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엄숙주의자들이 빚은 체게바라 의상 논란

새 날 2013. 8. 17.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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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가 별 시시껄렁하지도 않은 일을 갖고 애써 논란거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관심 받고 싶어 그런 걸까요? 

 

광복절 기념행사 착용 의상 논란

 

광주광역시가 아르헨티나 출신의 사회주의 혁명가 체 게바라의 얼굴이 그려진 옷을 입고 광복절 행사 축하공연에 참석했던 시립소년소녀합창단 지휘자를 결국 중징계하기로 방침을 정했다는 결코 유쾌하지 않은 소식이 전해져 옵니다.  "국가 기념행사에서 사회주의 혁명가의 옷을 입고 공연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 징계 사유입니다.

 

 

지난 15일 광주 빛고을 시민문화회관에서 열린 제68주년 광복절 기념행사에서 광주시립소년소녀 합창단이 무대에 올라 "아리랑"을 합창했으며, 이어 "광주는 빛이어라"라는 공연을 시작하면서 흰색 저고리를 벗어 체 게바라 얼굴이 새겨진 검은색 티셔츠를 드러낸 것이 논란의 발단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행사장 좌석 한 켠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광주보훈청장이 "광복절 기념행사의 취지와는 맞지 않는 것 같다"며 운을 떼자 광주광역시장의 의견을 거쳐 단 하루만에 중징계 방침이 내려지는등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된 것입니다.

 

경직된 사고에서 비롯된 해프닝

 

광복절 기념행사, 사실 매우 엄숙한 자리이긴 합니다.  단순히 행사를 관람하는 사람도 복장에 조금 신경 쓰이는 게 사실일 테고요.  더군다나 행사에 직접 참여하는 행사요원들의 입장에선 일반인들보다 훨씬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번 논란을 빚은 지휘자가 행사를 조금 안이하게 준비한 듯한 부분에 대해선 충분히 지적할 순 있겠습니다.

 

ⓒ조선일보

 

하지만 남미의 공산주의 혁명가 체 게바라와 광복절이 무슨 상관관계라도 있던가요?  광복절이라고 하여 그의 얼굴이 박힌 티셔츠를 입어선 안 되는다는 무슨 불문율이라도 있었던가요?  왜 그의 얼굴이 박힌 의상에서 거북함을 느껴야 했을까요?  체 게바라의 얼굴은 이미 이곳저곳에 인쇄되어 전국 거리를 활보하고 있습니다.  그의 얼굴, 우리 사회에서도 이미 대중적인 이미지가 돼버린지 오래입니다.  체 게바라의 얼굴은 이제 디자인으로 승화되어 의상을 비롯한 각종 액세서리 류에 채용될 정도이니까요.    



물론 광주보훈청장과 같이 일부의 사람들은 이런 류의 디자인에서 거부감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의 지적으로 인해 광주시장까지 직접 나서 해당 지휘자에게 결국 중징계 조치까지 내리게 한 것은 과잉반응으로밖에 보여지질 않습니다. 

 

해당 지휘자는 논란이 불거지자 해명을 통해 "검정색 옷이 필요했다.  왜나면 유관순 한복 안에 덧대야되니까.  그것뿐 다른 의도는 없다.  아울러 48명 전원이 똑같이 입을 수 있는 옷은 지난 6월 공연 때 산 이 옷밖에 없었다.  체 게바라 의상조차도 예산이 부족해 학부모들이 돈을 모아 구매한 것으로, 합창단이 어떤 의도를 가졌던 것은 분명 아니다"라고 밝혔으며 광주시의 자체조사에서도 특별한 의도는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일단의 해프닝으로 마무리지을 수 있는 일을 오히려 광주시가 논란거리로 더욱 부추기는 경향이 있어 보입니다.  경직된 사고에서 비롯된 우리사회의 부족하기만 한 아량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합니다.  이번 해프닝은 정확히 10년전 유시민 전 개혁당 의원의 국회 첫 등원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  2003년 4.24 재보궐선거에서 개혁당 후보로 나서 당선된 유시민 의원은 정장 대신 티셔츠와 흰색 면바지에 재킷을 걸쳐입고 의원선서를 위해 국회 발언대에 섭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엄숙주의자이신 우리 의원들이 가만히 계실 수 없었겠지요.  예의도 없느냐며 의원들의 고성이 오갔고, 결국 여야 의원 50여 명이 퇴장해버리는 유례없는 해프닝이 벌어진 것입니다.  

 

엄숙주의자들에게 다시 한 번 빅엿을

 

비슷한 사례는 또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대선기간 전국을 뜨겁게 달궜던 대선 후보들간 TV토론회, 통진당의 대선후보로 나섰던 이정희 후보의 발언이 수많은 화제를 뿌린 바 있습니다.  대부분의 언론 매체와 많은 사람들 역시 그녀의 발언에 대해 거북함을 느껴야 했고, 토론의 품격에 대해 갑론을박해야 했습니다.  물론 이정희 후보의 박근혜 후보에 대한 일방적인 공세에 시청자들이 적잖이 놀란 측면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그녀가 토론이란 도구를 얼마나 잘 활용하였으며 또한 토론을 재밌게 했는가에 대한 부분을 바라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경직된 사회에 대한 일종의 통렬한 한 방이었던 셈입니다.  역시나 우리 사회는 아직 이를 받아들일 만큼 유연하지 않고요.

 

 

광주광역시는 체 게바라 의상 해프닝에 대해 해당 지휘자에 대한 중징계를 마땅히 취소해야 할 것입니다.  단순 해프닝으로 끝날 사안을 징계조치로 마무리짓는다면 광주시장과 광주시의 편협한 사고와 부족한 아량만을 드러내는 것일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광주는 특히 예향의 도시로 잘 알려져있으며, 민주화의 성지로도 추앙받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도시의 명성에 걸맞는 유연한 사고와 행동을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왠지 체 게바라 의상을 입은 아이들의 당시 공연이 마치 영화 "스텝업4"에서 플래시몹 그룹 "더몹"이 세상의 엄숙주의자들에게 보여주었던 엽기발랄한 퍼포먼스의 몸짓과 외침을 닮아있는 듯한 묘한 느낌을 받았답니다.  세상의 엄숙주의자들에게 날리는 통쾌한 한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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