종 리스트가 경제의 발목을 잡아선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그가 수차례에 걸쳐 이를 강조하고 나선 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즉 겉으로는 성역없는 수사를 외치고 있지만, 속으로는 경제 살리기에 매진해야 하니 적당히 끝내고 가자라는 취지로 받아들여진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대목은 바로 이 부분이다.  현 집권세력은 말끝마다 경제 살리기를 입에 담은 채 서민들을 희생하는 대가로 재벌기업들을 위한 최적의 여건 조성에만 올인해왔다.  세금 정책만 해도 그렇다.  서민에겐 증세를, 부자에겐 감세로 일관해온 정부다.  형기를 반도 채우지 않은 재벌 회장의 사면을 언급할 정도로 친기업적 성향마저 보이고 있다.  경제를 위해서라면 일정 정도의 부정부패 따위는 얼마든 눈 감아줄 것만 같은 기세다.  



그렇다.  경제 성장 과정 중 발생한 부정부패에 대해선 눈 감아오던, 우리 사회의 아주 오래된 관행 탓이다.  게다가 과거 차떼기로 이뤄졌던 천문학적인 불법 자금은 대중들로 하여금 액수의 크기에 무뎌지게 만드는 효험마저 발휘하고 있잖은가.  나랏일을 치르거나 경제 발전을 이루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지간한 부패에 대해선 관용을 베풀며 눈감아주던 우리 국민들이다.  과거 부정부패에 연루된 정치인들을 선거에서 연거푸 뽑아주는 국민성이 이를 대변한다. 

 

김무성 대표가 노리고 있는 건 바로 이러한 관행과 국민성이다.  때문에 우리가 진정으로 경계해야 할 대목이 아닐까 싶다.  차떼기로 이뤄지던 부패에 비하면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1억 2억, 기껏해야(?) 7억원의 대가성 불법 자금이 오고간 사실은 작금의 경제 살리기라는 대의명분에 비춰볼 때 보잘 것 없으니 대충 묻어두고 가자라는 속내를 내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무분별한 경제 성장의 맹신이 과거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로 이어진 바 있고, 썩은 내가 진동하는 온갖 부패와 비리의 종합세트인 세월호 참사마저 불러왔다.  어느덧 세월호 참사 1주기이건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변한 게 없다.  진정한 경제 발전을 바란다면 부패가 만연한 허술하기 짝이 없는 경제적 기반 위에 사상누각을 세울 게 아니라, 모든 비리와 부정부패를 제대로 불식시키고 올바른 토대부터 마련한 뒤 차근차근 밟아올라가야 하는 게 해법 아닐까?

 

우리 사회는 얼마전 부정부패라는 악의 사슬을 끊고 투명 사회로 가자며 '김영란법'을 통과시킨 바 있다.  그만큼 깨끗한 사회를 바라는 국민들의 열망이 크다는 방증이다.  이런 상황에서 터진 성완종 리스트는 우리가 바라는 깨끗한 사회로 가느냐 아니면 그렇지 못하는냐의 중대한 갈림길이다. 

 

대가성 불법자금은, 특히 대선에 영향을 끼친 경우라면 더더욱, 액수에 따라 차등 적용되는 형벌과 관계없이 단 1원이 오가더라도 이를 절대로 용납해선 안 된다.  더 이상의 관행은 사회악이다.  성완종 리스트는 여러 정황상 2012년 대선자금과 연관될 소지가 다분하다.  자칫 현 정권의 정통성마저 흔들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라는 점에서 과연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 제대로 손을 댈 수 있을까 싶은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검찰의 수사가 됐든, 그도 아니면 특검이 됐든, 성완종 리스트에 대해선 철저한 수사가 이뤄져 여전히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 및 비리를 끊어내는 단초가 되어야 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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