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남쪽으로 튀어> 웃음코드로 버무린 진지함

새 날 2013. 1. 31.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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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무겁고 심각하며 진지한 내용이지만, 그러한 진중함을 관객들에게 결코 강요하지 않는다. 그래서 묘미가 있는 영화다. 가벼운 웃음으로 시작한 영화는 끝까지 그 분위기를 견지해 나간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영화가 끝난 뒤 가볍게 웃으며 영화관을 나설 수 있었던 이유이다.

하지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웃음으로만 넘겨 버리기엔 영화 속에 담겨진 메시지가 너무 공허해지는 느낌이다. 용산참사로 시작을 알렸던 현 정권은 4대강 살리기라는 거대한 삽질로 마무리지으며, 이제 그 정점에 서 있다. 이 영화의 웃음코드 속에는 5년 내내 국민들의 목소리는 무시한 채 비정하면서도 무지막지한 개발에만 온 심혈을 기울여 온 현 정권에 대한 따가운 비판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최해갑(김윤석 분)은 왕년에 꽤나 이름 날리던 민주 투사였는가 보다. 그로 인한 후유증(?) + 변하지 않는 그의 사상이 한데 어우러져 중년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특정 직업 없이 다큐멘터리 독립 영화 감독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의 과거 명성은 아직도 그의 뒤를 쫓는 국가 정보 요원들을 통해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스스로 대한민국 국민임을 포기한 그, 동네에서도 불순분자로 낙인이 찍혀 자식들에게까지 그로 인한 피해가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었다.

한편 그의 고향 '들섬'이 지역 국회의원의 개발 의지에 따라 모두 국유지로 넘어가고 가옥들이 철거될 위기에 처해진 상황, 그의 고향 후배 봉만덕(김성균 분)이 그런 고향을 살리기 위해 해당 국회의원에 대한 테러를 감행하고, 최해갑의 아들 최나라가 그 사건에 연루되어 가족은 졸지에 집에서 쫓겨나 남쪽 고향 '들섬'으로 이사를 가게 되는데...

 

 

 

최해갑 그의 별명은 아르헨티나의 전설적 혁명가 체게바라, 어째 그러고 보니 외모도 비슷한 구석이 었어 뵌다.

 

 

그가 고향에서 자신의 집을 지키기 위해 벌이는 사투는 마치 80년대의 바리케이트 농성과 쇠파이프 그리고 화염병과 같은 이미지들이 떠올라 섬뜩하지만, 그가 내뱉는 말투나 행동에서는 진지함 따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어찌 보면 천연덕스럽고 뻔뻔하다 해야 할까. 그의 체형을 보라. 저 중후한 몸매에서 뿜어져 나오는 중년의 포스는 아무리 봐도 민주투사로서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가 않는 거다. 웃음코드를 끝까지 견인시켜 온 그만의 힘이라 생각된다.

 

 

최해갑의 아내 안봉희(오연수 분), 겉은 가냘프지만 잔다르크와 같은 당찬 여성상의 표본이다. 부창부수라 했던가. 그녀 역시 학창시절 민주투사로서 이름 꽤나 날리던 천상 여걸이다. 오죽하면 '안다르크'란 별명을 얻었겠는가. 안다르크의 진가는 영화 막판에 벌어지는 화염병 투척 씬에서 빛을 발한다. 그나 저나 오연수씨를 스크린에서 보는 건 처음인 것 같다. 물론 TV에서도 본 적은 꽤나 오래 전이다. 그래서 반가웠다.

 

 

초등학생이지만 꼬추에 벌써 털이 나기 시작했다는 최해갑의 아들 최나라, 보통사람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아빠 때문에 겪는 고충이 이만저만 아니다. 하지만 고향인 '들섬'에 정착하여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며 차츰 아빠를 이해하는 아들이 되어 간다.

 

 

최해갑 고향 후배 봉만덕, 고향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몸마저 희생하려 한 의리파다. 맛깔스런 연기로 영화의 재미를 배가시켜 준다. 박수건달에서도 본 듯한데, 정확히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최해갑의 뒤를 그림자처럼 쫓는 국가 정보 요원들, 하지만 이들에게서 샤프함보단 얼빵함이 더 강하게 묻어 나온다. 그들의 헛발질에 연신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건 물론이다. 마지막 반전 요소로서도 적절했다는 생각이다.

 

 

영화는 '들섬'을 사수하는 최해갑과 '들섬'을 개발하려 하는 자들간의 전면전으로 치닫는다. 이를 위해 정치권에선 지역 부동산 개발업자를 지역 청년회장이란 자리에 사전에 앉혀 놓는 등 물밑작업을 착착 진행해 간다. 이런 모습은 현실에서의 정치권의 모습과 맞닿아 있다. 개발을 진두 지휘하는 국회의원이란 작자는 돈에 눈이 먼 비리 투성이 정치인, 그의 밑에서 손 비비며 둘러 붙은 작자들의 모습은 떡고물을 노리는 간신배들, 이쯤되면 현실 정치권의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다.

 

 

 

결국 최해갑의 집에 각종 무기와 중장비로 중무장한 용역깡패들이 들이닥친다. 집을 깨부순 개발회사의 이름은 티브로, 우연히 발견한 티브로의 로고는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의 로고와 닮아 있고.. 최해갑에게 인질로 잡혀 있던 국회의원의 입을 통해 내뱉어진 말 "난 들섬을 팔아버린 쥐새끼다"...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과거 민주화에 함께 몸 담았던 동지들, 간만에 최해갑을 찾아 오지만 그에게 문전박대를 당하며 '동지'라는 말조차 입에 못 담게 한다. 동지들이란 사람들 대부분은 변절하여 보통 소시민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그렇지 않고 기성 정치권에 몸 담은 일부는 오로지 권력에만 눈이 멀어 있다며 그들을 질타한다. 최해갑의 입을 빌려, 현 정치권의 행태에 대해 꼬집은 감독의 일갈이다.

이익에 눈 멀어 개발사업에 목숨 걸어 왔던 현 정권이 끝나가고 있다. 이 영화가 현 정권에 의해 피로감에 젖은 이들에겐, 특히 386세대에겐, 힐링이 될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물론 권력과 자본 따위의 정치색을 완전히 배제한 채 그냥 웃음코드로만 바라봐도 괜찮을 영화다.

그렇게나 아빠를 못미더워하고 싫어했던 최해갑의 딸이 마지막엔 이런 말을 한다. "아빠처럼 한 번 옷을 사면 10년동안 입는 남자와 결혼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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