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청춘의 증언> 시대에 저당잡힌 청춘에게 위로를

새 날 2015. 4. 10.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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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실존 인물 베라 브리튼이 남긴 회고록 '청춘의 증언'을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여기엔 꽃다운 청춘을 세계 1차 대전의 참화 속에서 보낸 이른바 잃어버린 세대의 아픈 기억이 담겨있다.  100여년전만 해도 뾰족한 통신 수단이 없었던 탓에 연락은 주로 편지를 통해서나 보다 급한 소식 등은 전보로 이뤄졌다.  때문에 당시 우편배달부는 일상 속 굉장히 반가운 손님 중 하나다.  물론 전쟁 상황에서의 우편배달부는 그와 반대로 이 영화 속에서처럼 공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불길한 예감은 왜 그리도 잘 맞아떨어지는 건지..

 

 

베라(알리시아 비칸데르)는 남동생인 에드워드(태런 애거튼)와 그의 절친 롤랜드(킷 해링턴) 그리고 빅터(콜린 모건)와 함께 고향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풍광이 매우 수려한 아름다운 곳이다.  빅터는 베라를 짝사랑하고 있었지만, 정작 베라에게 관심이 있었던 사람은 롤랜드다.  두 사람은 관심분야인 시를 매개로 서로 간의 사랑을 싹틔우고 있었다. 

 

아버지 몰래 옥스포드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해온 베라는 입학 시험을 치르러 그곳으로 향했지만, 미처 준비하지 못한 언어로 답을 요구하는 바람에 시험을 망치고 만다.  그러나 의외로 합격통지서를 받아들 수 있었던 베라다.  옥스포드에서의 캠퍼스 생활과 롤랜드와의 교제 생각에 한껏 들뜬 베라, 하지만 기쁨도 잠시 세계 1차 대전이 발발하게 되자 동생 에드워드를 비롯하여 롤랜드 그리고 빅터까지 줄줄이 자진 입대한 뒤 그들은 곧바로 전장에 투입된다.  베라는 차마 학교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그들과 가까이하기 위해 그녀는 스스로 간호사가 되는데...

 

 

베라의 고향 풍광은 지극히 아름다웠다.  숲길과 길가의 나무들, 그리고 연못 하며 어느 것 하나 소중해 보이지 않는 게 없다.  물론 이러한 연출은 전쟁의 참혹함 그리고 시대에 저당잡힌 당시 청춘들의 안타까운 삶을 이와 극적으로 대비시키기 위한 의도적인 장치로 엿보이는 대목이다.  1900년대 건물과 의상을 살려낸 클래식한 분위기의 영상미는 보는 내내 눈을 호강시켜주는 느낌이다.  똑똑하면서도 이타적인 베라 역을 매우 잘 소화한 배우 알리시아 비칸데르의 연기는 자못 인상적이다.  허스키한 목소리만큼은 제니퍼 로렌스를 살짝 닮았다.

 

베라는 옥스포드 대학 입학시험 당시 문제 속에서 요구하던 언어를 몰라 자신이 잘 알던 독일어로 답을 쓴 뒤 당돌하게도 시험 감독관을 찾는다.  시험 감독관은 그녀의 어이없는 돌출 행동에 당황스러워하면서도 불합격할 것이란 말만은 빼놓지를 않는다.  그러나 결과는 합격이었다.  그녀의 뛰어난 창의력을 높이 산 덕분이다.  비록 영화 속이지만 어쨌든 당시로부터 100여년이 지난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을 돌아볼 때, 영국의 앞선 교육 환경이 마냥 부럽게 다가오는 대목이다.  

 

 

전쟁의 참혹함이란 비단 전쟁터에서 죽어나가는 이들의 직접적인 고통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그러한 성질의 것은 아니다.  젊은 청춘들이 죄다 전쟁터로 나간 뒤 후방에 남은 그 가족들과 연인 그리고 친구들의 일상 생활을 통해서도 우린 비슷한 고통을 간접 체험할 수 있다.  뿐만 아니다.  휴가 나온 롤랜드의 다소 과격한 이상 행동을 통해서도 전쟁의 끔찍함 정도는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전쟁이란 이렇듯 직접 전투에 참가한 사람뿐 아니라 후방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수많은 가족과 친구 연인들을 모두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아주 몹쓸 행위이다.  전쟁에 나간 남동생을 위해 뜨개질을 하던 중 우편배달부로부터 그의 전사 소식을 받아들며 울음을 터뜨려야 했던 한 여인의 모습 속에선 전쟁의 잔인한 속성이 그대로 묻어나온다.  우편배달부가 각 가정을 방문할 때마다 초조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다 이윽고 터져나오는 울음소리는 외려 전쟁터에서 포탄에 의해 스러져가는 이들보다 우리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만든다. 



남동생과 연인 그리고 친구 모두를 전쟁터로 떠나보낸 베라는 도무지 일상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옥스포드 대학에서의 꿈 같던 캠퍼스 생활을 과감히 포기한 채 그들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하기 위해 자진하여 간호사가 되는 길을 택한 그녀, 때문에 아무도 그녀의 진로를 막을 수가 없었다.  이후 베라의 청춘은 시대 상황에 온전히 저당 잡히는 꼴이 되고 만다.  비단 베라의 청춘만이 아닌, 세계 1차 대전이라는 엄혹한 현실 앞에서는 그 시대를 살아가던 모든 사람들이 비슷한 고통을 감내했을 법하지만, 무엇보다 인생의 황금기랄 수 있는 청춘을 고스란히 관통해온 이들에겐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올 테다. 

 

 

롤랜드의 죽음은 그녀의 삶을 통째로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된다.  그녀가 전쟁이 끝난 뒤 회고록을 내고, 또 평화주의자로 살아가게 된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후 그녀의 청춘, 아니 삶은 이미 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다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아울러 전쟁에 반대하며 평화를 주창하는 일에 모두 바치게 된다.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꽃다운 청춘을 잃어버린 세대는 자신과 연인, 동생 그리고 친구만으로 족하다는 사실을 알리고, 전쟁이 얼마나 쓸 데 없는 행위인가를 모두에게 설득시키고자 한다.  때문에 현재의 삶이 녹록지 않고 고통스럽게 다가오는 우리 청춘들에게도,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의 삶을 통째로 반납하며 겪었을 베라의 고통을 헤아리는 사이 어느덧 그녀의 증언이 따뜻한 위로의 메시지가 되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감독  제임스 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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