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대통령의 비선 실세 의혹 언급이 부적절한 까닭

새 날 2014. 12. 2.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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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정윤회 씨의 국정 개입 의혹 문건 보도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문건을 외부에 유출한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로써 국기 문란 행위이다.  이런 공직기강의 문란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적폐 중 하나다.  조금만 확인해보면 금방 사실 여부를 알 수 있는 것을 관련자들에게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비선이니 숨은 실세가 있는 것 같이 보도를 하면서 의혹이 있는 것 같이 몰아가고 있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해당 문건 속에 등장하는 정윤회 씨의 비선 실세 의혹에 대해선 루머로 단정지은 채 이를 강하게 부인하며, 오로지 문건 유출 행위 그 자체에 대해서만 엄벌 방침을 천명하고 나선 셈이다.  

 

대통령의 태도는 옳지 못하다.  직접 루머로 단정지은 이번 의혹의 사실 여부를 떠나 '십상시'라는 단어의 등장만으로도 이미 국정 농단은 기정사실화된 게 아닌가.  때문에 대통령은 모든 책임을 통감하고 국민 앞에 고개를 떨궜어야 함이 마땅하다.  아울러 이번 의혹에 대해 한 점의 의문조차 남지 않도록 철저한 수사를 당부했어야 함이 옳다.

 

ⓒ국민일보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통령은 정반대의 행동을 보였다.  해당 의혹은 루머에 불과하기에 오로지 문건 유출에 대해서만 책임을 묻겠다고 했고, 혹여 대통령의 언급이 모두 사실이라 해도 문건 유출을 일으킨 국기 문란 행위에 대해 청와대의 수장이자 국정최고책임자로서의 책임이 전혀 없는 것처럼 또 다시 유체이탈 화법을 들고 나왔다.

 

대통령의 언급대로 청와대 문건 유출이 국기 문란 행위라고 친다면, 이를 관리하지 못한 대통령은 이로부터 책임이 전혀 없기라도 하다는 건가?  아울러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상황에서 마치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듯 국정최고책임자가 직접 선을 긋고 나선다면 과연 올바른 수사가 가당키나 하겠는가?  대통령의 언급이 없더라도 그동안 권력 눈치보기에만 급급해 오던 검찰이었거늘 과연 살아있는 권력과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오는 대통령 앞에서 제대로 된 수사가 가능하겠는가 말이다.

 

국민은 이전 정권이 벌여놓은 엉터리 국정의 후유증과 현 정권의 말도 되지 않는 국정 농단에 피로감을 호소해 오고 있다.  만에 하나 이번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게 된다면 대통령은 그의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테며, 사실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혼란을 야기한 결과에 대해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테다. 



대통령은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태연한 척 세간의 관심을 엉뚱한 방향으로 돌리려 시도하고 있지만, 애써 감추려는 진짜 속내를 결코 숨길 수는 없을 테다.  대통령의 선긋기 신공 덕분에 검찰 수사는 맥이 풀릴 가능성이 더욱 농후해졌다.  물론 대통령이 나서지 않았더라도 검찰의 속성상 뻔한 결과가 예측되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대통령이 자신과 연루된 의혹에 대해 직접 루머라고 선을 긋고 나선 참이니, 검찰의 수사는 어느 정도의 방향성을 띄게 될 게 분명하다.  이는 곧 또 다른 불씨를 잉태할 개연성이 다분하다는 의미가 될 테다.

 

국정최고책임자로서의 마땅한 책임을 지지않으려는 자세가 대한민국의 현재 대통령 모습이다.  마치 자신과는 전혀 관련없다는 듯 멀찌감치 떨어져 아랫 것들만 질타하는 모습 속에서 무얼 더 바라겠는가.  이런 무책임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쩌면 작금의 국정 농단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임기가 아직 3년이나 더 남았다는 현실이 그저 암울하게만 다가올 뿐이다.

 

어쨌거나 이번 사건의 핵심은 국정 농단의 의혹으로 비화된 비선 실세와 그 배후를 밝히는 일이 되어야 함이 옳다.  단순히 청와대의 문건 유출 문제로 희석될 사안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때문에 대통령의 언급은 매우 시의적절하지 못하며 비겁하기까지 하다.  국민의 시선은 온통 검찰로 향하고 있다.  큰 기대를 할 순 없지만, 어쨌든 검찰은 이번 사건의 의혹들을 남김없이 파헤쳐 스스로 명예 회복하는 기회로 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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