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박원순 시장님, 솔직히 실망스럽습니다

새 날 2014. 12. 3.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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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서울시는 시민이 누려야 할 인권적 가치와 규범을 담은 '서울시민 인권헌장'을 시민의 참여로 제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무작위로 공개 추첨한 서울시민 130명이 시민위원으로 위촉되었고, 모두 6차례의 회의와 간담회 및 공청회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드디어 11월 28일 서울시민 인권헌장이 완성됐다.  하지만 서울시의 애매모호한 태도 변화로 인해 이 헌장은 빛을 보기도 전에 용도 폐기라는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그동안 해당 헌장의 제정 과정에서 ‘성소수자 차별 금지조항’을 놓고 성 소수자 혐오세력(일부 기독교세력 등)과 극단적인 갈등을 빚어 온 것으로 알려졌는데, 결국 이를 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인권헌장 제정이 동성애 합법화를 추진하는 것이라며, 공청회장에 난입하여 난동을 부린 세력들에게 서울시가 굴복한 셈이다. 

 

ⓒ경향신문

 

이 과정에서 박원순 시장의 행동이 도마에 올랐다.  인권헌장의 제정 과정에서 "나를 곤경에 빠뜨리는 인권헌장을 뭐하러 만드느냐"라는 박 시장의 발언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 탓이다.  2일 서울 민주노총 교육장에서 열린 서울시민 인권헌장 긴급 진단 토론회에서의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장 입을 통해서다.  

 

서울시가 인권헌장 표결처리를 만장일치의 합의만 인정하겠노라며 태도를 바꾼 끝에 결국 실패했다고 공식 발표한 것은, 결국 이러한 박 시장의 인권헌장에 대한 불편한 속내가 반영된 게 아닐까 싶다. 

 

한편 별로 믿고 싶지 않거니와 인권헌장과는 별개의 사안이지만, 때마침 박원순 서울시장이 우클릭 행보를 보이고 있노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지난 9월 '세월호 유가족을 정치적으로 선동하는 세력이 있다'고 주장하던 자칭 보수 '애국단체총연합회' 측 상임의장을 맡고 있는 이상훈 전 국방부장관에게 안보고문을 맡아달라고 제안한 사실이 한 언론매체를 통해 확인된 것이다.

 

ⓒ리얼미터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차기 대선주자 부동의 1위 박 시장이 본격 대선 가도를 위한 표 다지기에 들어선 게 아닐까 하는 정황으로 읽힌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11월 4주차 주간집계에 따르면, 여야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에서 박원순 시장은 0.9%p 오른 17.9%로 8주 연속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박 시장은 지난 10월에도 동성애를 옹호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홍역을 치렀던 경험이 있다.  동성애를 반대하고 있지만, 정작 선거에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보수 기독교계이기에, 차기 대선을 꿈꾸는 이들에게 있어 그들은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없는 상대임엔 틀림없을 테다.  



물론 서울시의 인권헌장 폐기 선언 이후 박 시장은 3일 현재까지 그 어떠한 언급조차 없는 상황이기에 정확히 어떤 속내인지 파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인권을 흥정 대상으로 삼은 서울시의 결정과 박 시장의 행보는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인권이란 민족, 국가, 인종 등에 상관없이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인정되는 보편적인 권리 또는 지위를 일컫는다.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이자 다른 누군가로부터 차별 받거나 침해 당하지 않을 권리이기에 흔히 천부인권이라 칭하기도 한다.   

 

ⓒ서울신문,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의 성 소수자 화장실

 

당연한 얘기이지만,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성 때문에 결코 차별받아서도 아니 된다.  개인이 남성 혹은 여성, 그밖에 제3의 성별이라 느끼는 내면적인 자아의식을 성 정체성이라 하며, 어떤 성별로부터 연애 감정을 느끼는지의 여부를 성적 지향성이라 일컫는다.  

  

우린 주변으로부터 타고난 성별과 달리 다른 성별로 행동하거나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흔치는 않지만 아주 가끔은 볼 수 있다.  이들을 성 소수자라 부르며 우린 이들의 다양한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성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어야 함이 마땅하다.  단지 우리와 다르다고 하여 그들에게 '틀렸다'라고 손가락질할 순 없으며, 또한 혐오한다고 하여 보편적인 권리마저 박탈할 수 있는 권한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인권은 특정 세력 때문에 양보하거나 흥정의 대상이 될 만한 사안이 결코 아니며, 천부적인 권리이기에 무조건 인정하고 존중해 주어야 함이 옳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이번 인권헌장을 둘러싼 서울시와 박원순 시장의 행보는, 혹여 대선을 의식한 표 다지기 성격의 것이라 한들, 아니 오히려 그런 이유라면 더더욱,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적잖이 실망스럽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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