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우리는? <그래서>

새 날 2013. 2. 13.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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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서울신문 >


저자 : 백가흠 펴낸 곳 : 문학동네

활자 속에서는 살아 있지만, 현실 속에서는 분명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눈은 퀭하고 얼굴은 깡마른 백발의 한 노인을 통해 삶과 죽음이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케 하고, 분명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를 그의 석연치 않았던 삶 속에서 반추해낼 수 있다.

산 중턱 외딴집, 풀과 나무들은 모두 죽어 황량한 폐허와 다름없는 정원, 생명이라곤 오직 지붕까지 덮을 기세인 담쟁이 덩굴과 도심에서 쫓겨나 가끔 나타나곤 하는 이름모를 새들, 그리고 이곳에 혼자 살고 있는 백발 성성 노인... 까칠하며 꼬장꼬장한 성격만큼이나 외모 또한 건조하기 그지없다. 움푹 패인 양 볼과 푹 꺼진 눈덩이 그리고 도드라진 턱선은 이 노인의 성격이 매우 완고하리란 것을 짐작케 하고도 남는다.

과거 시나 소설 등에 대해 날카로운 비평을 써 문단에서 꽤나 이름 날렸던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부조리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에 갈수록 괴팍 예민해져가고 자신의 분노를 온전히 글에 표출하더니... 어느날 몹시 부족한 자신의 인격에 비해 그의 글이 더 형편없다는 것을 깨닫고 더 이상의 글쓰는 일을 중단, 홀로 집에 틀어박혀 책 읽는 일에만 몰두해 오고 있다. 그의 방은 흡사 책으로 지은 성과 같다. 창과 문을 빼곤 사방으로 온통 책장이 자리잡고 있으며, 책장엔 책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고 미처 그곳에 넣지 못한 책들은 기둥이 되어 위태위태한 모양새로 쌓여 있을 정도이다.

 

평소엔 그를 찾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최근 신기하게도 그를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매일 같이 그를 찾아와 도시락을 놓고 가며 대화를 시도하는 빨간 벙어리 장갑의 젊은 처자, 그리고 전날 읽었던 시의 시인이 자신을 불렀느냐며 불쑥 노인 앞에 나타나기도 한다. 그의 이니셜은 P. 평소 낯선 이들과의 교류를 싫어하는 그의 성격 탓도 있지만, 그보단 이들이 노인에겐 무언가 영 꺼림직스럽기만 하다. 평소 같았으면 볼 수조차 없었던 옆집 할머니마저 어느날 나타나 그와 대화하기까지 한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일반적인 시간의 감각이 이미 그에게 존재하지 않고 있지만, 마찬가지로 전날 읽었던 40년전의 잡지 속에서 희미하게 문득 한 소설가가 떠오르고, 신기하게도 다음날 그 소설가가 노인 앞에 나타나 자신을 불렀느냐며 그에게 접근한다. 이 소설가의 이니셜 또한 P........

노인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그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소위 말해서 아직 이승을 떠나지 못한 영혼 쯤 되는 듯하다. 일반적인 우리식 시간 개념과는 다른 방식의 시간이 그를 지배하고 있고, 심지어는 음식을 입에 대지 않은 채 살아갈 수 있다. 그를 매일 같이 찾아오는 빨간장갑의 처자는 그를 저승으로 이끄려는 영매인 듯하다. 그녀가 매번 갖고 오는 도시락은 신기하게도 노인의 입에 딱 맞을 뿐 아니라 일반 도시락의 수준을 넘는, 매우 정성이 가득한 음식들로 그득하다. 먼 곳 - 이승을 일컬음이라 - 에 있는 아들이 보냈다는 걸로 봐선 아들네가 정성껏 차린 제삿상을 상징하는 듯하다. 하지만 노인은 이 도시락뿐 아니라 빨간장갑의 처자에게서 무언가 본능적으로 섬찟한 기운을 느끼며 영 탐탁치 않아 하는 거였다. 아직은 그가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방증이다.

그가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로지 책 속에 파묻혀 책 안의 주인공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던 충격적인 과거의 한 사건 때문이다. 노인이 이를 의식적으로 기억 속에서 지우려 한 흔적이 엿보이지만, 그의 의도와는 별개로 희미했던 40년전의 끔찍했던 일들이 서서히 점점 두렷하게 모습을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세상을 힐난하며 한껏 날카로워진 그의 펜끝이 문단을 향해 끗발을 올리고 있을 때, 이니셜P군이 그 앞에 나타나 존경심을 표하며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건넨다. 하지만 노인은 그를 빤히 쳐다보며 "그래서?"..

이니셜P는 무안해 어쩔 줄 몰라하고...

이니셜P는 그일 때문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지만 어쨌든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일전에 그 앞에 차례로 나타났던 시인P와 소설가P는 사실 같은 사람이지만, 처음에 희미했던 기억들이 점차 두렷해지는 과정으로 묘사된 거다. 이후로 노인의 삶은 180도 바뀐다. 스스로 자신의 글솜씨가 비천한 자신의 인격에조차 못미친다는 것을 깨달은 그, 글쓰기를 그만 두고 오로지 읽기에만 탐닉한다.

함께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자신의 집 주변을 서성거리며 가끔 노인의 말벗이 되어 주었던 이웃집 할머니, 결국 빨간장갑 영매에게 이끌려 저승으로 향한다. 최근까지만 해도 곱상하게 귀티가 흘렀던 할머니였지만, 어쩐지 빨간장갑을 쫓아갈 때의 그녀 얼굴은 꼭 죽은 송장과도 같게 느껴졌다. 할머니는 노인도 함께 할 것을 종용하지만, 그의 이승 잔류 고집은 완강하다.

노인을 찾은 이니셜P, 희한하게도 4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모습 그대로다. 심지어는 방금 물에서 나온 듯한 초췌한 모습 그대로인 거다. 그가 물에 빠져 죽었으리란 추측이 가능해지는 부분이다. 노인의 집에 앉아 계속해서 글을 쓰고 있으나 젖은 몸에서 떨어지는 물에 의해 그의 글은 결국 모두 지워지고, 계속 빈 공간으로 채워나가고 있다. 언젠간 글을 끝맺을 날 있을 것이라는 그의 말, 공허할 뿐이다.

노인은 이런 모습을 보며 자신의 방안에 갇혀 영원히 책속의 주인공으로 부활하는 모습을 꿈꾼다. 그래서?

노인은 이니셜P군의 죽음에 대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외면하려 노력해 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의 자살은 노인의 삶 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끝내 노인이 죽음의 문턱에 들어섰을 때조차 그로 인한 무언의 괴롭힘을 당하게 된 것이다.

노인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아들방에 이니셜P군을 기거시키며, 그에게 글을 쓸 수 있게 하고, 열심히 쓸 수 있도록 북돋워주기까지 한다. 그가 40년전 행했던 악행에 대한 마지막 배려이자 사과인 셈이다.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엔 그동안 살아왔던 삶의 궤적들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한다. 그 파노라마 영상 속에서 과거의 잘못과 과오가 마무리되지 않은 채 우리 눈에 비쳐진다면, 마지막으로 넘는 죽음의 문턱마저도 편치 않게 와 닿으리니.. 노인은 자신의 부족한 인격으로 인해 죽은 이니셜P 때문에 실은 엄청난 고통의 댓가를 치렀을 터, 이니셜P의 글쓰기 작업 배려와 동시에 그는 비로소 영면을 취할 수 있게 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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