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십상시에 서북청년단까지.. 나라꼴 말이 아니네

새 날 2014. 11. 30.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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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비선 실세로 꼽히는 정윤회 씨가 국정운영에 개입했다는 청와대 감찰보고서에 대한 보도 파문이 일파만파 확산돼가고 있다.  자칫 박근혜 정권 최대 스캔들로 비화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는 것이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청와대의 움직임은 민첩했다.  해당 문건은 찌라시에 불과하다며 이를 최초 보도한 세계일보를 고소하는 한편, 문건 작성 당사자로 지목된 청와대 전 행정관 박 경정에 대해선 수사를 의뢰키로 했단다. 

 

해당 문건은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 경정이 이를 작성하고 직접 유출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가운데, 당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소속이었던 박 경정은 이 건으로 인해 일선 경찰서로 좌천된 바 있으며, 해당 문건 작성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조응천 청와대 전 공직기강비서관은 해당 직책을 그만두어야 했다. 

 

 ⓒSBS 방송화면 캡쳐

 

청와대는 두 사람의 인사에 대해 통상적인 것이었노라 주장하고 있지만, 이들의 업무를 둘러싼, 즉 정윤회 씨 감찰과 관련한 내부 갈등 내지 외압설이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기에 의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기세다.  조 전 비서관의 사퇴와 박 경정 좌천 이후 핵심 기능이 죄다 민정비서관실로 이관된 채 공직기강비서관실 자체가 거의 유명무실해졌다는 전언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정황으로 읽힌다.

 

정윤회 씨를 둘러싼 세간의 루머 내지 이번 감찰보고 문건이 과연 사실로 드러나게 될지 아니면 청와대가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듯 단순한 해프닝으로 그치게 될지의 여부는 결국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곧 집권 3년차에 접어들게 될 박근혜 정권에 있어 이번 사건은 사실 여부와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어떤 식으로든 정권의 안위에 타격을 가함과 동시에 레임덕 현상을 가속화하게 되리란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사실이든 아니든 이번에 드러나게 된 권력의 치부는 감찰 문건 속에서 언급된 '십상시'라는 단어 하나로 모두 대변된다.  십상시(十常侍)란 중국 후한 말 영제 때 권력을 잡고 조정을 휘두른 환관 10여 명을 일컫는 말인데, 영제는 이 십상시에 휘둘려 결국 제국을 망하게 한 인물이다.  역사책 한 귀퉁이에 조그맣게 쓰여있을까 말까 한 이 '십상시'란 용어를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보게 될지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뉴스1

 

그러나 안타깝게도 '십상시'뿐 아니라 무덤 속에 묻힌 채 용도 폐기돼야 할 유물들이 권력의 속성과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사회 분위기를 틈 타 스멀스멀 밖으로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해방 직후 공산 세력 소탕을 명분 삼아 폭력과 테러 행위로 악명을 떨쳤던 ‘서북청년단’이 급기야 28일 재건을 선언하며, 실제 서북청년단의 마지막 생존자로 알려진 손진 씨를 총재로 위촉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지난 9월 서울광장에 설치된 세월호 추모 노란 리본을 훼손하려다 시민들의 공분을 일으킨 바 있으며, 이날 개최된 재건 총회 역시 무리수로 점철된 채 치러졌다.  서울시립청소년수련관 측이 재건 총회 대관을 불허했지만, 이들은 충돌을 야기하면서까지 막무가내로 진입하여 결국 총회를 개최하고 만 것이다.



현 권력의 지지세라 할 수 있는 극우세력에 대한 집권세력의 우호적인 태도와 권력 누수의 혼란한 틈을 비집고 그들이 다시금 고개를 삐죽 내밀고 있는 셈이다.  이렇듯 영원히 과거에 묻힌 채 역사적 아픔으로만 남아 기억되어야 할 서북청년단이 다시금 발호할 수 있게 된 건 순전히 '십상시'로 대변되는, 현재의 집권세력이 올바른 국정 운영에 힘을 쏟기보다 권력 암투와 같은 권력 누수 현상을 빚음으로써 마치 실제 십장시가 조정을 휘둘렀던 후한 말 시대처럼 나라 꼴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국정을 돌볼 생각은 않고 권력 암투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니, 그동안 국가나 국민을 위한다는 이번 정권의 그럴 듯한 표현은 모두 허울 좋은 말장난뿐이었을 테고, 또 이러한 현상을 그저 방임하고 있는 상황에서 청와대 감찰 문서가 어처구니없게도 일반에 쉽게 공개되는, 국정컨트롤타워의 보안 상황마저 취약성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만 이번 사건은, 그야말로 총체적인 국가 기강 문란 현상 아니면 그 무엇이겠는가. 

 

때문에 '십상시'와 '서북청년단'이라는, 21세기의 시대 조류에 전혀 걸맞지 않은 용어 등장의 이면엔 어쩌면 현재 우리 사회의 민낯이 고스란히 비치고 있는 상황일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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