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송포유> 나의 천사여, 내 노래 듣고 있나요?

새 날 2013. 4. 3.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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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란 노래가 있습니다. 김목경의 노래를 김광석이 리메이크하여 더욱 깊은 울림을 전해 주었던 노래인데요. 영화 보는 내내 이 노래가 떠오르는 겁니다. 한편으로는 작년에 감상한 영화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가 오버랩되어지기도 하는군요. 주된 이야기의 구조는 노부부의 애틋한 사랑이지만, 그 안엔 가족 간의 갈등 치유와 더불어 따뜻한 가족애가 함께 녹아있어 잔잔한 감동과 여운을 선사해 줍니다.

이젠 나이가 들어 새하얗게 변색되어지고, 앞머리와 속알머리 숭숭 빠진 꼬장꼬장 고집불통 아서(테렌스 스탬프 분), 암에 걸려 시한부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매리언(바네사 레드그레이브 분), 이 두 노부부의 애정은 남달랐습니다. 특히 아서의 아내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더욱 깊어, 잠자리에 그녀가 없기라도 하는 날엔 편히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매리언은 비록 몸이 불편하여 휠체어에 의지한 채 생활하지만,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부르는 일을 멈출 수 없어 동네 주민센터 어르신 노래교실에 꼬박꼬박 나가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 어울리며 노래를 즐기곤 합니다. 아서는 자기 몸도 못 가누는 아내가 노래교실에 나가는 일에 대해 늘 마뜩해하지 않아 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주민센터에서 노래를 부르던 매리언이 갑자기 쓰러지고, 병원에서 받은 진단결과는 말 그대로 사형 선고, 부부는 의미없는 암 치료를 거부하고 자연스레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그래도 매리언의 노래부르는 일은 멈출 수 없습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아서와 함께 잠을 청하던 매리언, 결국 잠자던 중 자연으로....

 

 

동네 어르신들의 열정과 끼는 아무도 못 말립니다. 동네 주민센터 노래교실에서 취미로 시작된 노래가 어느덧 각종 합창대회에 진출하여 좋은 평가를 얻게 되고, 이들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르며 보다 큰 대회를 위해 차근차근 준비해 나갑니다.

 

 

사랑하는 매리언이 몸을 가누지 못해 악보 들추는 일도 버거운 상황, 노래부르는 아내가 못마땅하지만 그녀를 사랑하기에 기꺼이 곁에서 돕는 아서, 하지만 이런 도움에도 불구하고 얼마후 그녀는 허망하게 세상을 등집니다. 그녀에 대한 아서의 진심어린 사랑, 평소에도 곧잘 표현해 왔지만, 현실로 다가온 그녀의 죽음 앞에 그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목놓아 웁니다. 평소 말이 없었던지라 처절한 그의 울부짖음을 통해 표현되는 아내에 대한 사랑의 깊이가 더욱 크게 느껴집니다.

 

 

노래교실 선생님 엘리자베스(젬마 아터튼 분), 아서는 그녀에게서 아내 매리언을 보기라도 한 걸까요. 아서가 그토록 싫어라 하던 노래를 아내 대신 할 수 있게 된 건 순전히 그녀 때문입니다. 그와 그녀가 개인의 아픈 감정을 서로 보듬어주며 호감이 싹트기 시작, 아서의 굳게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어 젖히게 한 것도 그녀입니다. 엘리자베스와 아내 매리언 간 닿아있던 연줄이, 매리언은 비록 하늘에 있지만, 자연스레 그에게로 연결되고 있었습니다.

 

 

일개 동내 어르신 노래교실이 국제 합창대회 무대 진출이라는 쾌거를, 게다가 아서는 저 큰 무대에서 이미 천사가 되어 하늘 어디엔가 있을 아내 매리언에게 바치는 노래를, 독창으로 연기하게 되는 영광을 누립니다.

 

 

"사랑하는 나의 천사 매리언, 내 노래 듣고 있나요?" 매리언, 혹시 남편 아서의 목소리 듣고 계신가요.

 

 

"난 다른 것 다 필요 없어, 오로지 당신만 있으면 돼요... 사랑하는 나의 천사 매리언, 나의 노래 들리나요?" 매리언, 그의 눈물로 호소하는 애절한 노래소리 들리나요?

 

 

아서의 아들 제임스(크리스토퍼 에클리스턴), 아버지와의 관계는 최악입니다. 아마도 아버지의 완고한 성격 탓이었겠지요. 제임스는 이런 아버지가 늘 불만이었구요. 아서는 아서대로 이런 아들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매리언이 생전에 제일 걱정하던 바도 바로 아들과의 관계였지만, 매리언이 죽은 후 결국 아서는 아들과 단절을 선언합니다. 이건 매리언이 꿈꾸던 것이 아닐 텐데요. 아마도 하늘에서 이를 보고 화가 많이 나 있을 듯하네요.

하지만 아버지의 마음은 모두 한결 같은 것 그런 거 아닐까요? 겉으로 표현을 못 해 그렇지 속마음은 그게 아닐진대요. 아내의 죽음 이후 외로워진 아서, 몇 차례 아들에게 접근해 보지만, 아들의 마음은 휑합니다. 아서와 아들과의 관계가 다시 복원된 건 순전히 매리언으로부터 시작된 노래부르기가 노래교실 선생 엘리자베스를 매개로 하여 아서에게까지 연결된 덕분입니다. 결국 매리언 덕분인 거네요? 사실 아내 매리언은 알고 있었지만, 아서가 상당한 수준급의 노래 실력을 겸비하고 있었습니다. 그 똥고집과 완고함 때문에 감추어 왔을 뿐이지요.

매우 잔잔하지만 깊은 여운이 남는 조용한 영화입니다. 감독은 노부부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끈끈한 가족애를 말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영화 말미에 이런 자막이 흐릅니다. "To Family : 이땅의 모든 가족에게 바친다"

그렇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 보며, 잊고 있었던 가족애를 점검해 보는 건 어떨까요. 아울러 이땅의 남편들이여, 아서와 매리언 같이 멋진 사랑 하실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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