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지나친 경쟁과 첨단기술이 낳은 풍속도

새 날 2014. 11. 25.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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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시험 때문에 이래저래 말이 많은 시기이다.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치르는 데다 시험의 비중이 워낙 막중하기에 그만큼 관심을 증폭시키고 온갖 뒷말을 양산해내는 모양새다.  시험 얘기가 나왔으니 그와 관련한 얘기를 한 번 해볼까 한다. 

 

학교 다닐 때의 일이다.  시험을 앞두고 벌어진 상황이다.  시험 시작 5분전 감독관이 들어오더니 뜬금없이 옆 강의실로 자리를 모두 옮기란다.  시험에 나올 만한 내용을 사전에 책상이나 벽 따위에 깨알 같이 써놓아 부정행위를 일삼아 온 행태(이른바 '판치기')를 막기 위한 감독관 나름의 고육지책이었던 셈이다.

 

사실 '판치기' 수법은 매우 고전적인 기술이다.  실제 과거 강의실에선 깨알 같은 글귀들로 가득한 책상이나 벽면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이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이러한 방식의 부정행위를 심심찮게 저질러왔는지를 확인시켜 주는 장치이다.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당시 감독관들은 강의실 내에서 자리를 바꿔 앉히는 방식을 흔히 사용해 오곤 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강의실 자체를 바꿨던 사례는 아스트랄할 정도로 유일무이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오죽하면 이렇게까지 해야 했나 싶어 안타까울 정도였다.  물론 첨단을 내달리는 지금 시대에 이를 되돌아보면 그마저도 아련한 추억거리이자 꽤나 순진한 방식에 불과하겠지만 말이다. 

 

ⓒMBC 방송화면 캡쳐

 

최근 중국에서의 시험 행태가 화제를 불러모으고 있다.  한 중학교에선 자신의 책걸상을 직접 운동장으로 들고 나와 4미터 간격에 맞춰 앉은 채 시험을 치러야 했다.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서란다.  이뿐만이 아니다.  산시성에 위치한 한 대학교 졸업시험에선 졸업생 3,600명 전체가 운동장에 줄을 맞춰 앉아 시험을 치르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스포츠서울

 

더욱 놀라웠던 건 해당 시험을 감독한 여든 명의 교수들이 저마다 망원경과 사다리, 카메라 등의 장비로 중무장한 채 부정행위를 감시하고 나섰다는 대목이다.  첨단 기기와 기술력이 부정행위에 총동원되고 있어 이를 막기 위한 특단의 방어 전략이었던 셈이다.

 

ⓒMBC 방송화면 캡쳐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민망하거나 과도해 보이기 까지 한 중국의 부정행위 방어 전략은 국민성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하지만 사실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엿보인다.  첨단 기술이 응집된 장비와 기상천외할 정도의 기발한 부정행위 방법이 각종 시험에 동원되면서 이를 막기 위한 전략 역시 그에 버금가야 했기 때문일 테다.

 

이는 수능 시험장 내 시계 반입 문제로 떠들썩했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 크며, 결코 남일 같지 않게 다가온다.  수능시계 논란이나 중국의 새로운 시험 풍속도는 모두 창과 방패라는 수 싸움이 빚어낸 결과물일 테다.  물론 지나칠 정도로 과열된 경쟁과 첨단기술의 발전이 그의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말이다.

 

자신을 속이는 행위를 하지 말 것이며, 공정한 경쟁이 되어야 한다는 따위의 도덕 교과서에나 실릴 법한 말들이 귀에 쏙쏙 박히기엔 사실 경쟁이 너무도 극심하다.  요즘 사람들에게 있어 부정행위란 지극히 이기적인 범죄라는 류의 언급은 어쩌면 꼰대 훈계나 그저 사치스러운 수사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를 일이다.  목적 앞에선 수단 방법 따위 가리지 않는 사회 풍조 역시 무시 못 한다.  결국 창과 방패의 치열한 수 싸움은 필요악이란 의미일 테다.

 

수능시험장 내 소지할 수 있는 물품을 엄격히 통제해야 할 정도로 우리의 부정행위 기술 또한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양상이다.  경쟁 하나로만 치자면 중국은 우리의 발뒤꿈치조차 따를 수 없을 정도로 우리의 그것은 치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더욱 요란스러워 보이는 건 아무래도 국민성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바 클 테다. 

 

어쨌거나 조금은 우스워 보이기까지 한 중국식 시험장 풍경이, 머지 않은 시기 우리에게도 곧 익숙해질 것만 같은 결코 좋지 않은 예감 때문에 웃프기도 하거니와 씁쓸함이 한데 어우러지는 묘한 느낌을 선사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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