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강요한다고 없던 '애국심' 생기나

새 날 2015. 4. 9.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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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에서의 주인공은 911 테러를 TV에서 시청하던 도중 들끓는 애국심에 못이겨 군 입대를 결정하고 중동으로 파병되어 전설적인 저격수가 된다.  세계 1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청춘의 증언'에선 이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앳된 청년들이 가족과 연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독일과의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너나 할 것 없이 자연스레 군에 지원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건대 부럽기도 하거니와 왠지 낯 선 느낌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들이라고 하여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건 아닐 테다.  다만, 전쟁의 참화 속에 내던져진 국가를 위해 자신들의 희생쯤은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던 시대적 상황이 그들을 모두 애국자로 만들었던 듯싶다.  이 같은 현상은 아무래도 시대적 조류가 낳은 애국주의적 광풍 탓이 크겠지만, 만약 우리가 비슷한 여건에 처하게 될 경우, 젊은이들은 과연 어떠한 행동을 취하게 될지 무척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젊은이들의 국가에 대한 생각의 일단을 읽을 수 있는 기사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다름아닌 명문대 출신이자 20대에 불과한 사회 초년생들이 대거 해외 이민을 꿈꾸고 있다는 내용이다.  무언가 수틀릴 때마다 입버릇처럼 되뇌어오던 "에라, 이민이나 갈란다"와 같은 반 장난식이 아닌, 해외 이민을 매우 구체적이면서도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있었다.  이민을 위해선 목돈이 필요한 법, 이를 위해 계를 조성하는가 하면, 스터디를 통해 언어 등 필요한 지식을 공유하거나 해당 국가에서 원하는 자격을 갖추기 위해 새로이 기술을 배우는 사람들도 늘고 있단다.

 


그래도 나름 명문대 출신들이라면 국내에서는 흥행 보증수표라 할 만하고, 덕분에 약간의 노력으로도 남부럽지 않은 여건에서 잘 살 수 있을 법한데, 어쩌다 이들은 해외 이민을 꿈꾸게 된 걸까?  한 마디로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일 테다.  국가가 주는 실망감 탓이다.  갈수록 팍팍해져가는 생존 조건은 그 토양이 젊은 세대에게 더욱 불리해져가고 있는 양상이다.  터무니없이 높은 교육비와 양육비는 진작부터 젊은이들의 어깨를 늘어뜨리게 만드는 원흉이었고, 치솟는 전세가와 주택 가격에선 그저 한숨만 나오는 실정이다.  언제 잘릴지 알 수 없는 불안한 일자리와 무한 경쟁으로 내몰린 치열한 삶의 터전, 그렇다고 하여 노후가 보장될 만큼의 복지 혜택은 언감생심일 뿐이다.   

 

그렇다면 정치권이라도 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어야 할 텐데, 과연 그렇던가?  정치는 진작부터 실종된 채 자신들 밥 그릇 챙기기에만 급급해하고 있다.  무엇보다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기성세대들의 모습으로부터는 환멸마저 느껴진다.  1년이 다 된 세월호 참사는 여전히 진상 규명과는 거리가 먼 채, 이 비극적 사건을 그저 돈으로 회유하려는 듯 희생자 및 희생자 가족들에게 모멸감을 심기 바쁘다.  세월호 인양 추진을 적극 검토하겠다던 대통령의 언급에 또 다시 비용부터 끄집어내며 여론몰이하는 듯한 정부의 모습 속에선 아이들이 왜 차가운 바닷속에서 죽어가야만 했는지를 밝히려는 의지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재난사고는 또 왜 이리도 많은지, 그렇다고 하여 제대로 된 선제적인 대응은 매번 내놓지도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국가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이란 마치 지뢰밭에서 뛰어노는 행위를 방치하는 심정과 진배없을 듯싶다.  

 

ⓒ미디어오늘

 

앞서 언급한 영화에서처럼 우리나라에서 전쟁이라도 벌어질 경우 젊은이들은 과연 자진해서 총을 들게 될까?  물론 이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왔다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이 각종 행사에서 국민의례를 의무화하고 애국가와 무궁화를 법률상 우리나라의 국가와 국화로 명문화하는, 이른바 애국 3법 법안을 발의했다.  이는 지난해 말 박근혜 대통령이 영화 '국제시장' 관람 후 영화 속 국기하강식 장면을 언급하며 애국심을 강조한 뒤, 정부가 추진한 '나라사랑 태극기 달기 운동'에 이어 국기 게양식 및 하강식 부활 추진과 군인들은 물론 경찰, 소방공무원 등의 제복에 태극기 부착 방안을 추진하는 등 잇따른 애국심 몰이의 화룡점정에 해당한다. 

 

그야말로 어이없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국가가 국민으로 하여금 억지 애국심을 불어넣으려는 모양새가 아닌가.  무언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 같다.  애국심이란 강제로 고취시킨다고 하여 만들어지는, 그러한 성질의 것이 아닐 텐데 말이다.  국가와 정치권이 스스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여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넣어주는 등 이들의 마음을 훔쳐간다면 굳이 억지 애국 마케팅 따위를 펼치지 않더라도 알아서들 국민의 의무 이상의 충성심을 발휘할 테다.  때문에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성향의 것을 법률을 통해 강제화하려는 작금의 행태는 외려 국민들의 마음을 국가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만드는 단초로 작용할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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