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인서전트> 현실과 시뮬레이션 경계만큼 모호하다

새 날 2015. 3. 2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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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 유독 눈길이 갔던 이유 중 하나는, 물론 흥미롭게 관람했던 전작 '다이버전트'의 후속작이라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위플래쉬'에서 광기 어린 드러머 역할을 통해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던 배우 '마일즈 텔러'가 꽤나 비중있는 배역으로 등장한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만큼 '위플래쉬'에서의 그의 연기는 강렬했다.

 

먼 미래의 이야기다.  폐허가 된 삶의 터전, 극한의 생존 조건으로 내몰린 인류의 살아가는 방식은 지금과는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사회 체계를 ‘지식’ 에러다이트, ‘용기’ 돈트리스, ‘평화’ 애머티, ‘정직’ 캔더, ‘이타심’ 애브니게이션 등 총 다섯 종류의 분파로 나눠놓은 채 성년이 되는 해에 그 중 강제로 하나를 택하게 하고, 이후로는 그 분파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다.  물론 분파에 속하기를 원치 않는 부류도 분명 존재한다.  그들은 대개 도심의 부랑자 신세로 전락한 채 숨어지내기 일쑤다. 

 

분파는 인간이 타고난 성향 기준에 따라 자동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사람의 성향이란 게 어느 한쪽으로 완벽하게 기운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다행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5개의 분파 중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비교적 강했지만, 일부 사람들의 경우 앞서 언급한 경우처럼 어느 분파에도 속하는 것을 꺼려하거나 그와는 반대로 모든 분파의 성향을 골고루 타고난 이들도 엄연히 존재한다.  즉 어떠한 분파에도 특정지을 수 없는 성향의 사람들이다.  주인공 트리스(쉐일린 우들리)가 바로 그에 속한다.  영화 속에선 이들을 '다이버전트'라 부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파 체계에 순응한 채 그에 잘 따르는 편이지만, 인간의 본성을 벗어난, 인위적으로 분파에 속하게 만드는 행위가 일부에겐 의문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실은 이렇듯 분파 체계를 만들어놓은 이유는, 인류를 보다 통제하기 용이한 사회로 만들기 위한 지배 세력의 숨은 음모일 테다.  때문에 권력 집단에게 있어 그들의 지배 방식을 거부하는, 어느 분파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 다이버전트는 위협적인 존재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트리스는 자신이 속한 분파 '돈트리스'에서 만난 포(테오 제임스)와 함께 자신들을 없애려 혈안이 된 최고 권력자 제닌(케이트 윈슬렛)의 음모에 맞서 의로운 싸움을 전개해 나간다.  다이버전트인 트리스와 그 무리는 무분파 세력과 세를 규합하여 저항집단인 '인서전트'를 만들고, 본격적인 반란 전쟁에 뛰어드는데...  



이번 작품에서 가장 인상 깊게 다가오는 건 아마도 자신들 세계에 대한 비밀 메시지를 담고 있는 상자의 비밀을 풀기 위해 무려 5개 분파 모두가 담긴 살벌한 시뮬레이션 상황에 내던져진 트리스의 고군분투 아닐까 싶다.  비록 시뮬레이션이라고 하지만 실제 상황과의 경계가 모호하여 엄청난 에너지를 소진해야 할 만큼 그 방식은 험난하기 그지없다.  전작에 비해 SF적인 요소에 조금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대목이긴 하지만 사실상 그게 전부다. 

 

다만, 새로이 부상하고 있는 청춘 스타들을 만나고 싶은 요량으로 이번 작품을 고를 경우 제법 괜찮은 선택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장안의 화제인 할리우드 청춘 스타들이 총 동원됐다.  '안녕 헤이즐'에서의 쉐일린 우들리는 이번 작품을 통해 강인한 여전사로서의 새로운 탄생을 알리고 있다.  마찬가지로 '안녕 헤이즐'에서 쉐일린 우들리와 호흡을 맞췄던 훈남 앤설 애거트는 물론, 포의 역할을 맡은 영국의 꽃미남 배우 테오 제임스, 그리고 '위플래쉬'의 마일즈 텔러 등 등장인물의 면면은 화려함 일색이다.  물론 케이트 윈슬렛과 나오미 왓츠와 같은 베테랑 여배우들의 열연도 볼 만하다.  '타이타닉'의 청순했던 그녀가 어느덧 이렇게까지 나이가 든 건지 세월의 흐름은 그야말로 무상하기 짝이 없다.  마일즈 텔러는 '위플래쉬'에서와는 달리 다소 얼뜨기 같은 역할로 등장한다.  언뜻 보면 실베스터 스탤론을 닮은 것도 같은 그가 이번 작품에선 반전의 키를 담당하고 있다.

 

이 영화 실은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과 5개 분파로 나뉜 특이한 사회 체계라는 기발한 설정, 그리고 우리 시대의 성장에 대한 진지한 고민 및 철학이 담겨 있을 법한 소설 원작을 기반으로 한 영화적 토대 덕분에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오던 터다.  그러나 실제로 뚜껑을 열어보니 그러한 영역은 끝내 외면한 채 처음부터 끝까지 볼거리 위주로만 만들어진 느낌이다.  그렇다고 하여 특별히 눈을 즐겁게 할 만큼 화려한 액션으로 포장되어있는 것도 아니다.  분파 간 빚어질 수 있는 세세한 갈등 구조나 지배계층과의 관계를 통해 보다 더 철학적인 내용을 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 작품을 연출한 감독이 전작과 달라 그런 걸까?  '다이버전트'를 통해 제법 그럴 듯한 틀이 갖춰진 듯싶었는데, 이번 편에서는 영화 속 현실과 시뮬레이션을 넘나드는 모호한 경계처럼 완벽한 볼거리 위주의 작품도 아닌, 그렇다고 하여 다소 이데올로기적이거나 철학적인 작품도 아닌, 이도 저도 아닌 그런 류의 영화가 돼버린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때문에 그나마 캔더에서의 잭 강(다이엘 대 김)의 이지적인 역할은 군계일학이 아니었는가 싶을 정도다.  특히 제닌과 에블린의 마지막 신은 잠을 확 달아나게 만들 정도로 어이가 없다.  물론 다음 편을 예고하는 장면이었을 테지만 말이다.  그러나 다음 작품이 예고된 상황이 아니라면 아마도 영화의 격을 몇 단계는 확 주저앉힐 만큼 뼈아픈 장면이 아니었을까 싶다.  3편인 '얼리전트'가 별로 기대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감독  로베르트 슈벤트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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