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연탄 한 장에 담긴 그 이상의 가치

새 날 2014. 11. 22.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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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아침입니다.  지금 내리는 비를 겨울비라 해야 할까요, 아니면 가을비라 해야 할까요.  어쨌거나 비가 내리는 이른 아침부터 날씨만큼이나 우울한 소식 하나가 날아들었습니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서 혼자 살던 50대 기초생활수급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는 소식입니다.  "엄마 죄송하다, 화장해 달라"는 내용의 유서가 남겨 있던 걸로 봐선 아마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듯합니다.  

 

한 독거노인이 자신의 시신을 수습해 줄 이들에게 국밥이나 한 그릇 하라며 10만원을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어 보는 이들의 가슴을 아리게 했던 소식이 엇그제였는데, 본격 겨울로 접어드니 이러한 류의 안타까운 소식이 자꾸만 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듯 추운 겨울철은 기초생활수급자나 독거노인 등과 같이 한계 상황에 직면한 이들에겐 더없이 고통스럽게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가뜩이나 생활고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비싼 연료값을 추가로 감당해야 한다는 현실은 이들에게 있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계일보

 

그래서 대안으로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연료가 아마도 연탄이 아닐까 싶습니다.  연탄은 불과 20년전까지만 해도 서민들의 겨울철 대표 연료였습니다.  하지만 시대 조류에 걸맞게 쇠퇴의 길을 걸어왔으며, 곧 우리 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연탄을 사용해 본 이들은 잘 아시겠지만, 이로부터는 인체에 치명적인 일산화탄소가 배출되고, 재가 남아 뒷처리 또한 깔끔하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눈이 쌓인 날이면 동네 골목마다 미끄러지지 말라고 동네분들이 연탄재를 잔뜩 뿌려놓았던 아련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듯 완전히 사라질 것만 같았던 연탄이 얼마전부터 다시 각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기름 한 방울 안 나오는 나라에서 국제시장을 통해 수요 공급 법칙에 따라 정해지는, 천정부지로 오르기만 하는 연료값에 대응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라 여겨지게 된 탓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 아침 연탄과 관련한 기사 하나를 발견하곤 깜짝 놀라야 했습니다.  연탄을 두고 정부가 고민에 빠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정부는 경제적으로는 수명을 다한 연탄이 정치사회적 이유로 재차 연장되고 있노라 여기고 있었습니다.  공기업에 대한 강도 높은 개혁 차원에서 대한석탄공사를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서민 연료인 연탄이 발목을 잡고 있노라는 것입니다.

 

ⓒ매일경제

 

대한석탄공사의 누적적자는 계속되어 오다 결국 자본잠식에까지 이르렀으며, 때문에 공기업 퇴출 1순위로 거론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석탄공사의 연간 당기순손실은 2011년 이후 매년 800억원 이상을 기록하고 있으며, 올해 상반기 손실 규모만도 벌써 372억원에 이르고 있습니다.

 

결국 퇴출 1순위로 꼽히고 있는 석탄공사가 정부엔 눈엣가시인데, 여론의 눈치 때문에 이를 처리하지 못하고 있노라는 정부의 볼멘소리가 다름아닌 해당 기사의 골자였습니다.  제가 볼 땐 여차하면 모두 없애겠다는 서슬퍼런 경고의 목소리로 들리고 있었습니다.

 

마지 못한 듯 대한석탄공사를 운영하고 있는 정부의 태도는 옳지 못합니다.  자본과 개발의 논리로만 바라볼 땐 엄청난 적자를 내고 있는 연탄 사업은 사라져야 하는 업종이 분명 맞습니다.  하지만 현재 태백 장성광업소에만 1200명의 노동자가 고용되어 그들의 가족들을 먹여살리고 있고, 또한 취약계층에겐 이 값싼 연탄 한 장 때문에 겨울 한 철을 날 수 있을 만큼 귀하디 귀한 존재입니다.  10만에서 15만 정도가 연탄 사용 가구로 추정되고 있는 상황이니, 그에 딸린 가족만 해도 족히 50만명은 된다는 의미입니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치입니다.

 

혹여 수익이 나지 않고 부채가 쌓여갈지언정, 가뜩이나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이 추운 겨울을 버틸 수 없을 만큼 한계 상황에 직면한 이들에게 힘을 북돋워주어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바로 정부의 몫일 것입니다.  고작 연탄 몇 장이라고 하지만, 이 때문에 죽지 않고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계층이 우리 사회엔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공공사업이나 공기업은 사기업과 같이 단순히 수익 창출만이 아닌, 공공의 이익과 사회를 바라 봐야 합니다. 

 

더 이상 추운 겨울을 이겨내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있어선 안 됩니다.  우울한 뉴스는 다시 접하고 싶지 않습니다.  취약계층을 향한 따뜻한 온기가 전도되어 사회 전체에 훈훈한 기운으로 가득 찼으면 좋겠습니다.  가난하다고 하여 사람의 목숨을 함부로 다뤄선 안 되듯 수명을 다했다고 하여 자본의 논리로만 따져 무작정 연탄 사업을 접어선 안 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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