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그동안 일반고 슬럼화의 주범으로 꼽아온 자사고를 무력화시키는 대신 일반고의 역량은 높이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방안"을 13일 발표했습니다.
교육부,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 발표
전국의 일반고는 현재 1524개로 전체 고교의 65.7%를 차지하고 있으며, 학생수로는 71.5%인 135만명에 달해 전체 고교생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명박정부가 추진한 고교 다양화 정책으로 인해 학교 줄세우기와 서열화가 마무리되며, 소수에 불과한 특목고나 자사고 등에 밀려 일반고가 슬럼화의 위기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이에 교육부는 2010년부터 도입된 자율형사립고 정책 이후 일반고의 위기가 가속화됐다고 지적하며, 자사고의 학생 선발권을 폐지하는 등 주로 자사고 정책에 대한 대수술에 이번 대책의 방점을 찍고 나섰습니다.
아울러 고교 교육의 수평적 다양화를 위해 일반고의 자율성 확대, 재정지원 강화로 슬럼화된 일반고의 역량은 높이면서 각종 특혜를 누리고 있는 자사고와 특목고의 위상을 상대적으로 낮춰 수직적 고교 서열화를 극복해 보겠노라는 목표도 담고 있습니다.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 주요내용
그럼 지금부터는 교육부의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에 대한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내용은 역시 자사고에 대한 지도 감독 강화 방안인 듯합니다.
ⓒ세계일보
첫째, 자사고와 특목고의 지도 감독 강화
자율형사립고는 이명박정부의 고교 다양화 정책의 하나로 2010년부터 운영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 자사고는 중학교 내신 50% 이내로 입학 지원자격을 제한해온 탓에 특목고와 함께 상위권 학생을 싹쓸이하며, 학교 서열화를 부추기는 원흉으로 지목돼온 상황이기도 합니다. 교육부는 이에 무척이나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댔습니다. 서울 등 평준화지역에 소재하는 자사고는 2015학년도부터 성적 제한 없이 "선지원 후추첨" 방식으로 학생을 선발토록 한 것입니다.
외고와 국제고 등 특목고에 대한 지도 감독 또한 강화됩니다. 교육청별로 교육과정 편성과 운영에 대한 주기적 점검 및 지도 감독을 실시하고 입학 전형에 대한 정기적 감사를 실시하기로 한 것입니다. 아울러 이과반, 의대 준비반 운영 등 애초 특수 목적이란 설립 취지에 맞지 않게 교육과정을 운영해온 특목고에 대해 지정 취소할 수 있도록 길을 터 놓았습니다.
둘째, 일반고 다양성 자율성 확대
교육과정의 경우 현행 필수이수단위를 116단위에서 86단위로 축소키로 하였고, 반면 학교 자율과정 이수범위는 64단위에서 94단위로 확대키로 하였습니다. 이중 자율과정 이수단위는 학교장 재량으로 운영이 가능해 학교나 지역의 특성을 반영할 수 있습니다. 예로 다양한 선택과목을 개설, 예체능이나 교양 등의 교육을 강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과목별 이수단위 증감 범위도 현행 1단위(5±1)에서 3단위(5±3)로 확대하기로 하였습니다. 한편 일반고 전체에 내년부터 4년간 학교당 5000만원을 특별교부금으로 일괄 배정하는 재정 지원에도 나섭니다.
기타 학교내 진로 집중과정 개설, 학교간 교육과정 거점학교 운영, 특성화고 입학기회 확대와 일반고의 진로 직업 교육 강화 등과 같은 방안도 함께 추진키로 하였습니다.
자사고 희생 통한 일반고 살리기, 성공할까?
이번 대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자율형사립고의 무력화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학교 서열화가 이미 완성된 상황이고, 그 상단엔 유명 특목고와 전국 단위의 일부 자사고가 포진되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애꿎은 일반 자사고만을 희생시킨다고 하여 과연 빈사 상태의 일반고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요?
해당 방안에서 제시된대로 일반고의 경우는 자율성을 극대화하여 자사고와 비슷한 운영방식을 따르게 하고, 자사고의 경우엔 성적 제한 없이 선지원 후추첨으로 학생을 뽑게 한다면 일반고에 비해 3배 이상이나 되는 학비를 부담해가며 자사고에 지원하는 학생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이는 결국 자사고 대부분을 자연 도태의 길로 접어들게 만드는 결정적 한 방이 되는 것입니다. 자사고로서는 이번 방안에 명운이 달린 셈입니다.
성적 우수학생들, 그동안 고교 서열 최상단의 특목고와 전국 단위의 자립형사립고로 진학하고, 일부는 일반 자율형사립고로도 진학을 해왔기에 자사고의 무력화가 일반고의 위상을 높이는 하나의 방편이란 생각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어차피 우수학생들 대부분이 특목고와 전국 단위 자사고로 몰리는 현상은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며, 반대로 향후 자사고가 무력화될 시 자사고의 수요마저도 이들 특정 소수의 유명 학교들이 잠식할 가능성이 높아보입니다. 소위 말해 풍선효과입니다. 자사고의 퇴출은 특목고 등의 입학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 것이며, 이는 사교육 시장 키우는 결과만을 낳게 할 뿐입니다.
한편 일반고의 자율성 확대를 위해 학교당 1년에 4년간 5천만원의 특별교부금을 배정한다지요? 과연 이 액수로 일반고의 자율성을 신장시킬 수 있을까요? 물론 전혀 지원해주지 않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거창한 명목에 비해 터무니 없이 작은 금액으로 보여집니다. 재정상의 문제일 수 있겠지만 이왕지사 지원해주기로 마음 먹은 것이라면 좀 더 통 큰 배려가 너무도 아쉬운 상황입니다. 마치 슬럼화된 일반고의 초라한 위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여 씁쓸한 마음 지울 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번 방안은 일반고 위상 제고라는 취지에서 볼 때 핵심을 빗겨간 듯합니다. 애초 고교 서열화의 주범을 자사고로 한정하여 지목한 부분부터 에러입니다. 앞서도 언급했듯 고교 서열의 최상단엔 특목고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린 국제중학교의 입학 비리 사건을 통해 일부 귀족학교들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목도했습니다. 일부 특목고 또한 이들과 전혀 무관치 않을 것입니다. 물론 이번 대책에 특목고에 대한 관리 감독 강화에 대한 언급이 있긴 합니다. 설립 취지에서 벗어난 학교 운영에 대해 지정 취소의 길을 열어놓게 한 부분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지만 영훈국제중학교의 예에서 봐왔듯 단순한 선언적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농후해 보입니다. 교육부와 교육청, 모두들 제 식구 감싸기에 열심인지라 실제 지정 취소까지 가는 길은 너무도 멀게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고교서열화로 인한 일반고의 슬럼화, 단순히 자사고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특목고에 대해선 형식적인 수준의 대책에 그치고 자사고에게 모든 원죄를 뒤집어 씌운 채 이들만을 희생양으로 삼은 정책은 핵심을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난 것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빠진 이번 방안으로 슬럼화된 일반고가 되살아나긴 힘들 듯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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